[리뷰] "현실과 환상의 혼재"…연극 'M.Butterfly'

입력 2015-04-22 14:09  



현재를 잘 조망하는 것으로 시의성을 논하는 시대는 갔다. 오늘을 정확하게 관통하는 작품들은 이미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시의성이라는 개념의 관건은 미래를 얼마나 잘 예견하는가에 있다.

여장이 잘 어울리는 배우 삼인방 : 김다현, 전성우, 정동화

우리나라 공연의 근현대사를 되짚어보면, 조선 말 남사당패 이후로 남자가 여장을 하고 무대에 등장하는 경우는 흔한 광경이 아니다. 이는 남녀의 성 역할에 대해서 양분화가 심하고 성 정체성이 불투명한 것을 허용하지 않는 한국의 정서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몇 년 간 한국에서 공연되는 작품들을 살펴보면 성 정체성의 경계에선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이 왕왕 공연된다.

이러한 성향은 뮤지컬에서 두드러지는데 트랜스젠더 록 가수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그린 록 뮤지컬 ‘헤드윅’과 남프랑스의 유명한 휴양지 상트로페에 위치한 드랙쇼 전문 카바레 ‘라 카지 오 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뮤지컬 ‘라카지’가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2007년 초연 이후 큰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 ‘쓰릴미’ 또한 로스쿨 청년들의 범죄와 동성애를 다룬 뮤지컬이다. 성 정체성 문제에 민감하고 이러한 표현들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한국 관객들에게 트랜스젠더 록 가수, 게이 부부, 동성애를 연기하는 것은 배우들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도전에 자신 있게 도전장을 내민 세 남자가 있다. 연극 ‘M. Butterfly’에서 여장 남자 ‘송 릴링’ 역할로 활약한 김다현, 전상우, 정동화가 바로 그들이다. 김다현의 경우 ‘다드윅’이라는 애칭과 함께 뮤지컬 ‘헤드윅’에서 농염한 트랜스젠더 역할을 펼쳐 이미 광범위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전성우와 정동화 역시 뮤지컬 ‘쓰릴미’에서 ‘나’ 역을 맡아 동성애 연기를 열연한 바 있다. 따라서 세 남자의 트리플 캐스팅으로 구성된 연극 ‘M. Butterfly’는 그들이 ‘송 릴링’을 연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작이 되기에 충분했다.



미래를 읽어내는 힘 통해 부여된 시의성

- 권력의 구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드러낸 희곡

연극 ‘M. Butterfly’는 ‘송 릴링’이라는 여장 남자를 주축으로 프랑스 부영사 ‘르네 갈리마르’와의 사랑과 갈등이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성 역할에 대한 언급이 작품 전면에 드러나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성 정체성의 혼란에 방점을 찍고 있지 않다. 작품은 연약하고 섬세함을 가진 여성을 ‘동양’으로 상징하고, 강인하고 권력욕 넘치는 남성을 ‘서양’으로 상징한다. 그러한 구도 속에 송 릴링은 서양남자 핀커튼에게 버림받고 눈물의 세월을 보내는 오페라 속 여주인공 버터플라이의 삶이 싫다고 하면서도 버터플라이와 닮은 인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위장에 불과했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송 릴링의 이중성은 갈리마르를 파멸로 이끌게 된다. 이와 같은 점들로 미루어보아 동양으로 상징되고, 여성으로 상징된 송 릴링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방식과 속도대로 개척해나가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미래에 적극적인 리더로 성장할 오늘날의 여성들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송 릴링에게 지령을 주는 중국의 공안 역할의 배우도 여성이다. 이는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은 주로 남성이 연기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는 연극의 관례가 깨어진 연출의 지점이다. 이렇듯 연극 ‘M. Butterfly’는 오늘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머물지 않고 여성이 세계화의 선두에 설 것이라는 먼 미래까지 작품에 담아내, 시의성의 의미를 더하였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할 만하다.

