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 ‘아빠…’ ‘슈퍼맨이…’ TV 속 가족 문화현상, 출판계 좌우하나

입력 2015-07-09 01:29   수정 2015-07-10 00:46

▲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 중인 조재현-혜정 부녀(사진 = SBS)


방송프로그램에서 소재로 가족을 다루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부쩍 많아졌다. 그 부쩍 많아진 프로그램들의 면면을 보면, 예능 쪽 장르가 많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예컨대,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오 마이 베이비’, ‘아빠를 부탁해’, ‘자기야, 백년손님’,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 등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대체적으로 가족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종편에도 가족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은 많으며 괜찮은 시청률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는 모두 혈연가족이다. 한동안에는 ‘패밀리가 떴다’처럼 대안가족코드가 예능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최근 ‘룸메이트’가 결국 시리즈 2편으로 연장까지 했지만, 결국 폐지된 사례나 ‘용감한 가족’의 고전에서 알 수 있듯이 대안 가족들에 대한 관심은 대중적인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전에는 혈연 중심의 가족주의를 다룬 방송 프로그램은 주로 드라마나 다큐에서 등장했다. 드라마에서는 주로 가족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가족의 이야기가 많았고. 트렌디드라마의 경우에는 변화하는 가족주의가 개인주의 관점에서 다루지는 사례가 많았다. 다큐에서는 주로 감성적인 측면에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예능 코드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최근 트렌드를 이루고 있는 가족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아이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출산과 육아에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그렇다면 왜 관심이 많아진 것일까. 아이를 잘 기르고 싶기 때문이라는 원초적인 답이 나올 수 있다. 요즘 부모들은 더욱 개성적이고 자아가 강하니 다른 아이와 다르게 혹은 더 특별하게 양육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을 듯싶다.

하지만 이러한 행태에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애초에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자기의 아이를 팔아 인지도를 높이려하는 것 아닌가, 즉 자식까지 팔아서 연예활동을 해야 하는가라는 비판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다큐가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 장기간 아이를 노출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일반 시청자도 그럴 듯 싶었다. 그렇기에 아이를 전면에 등장시키는 예능 프로의 대중적 성공을 점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왜일까. 우선 역할의 혼란이다. 일단 대한민국 사회는 전근대 사회에서 서구형 근대사회로 급격하게 변모했고 이 과정에서 각자 가족 구성원으로 지녀야하는 역할에 대해서 혼란을 맞게 되었다.

즉 남편, 아내의 역할은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이 어떠해야하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사회경제적인 상황은 이전 부모 세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졌고, 가족을 바라보는 가치관이나 세계관도 매우 차이가 나게 되었다. 이전에는 당연히 불리던 아버지나 어머니라는 호칭이 아니라 아빠, 엄마라고 불러야 진일보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만 보아도 변화된 양상을 단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기성세대의 가족관이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상황이 됐지만, 그것을 제대로 코칭 혹은 멘토링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기에 남들은 도대체 어떻게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를 하면서 아빠와 엄마의 역할을 하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내용들은 지나치게 학술적이나 교육학적인 관점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구체성이 떨어졌다. 이러한 점은 출판서적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었다.

방송프로그램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비록 유명한 연예인들이 주로 방송에 출연하지만, 그들을 통해 투영하는 것은 가족의 일상성이 지니는 소소함이었다. 방송에 등장하는 가족들이 반드시 교육적으로 훌륭한 방안이나 실천이 있을 필요는 없으며, 시청자들은 일상에서 그들과 웃고 울고 짜능 내고 화를 내며 즐거워하는, 소소한 모습들을 보려 했다.

