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소설이 국내에서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가운데 보기 드문 한국의 장편소설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아직도 아픔의 흔적이 남아있는 일제시대, 한국전쟁 와중에서도 국가나 이념보다는 가족과 인간관계의 참의미를 반추할 수 있게 하는 감동이 있는 소설인 태양의 그늘이 그 주인공이다.
신작 장편 `태양의 그늘`은 일제강점기 말을 시작으로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우리 민족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사회적 아픔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존과 사랑을 위해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가족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신인답지 않은 거침없는 필력으로 우리 역사의 가장 아픈 시간동안 ‘되찾은 땅에서 빼앗긴 삶을 살아야 했던’ 평범한 개인의 비극을 입체적이고도 생생하게 풀어낸다.
박종휘 작가는 책을 통해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생생한 과거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 역사가 되고 소설이 되어 있었다"며 "그 깊은 아픔을 민족애라는 사랑으로 승화시켜 살아오신 그분들의 삶에 진심으로 고개가 숙여졌다. 글을 쓰는 내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내 주변에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그들의 아픔과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려 왔고 그들과 열띤 토론을 할 때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책은 분명 소설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정신세계나 당시 우리민족 모두가 겪은 아픔에 따른 다양한 감정의 본류(本流)는 결코 가상일 수 없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소설은 일제강점기 말, 넉넉한 집안에서 평탄한 삶을 살던 남평우와 윤채봉이 부부의 연을 맺기까지 벌어지는 우여곡절과 재미있는 일화들로 시작된다. 운명처럼 만난 그들은 결혼 후에 누구보다 행복한 신혼 생활을 보내지만, 곧 광복이 찾아오고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면서 뜻하지 않게 직격탄을 맞는다.
작가는 총 3부작 중 1부에 해당하는 이 작품의 초고를 이미 수년 전 완성해놓고도 여러 사정으로 세상에 내놓기를 미루다가 광복 70주년을 맞는 2015년, 작심하고 출판사에 원고를 넘겼다. 한 장의 빛바랜 사진에서 탄생한 이야기는 실제 역사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생동감 넘치는 대화체와 살아 움직이는 듯 현실적인 인물들에 힘입어 속도감과 몰입감을 얻게 되었다.
윤혜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태양의 그늘은 참으로 놀라운 장편소설이다. 소설을 이제껏 쓴 적 없는 이가 이렇듯 촘촘하고 생생하게 인물과 이야기를 구현해 놓은 것은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실제 경험, 실제 역사에서 추출한 이야기들이기에, ‘현실보다 더 생생한’ 우리 민족의 고난과 고행을 그대로 담고 있기에, 강렬하고 또한 감동적이다"고 소감을 전했다.
어두웠던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살아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외침처럼, 생존을 향한 끝없는 갈망과 위대한 사랑의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오랜 시간 벼리고 벼린 호방한 서사의 향연으로 빠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