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수의 현대문화평설] 죽어가는 노인의 사회

입력 2015-04-2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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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규수 해피런(주) 대표 구한말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노인복지`가 완벽한 나라였다. 비록 먹고사는 것은 미국 등 외국에 비할 바가 못됐을 것이고, 현재의 우리 경제수준에 비한다면 더더욱 보잘 것 없었을 것이지만 그들 눈에 비친 당시 조선의 노인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p class="바탕글">이유는 아마 정(情)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를 이어 전해지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정... 그것을 우리는 효(孝)라고 했다.
<p class="바탕글">당시 대가족제도인 한국의 가족문화에서 노인은 항상 우선(Precedence)이었다. 조선에는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살아 있었다. 냉수도 순서가 있는 법이라는 것이 당시의 우리네 생활습관이었고, 전통문화였고, 사회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p class="바탕글">1886년 조선 조정의 요청으로 한국에 온 미국인 헐버트(Homer B. Hulbert)는 이를 보고 "이 세상에서 관습적인 노인복지가 가장 완벽하게 된 국가는 조선이다"라고 감탄했다.
<p class="바탕글">그런 조선의 모습을 그는 지키고 싶었을까. 그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야 했다. 1907년 고종황제의 명을 따라 은밀히 네덜란드 헤이그밀사 파견을 도움으로써 `제4의 밀사`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p class="바탕글">일본의 추방으로 조선에는 다시 갈 수 없었던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이승만 서재필과 함께 조선독립운동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됐다. 1908년부터 미국 전역을 돌며 일본 군국주의를 규탄했다. 미국정부에도 조선독립 지원을 요구했다.
<p class="바탕글">1944년에는 `한국의 소리`라는 책자를 통해 "루스벨트 대통령이 을사조약 직후 고종황제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동양의 역사가 바뀌었고, 미국이 친일 정책을 썼기 때문에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p class="바탕글">1950년 3.1절 날 대한민국은 그에게 외국인 최초의 건국공로훈장 태극장(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는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Ernest T. Bethel)과 함께 조선 말기 `조선을 구하기 위해 활동한 대표적인 서양인`으로 손꼽히며,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인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p class="바탕글">그가 꿈에 그리던 `독립 한국`을 보기 위해 86세의 노구를 이끌고 1949년7월말 한국으로 떠나는 길이었다. 한국방문이 죽기 전의 소원이었을 터.
<p class="바탕글">그는 건강을 염려하는 한 기자의 질문에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결국 그의 유언이 됐다. 한국 방문 1주일 만에 그만 병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잠들어 있다.
<p class="바탕글">헐버트는 `부모사랑` `노인공경`과 같은 한국의 가치를 존중했던 것이다.
<p class="바탕글">그 뿐만이 아니다. 미국 공사 윌리엄 샌즈(William F. Sands)는 그의 회고록에 "나의 노년을 위해 조선 땅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적었다. 조선 최초의 선교 의사인 앨런(H. G. Allen)도 "노인(老人)과 망인(亡人) 사이가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이 세상에서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가장 즐거운 노인 천국이 조선"이라고 밝혔다.
<p class="바탕글">그렇다면 푸른 눈의 외국인은 조선의 무엇을 보았던 것인가? 대략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p class="바탕글">첫째, 아침에 일어나거나 저녁에 잠들 때 부모에게 문안을 드린다. 둘째, 먹을 것이 생기면 반드시 노부모가 먼저 드신 후에 입을 댄다.
<p class="바탕글">셋째, 뒤주 열쇠와 안방 차지는 늙어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의 몫이다. 넷째, 외지에 출타하거나 돌아올 때면 마을 노인에게 인사를 드린다.
<p class="바탕글">다섯째, 길가다 노인을 만나면 걸음을 멎고 두 손 들어 읍을 한다. 여섯째, 잔치가 열리면 마을 노인들을 모셔다 상석에 앉혀 대접한다.
<p class="바탕글">일곱째, 돼지나 소를 잡으면 내장을 마을의 노인들에게 등분하여 보내드린다. 여덟째, 부모가 늙으면 벼슬을 고향 가까이 옮겨주어 봉양케 하고, 보다 늙으면 봉양을 위해 유급 휴직시켰다.
<p class="바탕글">아홉째, 부모가 죽으면 영혼이라도 3년 동안 한 집에 살며 조석으로 살아 있는 식구들과 똑같은 밥상을 받으면서 공생 공존하며, 3년 후라도 1년에 한 번 제삿날에 상봉하니 죽어도 영생하는 것이 된다.
<p class="바탕글">열째, 회갑이 지나면 그 고을 현감이, 고희가 지나면 감사(監司)가, 백수(百壽)가 지나면 임금님이 춘추를 가려 주시어 옷을 내려 연지(年齒)를 치하한다.
<p class="바탕글">물론 현대적인 시각에서 어떤 항목은 고리타분한 과거의 유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사랑, 노인공경의 정신만큼은 존중받아야 한다.
<p class="바탕글">최근 보건복지부가 홀로 사는 전국 100만여 명의 노인들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100명 중 3명은 생사가 확인이 안 될 정도로 무관심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p class="바탕글">정부는 독거노인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안부를 확인하는 사업을 실시 중이지만, 자녀들이나 가족, 더 나아가 이웃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이 이들 독거노인들과 연계되지 않는다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p class="바탕글">최근 발표된 `2014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 조사`에 따르면 자녀와 함께 사는 노인은 28.4%에 불과했다. 67.5%는 독거노인이거나 부부만 살고 있었다. 나머지 4.1%는 소재파악이 안되거나 노인시설에 있는 경우다.
<p class="바탕글">이처럼 노인들이 점점 방치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노인들의 경제적인 자립문제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적어도 기초 생필품만큼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일자리 마련과 함께 공동체 생활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p class="바탕글">정(情)이 살아있는 사회! 우리 사회에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을 더욱 강화해야 할 때다.
<p class="바탕글">글_노규수 :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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