당연히 방송 프로그램은 인위적으로 감동이나 정서적 극적 효과를 강조하지 않아도 됐다. 그런 부자연스러운 장면들이 아니라 관찰예능을 통해서 평소에서 잘 인식할 수 없는 세세한 언행을 부각하는 장면들에 시청자들은 더 이목을 집중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방송에 등장하는 가족에 주목을 하는 이유는 이제 가족을 화목하게 이룰 수 없는 형태로 한국사회에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싱글라이프를 찬양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것은 경제지들이 개인 맞춤형 상품을 팔기 위해 조장하고 있는 프레임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화려한 싱글을 강조하는 책이 더 이상 힘을 받지 못하는 것과 같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하고 싶어도 결혼이 늦거나 결혼을 못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고, 이러한 점은 고용과 경제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88세대’나 ‘삼포(연애 결혼 출산 포기)세대’를 다른 출판물이 많아진 배경일 것이다. 아이 한명을 키우는데 몇 억이 들어간다는 통계숫자에 공포감을 갖는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비정규직이거나 저소득을 올리는 경우 결혼을 하지 못하며, 아이도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이는 역설적인 효과를 이어지고 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연애나 결혼을 잘하고 아이까지 둔다는 프레임이 형성되고 있다. 대개의 경우, 아이를 없거나 한 명만 낳지만 세 명 이상을 낳는 경우는 매우 과시할만한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아이가 많은 주인공들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보기 드문 현상이기 때문이다. 희소성의 법칙이다. 예전에는 세 명 이상인 경우가 자랑거리가 될 수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그 안에는 경제력이라는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경제구조 변화를 좀 더 보면 가족의 강화가 눈에 보인다. 한국 사회는 저성장 사회로 이미 진입하고 있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을 내포하고 있다. 경제 성장이 낮기 때문에 고용은 늘어나지 않는다. 더구나 경제적인 불확실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을 증가시키는 인력관리 형태가 더 증대한다.

그래도 경제 규모는 증가하기에 물가는 올라갈 수밖에 없으며 이는 개인들에게 갈수록 과중한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즉, 개인들이 자수성가하기는커녕 제대로 독립생활을 하기에 버거운 사회가 된다. 특히 복지제도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전히 방송에서는 대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드라마가 등장하며, 가족 구성원끼리 밀고 당겨주면서도 옥신각신하는 내용들이 여전하게 된다. 여기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이와 함께 하는 가족의 모습들이 각광을 받는다. 이 때문인지 출산과 육아 그리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책들이 관심을 받는다.

다만, 그런 책들은 전문서적이 아니라 일상적인 체험이 잘 녹아들어간 내용이 중심이다. 아이를 위하는 마음에 반드시 구매하는 가치 소비가 이뤄진다. 가족의 중요성 때문인지 집밥 등의 요리에 관한 주목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한한 맛의 세계가 펼쳐질 것 같던 외식은 결국 단출하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집밥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요리를 등한시했던 여성들도 아이를 위해 요리책을 집어든다. 또한 자기 스스로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남성들이 늘어가는 것도 결국에는 가족에 대한 부각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요리책이 출간되고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더 넓은 범위에서 보았을 때, 가족의 중요성과 역할 그리고 그 안에서 개인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책들이 더 선호될 것이다. ‘新가문의 시대’라는 말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개인이 혼자 성공할 수 없는 고비용, 저성장의 사회에서는 그만큼 가족의 토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의 정책도 가족 역량 강화에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 관점의 이동도 시작됐다. 개인 스스로 무한한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와의 관계성 속에서 자유는 물론 행복이 보장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이전에는 가족이 각 개인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측면에서 접근됐다면, 이제는 일정한 통제와 구속 속에서 개인들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 현실적인 모색이 중요해지고 있다. 무조건 싱글라이프를 찬양하기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가족 속에서 어떻게 실현해낼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있어본 적도 없고, 현실에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가고 합의를 이뤄가야 하는데,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훈련의 과정에 관해서는 그 노하우를 응집하는 출판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이에 최근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은 가족 안에서 그 관계성을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합의해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가족힐링이라는 개념보다 현실적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가족에 대한 출판에서 반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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