인물의 동선과 무대 디자인이 십분 활용된 연출

작품은 동양과 서양으로 상징된 것은 갈리마르와 송 릴링을 오페라 ‘나비부인’ 속 핀커튼과 버터플라이를 중첩시켜 보여주며 관객에게 흥미를 부여한다. 무대 디자인은 오페라 속 인물과 실재하는 인물의 간극을 자연스럽게 넘나들게 하기 위해 활용된다. 오페라 속 버터플라이를 연기한 송 릴링은 노래로써 말문을 연다. 이는 송 릴링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극 안에서 행동하는 인물이 되는 전환점이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그대로 옷을 갈아입고, 연기 공간도 윗부분에서 계단을 밟고 내려와 아랫부분으로 옮겨온 것이다. 작품 초반에 오페라 작품 속에서 완벽한 여자로 등장하는 송 릴링은 갈리마르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환상이었지만, 그녀가 계단 아래로 내려옴으로써 실재하는 여성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이러한 무대 디자인을 소극장에서 했다면 연기 공간이 비좁아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대극장에서 했다면 집중도가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극장에 공연을 올린 것은 인물의 포지션을 다르게 배치하되 하나의 장면에 동시에 담는 표현을 하기에 후회 없는 선택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양한 변화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 첫 번째, 말 걸기

이 작품에서는 유난히 장소와 인물의 변화가 다양하다. 하지만 이 다양한 변화를 구현하는 방식이 조금은 새롭다. 화자는 이야기 바깥의 인물이 되었다가 극 속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이 방식을 지속적으로 활용할 경우 생기는 문제점이 있다. 배우가 제시하는 많은 변화를 따라가기 힘든 관객의 경우, 극적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단점이 생긴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화자로 역할한 배우가 관객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방식을 첨언한다. 이 방법이 내용전달의 효율을 높였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극적 몰입을 유지하는 장치가 되어줌은 분명하다.



다양한 변화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 두 번째, 조명

연극 ‘M. Butterfly’는 갈리마르와 송 릴링의 아찔한 관계를 통해 인간이 느끼는 환상과 실재의 혼재를 속도감 있게 그려내기 위해 잦은 장면 전환 방법을 선택한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이러한 표현을 효과적으로 구현해내기 위해서 음악과 조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무대는 나무를 이어 붙인 벽면과 가구들을 모두 하얀색으로 표현해 통일감을 주었고, 가지만 남은 나무들을 벽면에 듬성듬성 배치함으로써 차가운 느낌을 살렸다. 이 차가운 느낌에 형형색색의 조명이 무대를 물들이며 장소는 숲이 되었다가, 거리가 되었다가 한다. 여기에 음악이 각 장소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장면의 의도에 따라 중국 전통 음악이 흘러나오면 장소는 금방 중국의 어느 거리가 되고, 서양의 오페라곡이 흘러나오면 또 금방 프랑스의 어느 거리가 된다. 무대에 전면에 등장한 가구들 역시 서양풍 돌돌이 계단과 중국의 빨간색 갓등의 배치를 통해 서양과 동양의 조화를 도모해 공간의 느낌을 빠르고 확실하게 구현한다.

여성의 권력화만큼 중요한 키워드, 관계성

작품이 송 릴링이라는 인물을 주축으로 여성의 권력화에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끊임없이 관객에게 강조한 개념은 ‘관계성’이다. 작품은 여성적 성향을 이미지화해 동양을 나타내고, 남성적 성향을 이미지화해 서양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연극 ‘M. Butterfly’는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자신이 가지지 않은 매력에 빠져드는 모습을 통해 관계성을 드러낸다.

표면적으로는 기밀 유출 혐의로 수감되어 인생의 마지막을 감옥에서 맞이하는 인물이 갈리마르이기 때문에 서양에 대한 퇴보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은 송 릴링에 대한 분노보다는 완벽한 여자를 사랑했던 기억에 더 집중하는 갈리마르의 수감 생활의 보여준다. 갈리마르가 프랑스로 다시 쫓겨 와 폐인처럼 사는 동안에도 동양을 그리워하고, 송 릴링을 그리워하며 오페라 ‘나비부인’을 보러가는 지점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누가 이기고 지고의 문제를 다루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수감 생활을 하던 갈리마르는 정신적 혼란을 겪다가 자살을 한다. 그가 자살하기 바로 직전, 하얀 칠로 일본 여성처럼 단장을 하는 장면 역시 유사한 맥락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송 릴링, 아니 ‘버터플라이’가 되려는 양 일본 여성처럼 꾸민 뒤 자살하는 이 장면은 작품에서 말하려고 하는 욕망과 권력, 환상과 현실의 혼재, 서양과 동양, 남과 여의 변화의 흐름에 대해 관계성이라는 큰 개념으로 응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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