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구이 영양센터에서 프리미엄 오븐구이까지

입력 2015-04-23 14:57  



저녁 시간, 서울의 한 오븐구이치킨 전문점. 삼삼오오 친구끼리 가족끼리 들어서는 손님들로 붐빈다. 매장 안에서는 향긋한 오븐구이치킨의 향이 나머지 공간을 가득 메운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오븐구이치킨은 이제 대표 간식메뉴로 자리 잡았다.

오븐구이치킨의 시작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치킨 대중 시대’가 열린 것은 80년대 말. 그러나 70년대부터 치킨은 이미 ‘구이 통닭’으로 조금씩 그 인기를 키워가고 있었다. 전기오븐구이통닭의 원조라고 알려진 서울 중구‘ㅁ영양센터’가 1960년 처음 문을 열어 장안의 화제가 되면서, 전국에 ‘◯◯영양센터’라는 이름들의 가게는 40~50대에게 익숙한 풍경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치킨 붐의 출발점은 ‘구이’ 요리였다.

문학평론가 김현과 시인 황동규가 자주 찾아 유명해진 서초구 ‘ㅂ치킨’ 역시 전기오븐구이로 조리된 치킨을 내놓던 곳이다. 김현이 1990년 유명을 달리한 뒤, 그의 제자들이 차례로 이 가게를 찾아 그가 늘 앉던 자리를 방문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담백한 맛과 화려한 치장을 거치지 않은 닭 본연의 풍미를 보여주는 오븐구이치킨은 어쩐지 문인들의 감성적인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는 듯 하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오븐구이치킨

매콤하고 자극적인 양념치킨은 오랫동안 젊은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1980년대부터 프랜차이즈 치킨전문점들이 늘어나면서 양념치킨과 그 기반이 되는 후라이드치킨집이 호황을 누렸다. 2002년 월드컵 특수 때도 양념치킨과 후라이드치킨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2003년 전국적으로 개업한 치킨집의 숫자는 4,228개에 이르렀고 그 중 다수가 양념 또는 후라이드 치킨을 주 메뉴로 내세웠다.



그러던 것이 2005년 등장한 ‘굽네치킨’을 필두로 오븐구이치킨 전문점이 히트를 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른바 ‘구운 치킨’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육즙이 살아 있는 프리미엄 오븐구이 ‘돈치킨’, 재미있는 이름으로 회자되는 ‘오븐에 빠진 닭(오빠닭)’ 등이 차례로 생겨났다. 오븐구이치킨을 전문으로 하는 브랜드만 수십 개가 생겼고, 기존 메뉴에 오븐구이를 추가한 브랜드도 여럿이었다.

오븐구이치킨을 즐기는 고객층은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여성고객들에게 환영을 받은 것이 주효했다. 처음에는 성인남성의 술안주와 어린이 간식용으로 소비되던 오븐구이치킨은 ‘웰빙’ 트렌드 바람을 타고 건강과 미용을 생각하는 여성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여성 고객들에게 환영 받지 못했던 기름진 치킨과 달리 오븐구이치킨은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은 좋은 평가를 얻었다. 오븐구이치킨의 매력에 빠져, 단골손님에서 점주가 되었다는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부드러운 식감과 향과 풍미가 더해진 오븐구이치킨은 이제 외식업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오븐구이치킨, 창업시장에 불을 붙이다

지난해 전국의 치킨 매장 숫자는 4만개를 넘어섰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상권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4년 11월 기준으로 전국의 치킨집 숫자는 약 4만 3,765개. 외식업 중 치킨 프랜차이즈 창업비용이 가장 저렴한 편이고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 창업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다. 베이비부머들의 본격적인 은퇴 대란을 맞아 이러한 증가 추세는 계속될 조짐이다.

한 켠에서는 치킨 시장이 과잉에 이른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치킨 소비량 역시 그만큼 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큰 편. 치킨 붐이 시작되던 1990년 1인당 닭 소비량은 4.0kg이었지만, 지난해 13.3kg으로 3배를 훌쩍 넘어섰다. 선진국의 경우 닭고기와 같은 백색고기를 선호하는 편인데, 다른 선진국들의 닭고기 소비량이 대체로 우리나라의 3~4배에 이른다는 점에서 앞으로 계속 늘어나리라고 보는 전망이 많다.

이뿐만이 아니다. 후라이드 치킨의 경우 바쁜 시간대를 대비해 미리 파우더를 입히고 숙성한 뒤 초벌구이까지 해놓아야 한다. 이와는 달리 오븐구이치킨은 주문과 동시에 조리를 시작한다. 점주로서는 번거로운 일을 덜게 되고, 고객으로서는 즉시 조리된 오븐구이치킨의 맛과 풍미에 빠지게 된다.

오븐구이치킨, 그 맛이 성공의 비결

이제 오븐구이치킨은 맛과 건강을 동시에 잡는 ‘프리미엄 오븐구이’로까지 업그레이드되었다.

서울 마포에 있는 `돈치킨`(www.donchicken.co.kr) 합정점. 오피스 상권인 이곳은 저녁이면 ‘치맥’을 즐기러 온 30~40대 직장인들로 북적인다. 이 매장을 운영하는 김기중 씨(45)는 2011년 3월 2억원을 투자해 창업한지 5년차를 맞았다. 최근 월평균 매출은 4,500만원대. 그 역시 오븐구이치킨의 강점으로 차별화된 맛과 조리의 편의성을 꼽았다.

오븐구이는 파우더를 묻히지 않아 비교적 양이 적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돈치킨 본사는 가장 맛있고 값비싼 ‘11호닭’을 안정적인 가격으로 가맹점에 공급하고 있다. 여기 100% 국내산 냉장육을 사용하는 것도 이 브랜드의 장점.

돈치킨은 국내 오븐구이치킨 브랜드 가운데에서도 특히 ‘프리미엄 오븐구이’를 표방한다. 고소하면서도 육즙이 그대로 살아있는 `모방할 수 없는 맛`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었다. 이 매장의 성공으로 근방에는 6개의 경쟁점이 더 생겼지만 이곳을 찾는 발길은 줄어들 줄 모르고 있다.

오븐구이 치킨이라고 한 가지 메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신메뉴를 통해 오븐구이 치킨은 변신하고 있다. 토마토 갈릭소스와 구운 순살 치킨이 만난 ‘오븐 순살 토마토 치킨’과 은은한 양송이버섯 향의 부드러운 크림소스가 얹힌 ‘오븐 순살 크림 치킨’도 인기를 끌고 있는 돈치킨의 오븐구이 메뉴다.

합정점 같은 성공점포, 장수점포가 늘어나면서 돈치킨의 경우 전국 33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역시 오븐구이치킨의 강점과 차별성에 힘입은 결과임이 틀림없다. 이렇듯 대한민국 곳곳에서 오븐구이치킨은 새로운 식문화 역사를 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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