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칼럼] 메르스 사태 대처하는 우리 시스템… 불가사의한 무능

입력 2015-06-11 03:25   수정 2015-06-13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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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 분)도 비밀주의를 추구했었다.(사진 = MBC)


메르스 사태에 대처하는 우리 시스템의 모습은 한 마디로 불가사의한 무능이다. 나름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고 자부하는 한국이라고 하기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능한 대처, 답답한 대처가 이어졌다. 외국에서도 어떻게 한국에서 이런 일이 생기느냐며 의아해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부실늑장대처였다.

이번만이 아니다. 세월호 사건 때도 그렇고 무슨 돌발사태만 터지만 반복되는 일이다. 우리 시스템은 왜 이렇게 답답하게 된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 중의 하나로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꼽을 수 있다. 우리 행정시스템이 형성된 것은 독재기간을 거치면서였는데, 독재 시기에 행정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권력자를 위한 통치기구였다.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국민 안위보다 권력자 보위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권위주의적 속성은 상당 부분 온존했다. 특히 최고 권력자가 권위를 중시하는 스타일일 때, 일시적으로나마 약화됐던 시스템의 권위주의적 속성이 빠르게 회복된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에선 시스템 관리자들의 시선이 국민이 아닌 윗사람을 향한다. 권력자의 심기에 극히 민감하고, 그런 만큼 국민 고충엔 둔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만 출세해서 요소요소에 자리한다.

이런 시스템에서 일 자체만을 생각하면서 소신 있게 나서는 사람은 흔히 좌천된다.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은 보통 자부심이 강해서 윗사람이 이해 안 되는 지시를 할 경우 들이받거나 때론 윗사람 하명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알아서 일을 처리한다. 그런 사람들은 권위주의적 리더십에서 용납되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흐르면 시스템은 윗사람 눈치만 보면서 복지부동하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에선 문제를 키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나타난다. 대체로 일이 커져서 시끄러워지는 걸 ‘윗분’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 자체의 해결이나 예방보다 윗분의 심기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웬만한 사고면 조용히 넘어가려 한다.

그냥 두면 나중에 크게 잘못될 가능성이 10% 정도인 사고일 경우, 별일 아니게 될 가능성도 90%나 되기 때문에 일을 크게 키우지 않는다. 메르스 사태처럼 병원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수많은 사람들을 추적해서 격리할 정도로 큰 소란을 피우는 초기대처를 해야 할 경우, 그 난리를 치고도 혹시나 별일 아닌 것으로 끝난다면 윗사람에게 쓸 데 없이 일을 키웠다는 문책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일이 충분히 커질 때까지 수수방관하게 된다.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이 강한 군대에서도 웬만한 일은 조용히 묻으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번에 비밀주의가 크게 문제가 됐는데, 이것도 권위주의적 리더십에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다.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수평적 상황에선 너도나도 떠들기 때문에 사회가 시끄러워지기 마련인데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조용하게 통제되는 걸 선호한다. 그래서 정보를 움켜쥐고 모든 국민이 통제자의 입만 쳐다보도록 한다. 바로 그것이 권력을 극대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선덕여왕’에서 미실도 비밀주의를 추구했었다.

윗사람 심기 살피는 데에만 민첩하며, 무소신에 책임질 일을 안 하려 하고, 튀지 않으려 하고, 웬만한 일은 대충 덮으려고 하고, 비공개를 지상선으로 아는 사람들만 출세해서 요소요소를 차지하는 권위주의적 상황으로 이어진다면 한국에선 언제든 상상을 초월하는 무능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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