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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관과 무대를 넘나들며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배우 전익령이 지난 19일 연극 ‘스피킹 인 텅스’ 공연이 열리고 있는 대학로 수현재컴퍼니에서 한국경제TV 와우스타와 마주했다.
연극 ‘스피킹 인 텅스-잃어버린 자들의 고백(연출 김동연·제작 (주)수현재컴퍼니)’은 자신의 삶과 타인의 관계 속에서 무언가 잃어버린 자들의 이야기이다. 세 개의 막으로 구성된 연극에는 9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를 단 4명의 배우가 맡았다. 전익령은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남편에 대한 신뢰를 잃은 강한 여자 ‘쏘냐’와 어릴 적 안 좋은 경험으로 인해 남자에게 극도로 예민한 ‘발레리’를 맡았다.
“처음 대본을 받고 독특한 형식에 매료됐어요. 섬세하게 표현된 감정선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읽으면서 재밌었기 때문에 작품을 하게 됐어요. 대본 받고 이렇게 어려울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웃음)...연습하다보니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어요. 한 달 넘게 공연하는데도 아직도 대본을 놓지 못하고 있어요. 독특한 형식 때문에 선택한 작품인데 그 점이 이렇게 힘들게 할 줄 몰랐어요.”
무대 위에 선 4명의 배우는 짧고 중의적인 대사를 동시에 내뱉는다. 같은 무대 위에 있지만 이들의 상황은 각각 비슷하기도 혹은 전혀 다르기도 하다. 복잡한 동선으로 얽혀 있어 연기를 하는 배우도 보고 있는 관객도 단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공연 두 달 전인 3월부터 모여서 연습을 했어요. 공연을 보신 분은 아실 수 있듯이 한 명이라도 빠지면 연습 자체가 불가했어요. 그래서 연습한건 한 달 정도 된 것 같아요. 처음 리딩 끝내고 일어섰을 때 다들 ‘뭐라고 하는 거야’라면서 방언을 했어요.(웃음) 연극 제목인 ‘스피킹 인 텅스’가 한국말로 방언이라는 뜻이거든요. 대본을 읽고 이렇게 늦게 놨던 적은 처음이에요. 공연 직전 다들 예민해지기도 하고 많이 힘들었지만 즐거웠어요.”
극은 전반적으로 실종사건을 중심으로 연출된다. 1막에서는 두 부부가 서로의 남편, 서로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다. 이들의 관계는 해변에 갈색 구두를 남기고 떠난 남자와 공터로 하이힐을 던져 버린 남자의 이야기로 인해 영향을 받는다. 2, 3막은 1막에서 등장한 사건들 이면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금도 사실 힘든 게 한 명만 바뀌어도 호흡이 달라져요. 특히 1막 같은 경우에는 각자 다른 캐릭터가 있지만 같이 대사를 내뱉어야 하니까 내가 원하는 호흡을 할 수 없죠. 특히 2, 3막에서는 감정선이 크게 드러나요. 내 것을 하기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해요.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의 연기, 내 감정 모두를 생각하다 보니 정말 쉽지 않았어요. 서로 주고받는 대사가 아니다보니 한 명이 실수를 하면 다들 올 스톱이 돼요. 대학로에도 소문이 났나 봐요. 다른 분들이 ‘이 작품은 쉬운 게 없다’고들 하세요.(웃음) 화이트 무대에 소품이 크지도 않고 서로 주고받는 대사가 아니라 연기적인 도움을 받기는 힘들죠. 그런 점이 어렵긴 하지만 이게 우리 공연의 재미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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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전익령이 맡은 ‘쏘냐’와 ‘발레리’는 겉으로 보기에 공통점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쏘냐’는 짙은 화장에 몸매가 드러나는 타이트한 빨간색의 미니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다. 불륜을 저지를 뻔 했지만 포기한다. 쏘냐는 남편이 불륜을 저지른 것을 알게 되고 잠시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또 다른 인물 ‘발레리’는 화장기 없이 창백해 보이는 얼굴에 단정한 트렌치코트를 입은 상담가다. 그는 남편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지만 그를 놓지 못한다. 위기의 상황이 올 때마다 사건을 만들어 남편이 떠나지 못하게 한다.
