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매우 잘 짜여진 구성과 수사법으로 사람을 설득하는 데 뛰어난 장르다. 읽고 이해하고 상상함으로서 완성을 이루며, 감동적이고 심지어는 재미도 있다.
그런데 더 큰 감동을 얻기 위해서 영화나 연극으로 다시 만들고 성공을 하는 경우도 적잖다. 성공한 영화들은 많은 파급력을 가지고 세상을 떠들썩할 만큼 알려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설이 갖는 그 특유의 감동을 뛰어넘기가 어렵다. 이런 모험을 감수하고 윤정미는 우리 근현대소설(1920-1970)을 대표할 만한 이상의<날개>,현진건의 <백치 아다다>. 이범선의 <오발탄>, 김동인의 <배따라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등 16편의 소설을 주제로 사진 작업을 했다.
사진은 사실을 재현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현대 사진이 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또한 그 대상을 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가장 진지한 장치이기도 하다. 윤정미의 ‘근대소설’은 허구에 대한 재현이다. 소설이 허구임에도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자체로서 완벽한 의미와 재미를 주는 요소들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다른 장르가 굳이 더 첨부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허구를 재현한다는 것에 사진의 속성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걱정 반 흥미반의 생각을 갖게 될 수 있다. 너무 과장되거나 부분적인 것에 집착해서 자칫 신파조의 이미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을 갖는다. 그런데 윤정미는 이러한 우려를 영리하게 넘어설 뿐 아니라 ‘근대소설’을 전략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B사감과 러브레터(현진건)에서는 그 상투적인 B사감의 옷차림을 둘러싼 배경이 현재도 볼 수 있는 평범한 교무실이다. 그런가하면 ’메밀꽃 필 무렵(이효석)에서 장을 파하고 돌아가는 길에 동이가 물에 빠진 허생원을 업고 가는 메밀밭은 ’소금을 뿌려 논 듯 한‘ 강원도 봉평의 달밤이 아니라 서울 강남의 아파트들을 배경으로 하는 막 해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화수분(전영택)은 식민지하의 극심한 가난과 사회적 혼돈 속에서 젊은 부부가 죽게 되는데 그 부부의 온기로 살아남은 아이는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로 묘사되고 있다.
이들의 묘사에서 굳이 이상의 <날개>의 주인공이 식민지의 고급 룸 팬의 허무한 절망을 애써 재현 할 필요도,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에서 그 배경의 낙서가 경쾌하기 까지 한 젊은이들의 잡담이건,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과 동이가 애달픈 삶의 주인공처럼 보이지 않다는 것 등이 여기서 이야기 거리가 되지 않는다. 윤정미는 처음부터 관객을 허구라는 가상공간으로 유도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사진을 소설이 제시한 설정에만 국한시키지 않겠다는 중의적인 계산이 포함된 것이다.
윤정미는 ‘It Will Be a Better Day_근대소설’에서 관객이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서 허구의 재현과 실존의 관계를 넘나들며 소설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진실과 사진가가 제시하고자 하는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여줌으로서 관객에게 판단의 여지를 맡기고 있다.
‘It Will Be a Better Day_근대소설’에서 윤정미는 허구와 진실에 대한 간극의 추를 조정함으로서 많은 의미를 갖게 한다. 그래서 근대소설로서의 멈출 수 있는 이야기를 과감히 도려내서 현대의 무대에 올림으로서 오늘도 고민해야하는 삶의 문제로 제시하며 밝히고자 했다.
윤정미는 핑크와 블루(2005-ongoing)라는 색을 통해서 남성(남아)과 여성(여아)의 소비와 욕구가 어떻게 표현되고 활용되고 있는지를 말하고자 하는 작업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어쩌면 당연한 생각일지도 모르는 일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것이 작가의 몫이다. 사실 이전 시대에는 색과 젠더(성)를 구분 할 여력도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주목하지 못한 문제였다. 이 작업은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아 <뉴욕 타임즈>와 <라이프>에 게재될 만큼 주목을 받았다. ‘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하여 2014년에는 ‘반려동물’을 통해서 현대인의 가족구성원의 고독과 소외를 보여주며, 서로 위로 받기를 원하는 불안한 현대인의 위치를 밝히고 있다.
윤정미의 개인전 `It Will Be a Better Day_근대소설`은 전주 완산구 서학동사진관에서 9월5일∼10월4일까지 열린다.(063)-905-2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