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연평해전’의 진구(사진 = ‘연평해전’ 스틸컷) |
최근 한국영화의 주요 트렌드는 휴머니즘과 가족 코드다. 모든 이야기들이 이 두 가지 코드에 수렴된다.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비록 그것이 사실이나 객관적 기록을 다루는 영화일지라도 개의치 않는 모양새가 됐다.
이는 당연한 말일 수 있다. 관객들이 요구하는 것은 극적인 감동을 원하기 때문이라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큐조차도 감성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아예 감성다큐라는 말이 일반화됐다. 다큐가 감성을 자극하는 게 당연하지만, 이는 다큐의 본질과 배치된다. 다큐는 사실을 기록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다큐가 이 정도라면 다른 영화들은 어떨까. 사실에 바탕을 둔 영화들은 이제 이런 감성의 결합이 기본 원칙이 됐다. 하지만 팩트 기반 대중문화 콘텐츠 트렌드의 명암이 있으며, 이 때문에 휴머니즘과 가족 코드 위에 2% 뭔가 더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화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연평해전에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성격의 작품이다. 따라서 이런 추모는 물론 그들의 희생에 대한 본질적인 가치와 의미를 부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졌으니 그 우여곡절의 과정도 하나의 영화 소재로 다뤄질만하다.
어쨌든 이런 소재도 휴머니즘과 가족주의에 초점이 맞춰질 듯싶다. 극장에서 상영된 영화 ‘연평해전’도 마찬가지다. 주요 세 인물을 통해 영화는 인간애와 동료, 전우애를 바탕으로 그들은 남편과 아내, 아들과 아버지, 자녀와 가장이라는 면모를 보여준다. 누구의 자녀이고 남편이며, 가장이라는 점을 부각하는 것이다.
상업영화 장르를 선택했기 때문이니 대중성이나 흥행성을 위해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스토리텔링의 강화다. 이야기를 맛깔나게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맛깔난 이야기는 재미가 있다.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의 관심조차 끌 수 없다. 딱딱한 내용이나 정보일수록 많은 이들에게 알리려면 재미있는 이야기, 여기에 감동적인 스토리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것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사안의 본질을 옅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인공들의 삶에 대한 공감과 관심을 끄는 차원에만 머문다면, 그것이 낳는 효과는 지엽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중문화계에 불고 있는 재미와 흥미의주의 스토리텔링이 낳는 부작용이기도 하다.
▲ 영화 ‘연평해전’의 이청아와 김무열(사진 = ‘연평해전’ 스틸컷) |
‘연평해전’은 객관적인 사실을 다룬 영화다. 이제 역사의 기록이 된 연평해전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따라서 사실을 통해서 진실을 드러내주는 것이 필요하다. 적어도 이 영화는 ‘연평해전’이라는 이름 자체가 잘 압축하고 있다. 극적이고 감동을 자아내는 작품도 좋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극적이고 감동 중심의 서사구조는 이를 놓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름을 바꿨어야 한다. 영화 ‘변호인’처럼 특정 캐릭터를 부각하는 것도 방법이다.
사건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행위는 큰 틀에서 종합적인 시선으로 봐야 적절하게 보인다. 감정에 쏠릴 경우, 평가도 평가지만 다시 반복돼 일어나는 사건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여기에서 사건은 모든 이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주는 불행과 비극의 원인이다. 연평해전이 일어난 상황과 구조, 시스템을 면밀하고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 좀 더 진실에 다가갈 수 있고, 그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한 이들의 행위를 올바르게 살피고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남북한 지휘라인에 대한 체계적이고 교차적인 접근이 전체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필요했다. 연평해전은 남북 분단 체제에서 발생했고 이런 상황의 다차원적이고 입체적인 조망은 매우 긴장감과 극적 몰입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에 극적 감동과 공감의 정서를 부각하거나 강화하는 것은 대중성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모두 해당되는 화두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큰 대중적 성공보다는 본질적인 가치와 의미를 우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그것이 영화 ‘연평해전’처럼 고귀한 정신을 발휘한 이들을 위하는 방법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작품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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