“쏘냐는 문제를 빨리 해결해 나가는 성향인 것 같아요. 남편에게 불륜에 대해 고백한 것도 ‘우리에겐 문제가 있다’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외도한 남편을 잠시 떠났다가 깨닫고 다시 돌아온 것도 자꾸 뭔가 방법을 스스로 제시해보고 직접 부딪혀보려고 하는 쏘냐의 강한 면인 것 같아요. 발레리는 집으로 가던 중 차가 고장 나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요. 남편은 자동 응답기에 녹음된 음성을 듣지만 결국 모른 척 하죠. 전체적으로 두 인물은 다르지만 둘 다 상처받고 응답받지 못한 점이 같다고 생각해요. 작품에서 나온 불륜 때문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소통과 믿음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인간에 대한 믿음’, ‘타인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에 초점을 뒀어요.”
연극 ‘스피킹 인 텅스’ 공연 러닝 타임은 130분(인터미션 10분 포함)으로 결코 짧지 않다. 하지만 공연을 보는 내내 긴 시간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집중하게 만든다. 무대가 끝나고 나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뜨거운 박수를 보내면서 스스로에게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극 중에 ‘당신도 울고 싶었던 거야’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아요. 9명의 인물들 모두 울고 싶고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싶고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아요. 자신들의 결핍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모두 울고 싶은 마음이었을거에요. 사람들은 모두 외롭고 공허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누군가 옆에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외로울 거라고 생각해요. 저마다의 이유로 채워지지 않는 결핍, 공허함 모두 같은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작품에서는 무언가 결핍된 9명의 인물을 통해서 ‘신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전익령은 2001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2004), 드라마 ‘마왕’, 드라마 시티 외 다수(2007), 드라마 ‘거상 김만덕’ 외 다수(2010), 드라마 ‘싸인’, 드라마 ‘불굴의 며느리’ 외 다수(2011), 영화 ‘파편’ 외 다수(2013), 연극 ‘엄마를 부탁해’, 드라마 ‘정도전’ 외 다수(2014), 드라마 ‘황홀한 이웃’(2015) 등 무대와 브라운관, 스크린을 넘나들며 연기를 펼치고 있다.
“연극은 드라마나 영화보다 조마조마하고 실수하는 즐거움이 있어요. 설레는 두려움이라고 할까요. 긴장되면서 묘하게 즐거워요. 또 관객 분들이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니까 소통하는데 있어서 더 좋고요. 이게 연극만의 매력인 것 같아요. 드라마나 영화, 연극에서 하는 연기는 뭐가 더 나은 거 없이 똑같다고 생각해요. 연기하는 인물을 분석하고 표현하는 건 공연이든 카메라든 표현의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진실한 감정을 끌어낸다는 건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이번 연극은 특히 더 긴장감이 드는 것 같아요. 매회 공연마다 오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런 분들은 나를 멀리서 객관적으로 보시니까 나에 대해서 더 잘 아세요. 실수를 하면 처음 보신 분들은 잘 모르셔도 마니아 분들은 단 번에 알아채고 말씀해주시기도 하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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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연기자를 꿈꿔왔다던 전익령은 탤런트, 연극배우, 영화배우 등 타이틀을 나누는 것이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어려서부터 연기는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 이라고 생각했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연극반이 유명해서 큰 극장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인지 무대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지만 이번 공연을 하면서 새롭게 느낀 게 있어요. 생각해보니 대학로라는 곳에 나와 프로무대에서 4번째 하는 공연이거든요. 많은 횟수는 아니죠. 그래서 남들이 보는 나는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탤런트가 무대에 올라와서 연기를 하는 구나’ 라고 느끼셨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누구나 다 넘나들면서 연기를 할 수 있고 다름의 차이는 없다고 느꼈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그렇지 않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전익령은 지난 19일 종영한 드라마 ‘황홀한 이웃’에서 가방 디자이너 서봉희 역으로 출연했다. 그는 브라운관에서의 차갑고 기 센 언니(?)의 이미지보다는 털털한 말투와 호탕한 웃음이 매력이었다.
“‘전예서’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다가 ‘불굴의 며느리’때부터 본명을 쓰기 시작했어요. 너무 단아하고 우는 역할만 하게 되고 답답해 보이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당찬 느낌의 본명을 쓰고 나서부터는 강한 역할만 들어와요.(웃음) 심지어 절 아는 분인데 저인지 몰랐다고 하기도 하셨어요. 저랑 지내다보면 제가 ‘허당’이라고 많이들 말씀하시거든요. 다음 작품은 시트콤이나 액션 사극을 해보고 싶어요. 밝은 역할, 매력적인 작품을 하고 싶어요.”
올해로 데뷔한지 15년 차인 전익령의 눈빛은 아직도 지금 막 데뷔한 신인처럼 빛이 났다. 연기에 대한 자부심, 애정이 가득차 보였다.
“아직 멀었지만 연기를 하다보면서 느낀 건 연기라는 건 인물을 이해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 연기는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 거구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연기자로 남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