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모(47) 씨는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디플레이션(deflation·디플레)`이라는 말이 피부에 와 닿질 않는다.
디플레는 물가가 내리면서 경기가 부진해지는 현상인데, 자신이 느끼기에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개월째 0%대이고 담뱃값 인상분을 제외한 상승률은 마이너스라고 하는데 이 씨가 체감하는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올 들어 중학생 아이(15)의 영어 학원비는 월 20만원에서 25만원으로 올랐고, 아파트 전세비 부담은 폭등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뛰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찾는 회사 구내식당 식사비마저 최근 3천800원에서 4천원으로 올랐다.
올해부터 담배 가격이 갑자기 뛰어 금연을 결심해 봤지만 작심삼일이다.
기는 월급에 뛰는 물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자꾸 담배에 손이 가 끊기가 쉽지 않다.
이 씨의 부인도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조금이라도 더 싼 물건을 고르기 위해 빈 카트를 끌고 뱅뱅 돌기 일쑤다. 조금만 담아도 10만원이 금방 넘어간다.
그런데도 물가가 안 오르고, 심지어는 내렸다고도 하니 알쏭달쏭한 노릇이다.
이 씨 부부의 사례는 일반인이 주로 소비하는 물품·서비스의 체감 가격과 정부가 내놓는 물가 수준 간에 극심한 괴리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정부 발표 소비자물가 상승률 0.4%, 체감 물가는 3%대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2월24일부터 3월3일까지 유선 전화로 전국의 성인 남녀 1천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체감 경제성장률은 -1.1%이고 체감 물가상승률은 3.3%로 나타났다.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4%에 그치고, 담뱃값 인상 요인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하락했다는 통계청 발표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작년 동기 대비 4월 소비자물가에서도 소비자의 체감도가 높은 품목의 물가 상승률은 실제로 높았다.
담배(국산)가 83.7%로 상승폭이 가장 컸고 배추 35.3%, 감자 24.0%, 소시지가 17.9%로 많이 올랐다.
가방(10.6%), 운동화(9.5%), 구내식당 식사비(5.4%), 쇠고기(국산, 4.6%), 중학생 학원비(3.2%)도 큰 폭으로 뛰었다.
◇ 괴리 원인은 개인 소비패턴 차이
체감물가는 개인별 소비 패턴을 반영하는 것이다.
대표 품목의 가격변동으로 산출하는 소비자물가와의 차이가 어느 정도 생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통계청이 현재 전국의 소비자물가를 지수화하는 데 활용하는 주요 품목은 481개다.
산출 과정에서 평균적으로 가구의 소비지출 비중이 큰 품목에 대해서는 그만큼 가중치를 부여한다.
가중치는 전세, 스마트폰 이용료, 휘발유 가격, 월세, 도시가스료, 전기료, 중학생 학원비, 외래진료비, 공동주택 관리비, 경유 값 순으로 높다.
이 가운데 올 4월 소비자물가 동향에서는 전세(3.3%)와 공동주택관리비(3.7%), 중학생 학원비 등 피부에 곧바로 와 닿는 품목이 상승했다.
반면에 휘발유(-19.5%), 경유(21.7%), 도시가스(-14.0%) 가격은 많이 떨어졌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일상생활과 연관성이 높은 물가가 올 들어 크게 하락하면서 전체적인 생활 물가지수를 끌어내려 지난 2월 -0.7%, 3월 -0.8%, 4월에는 -0.7%로 나타났다.
1995년 통계 작성 후 가장 낮은 수준을 이어가면서 일각에선 디플레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생활물가 구성요소 가운데 식품 값이 4월에 1.5% 올랐다.
그러나 화장지, 치약, 세제 등 생활 공산품은 1.7% 떨어졌다.
생활물가는 체감물가와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구입 빈도가 높고 지출비중이 커 소비자들이 가격변동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142개 품목으로 작성한 지수다.
통계청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물가가 떨어진 품목에 대한 인식은 낮은 반면에 오른 품목에 대한 인식을 더 하게 되는 속성이 있다"며 "체감물가 상승률이 크다고 느끼는 것은 그런 이유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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