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생` 속 장그래(임시완 역)는 뒤늦게 검정고시를 거쳐 원인터내셔널이라는 무역상사의 인턴사원으로 들어간다. 영화 `오피스`에서도 대기업 정직원을 꿈꾸는 인턴이 등장한다. (사진 = tvN) |
만화원작이자 드라마 `미생`에서 바둑기사 출신 장그래(임시완 역)는 뒤늦게 검정고시를 거쳐 원인터내셔널이라는 무역상사의 인턴사원으로 들어간다. 장그래가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는 끝에 되고 싶어했던 것은 정식 사원이었지만, 결국 계약직 사원에 만족해야 한다. 그를 응원했던 많은 팬들은 역시 실망감을 가져야 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보여준 인턴들이 겪는 과정과 상황, 그에 따른 심리묘사는 압권이었다. 그런데 비정규직, 정규직인을 결정하는 것은 계약직 사원을 벗어나는 것일 뿐, 인턴의 등장은 다시금 두개의 이분법 고용구조에서 다시 하나의 계층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다는 점을 잘 보여줬다.
박태준 작가의 웹툰을 영상화한 작품인 영화 `오피스`에서도 인턴이 등장한다. 하지만 장그래처럼 묵묵하게 감내하는 것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대기업 정직원을 꿈꾸는 인턴 이미례(고아성 역)는 약속과는 달리 정직원이 되지 못한다. 인턴에서 바로 정직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신입 인턴이 정직원이 되면서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그녀 대신 정규직 사원이 된 인턴은 집안이 유복해 외국 학교를 나오고 이 때문에 인맥도 좋으며, 여유로운 집안에서 성장, 성격도 좋고 세련된 품행도 지녔다. 그러한 환경적 조건이 다른 상황에서 이미례는 미래가 없었다. 그녀가 후천적인 노력을 기울인다고해서 스스로 극복하고 정직원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이었다는 메시지였다. 그것을 옹호하고 합리화하고 강화라는 회사구성원들에게 분노가 표출되는 내용을 영화는 담고 있다. 물론 그 표출방식은 괴기스럽고 폭력적이었기 때문에 긍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는 없었다. 다만, 인턴들이 겪게 되는 심리적 육체적인 고통을 공감하는 수준에 머물고 만다. 인턴들은 업무적으로 활용되고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인턴은 이렇게 젊은 세대에게 나타나는 특징으로 묶인다. 이를 가리켜 인턴세대라고 할수가 있을지 모른다. 정규직 사원의 경험은 없어도 인턴의 경험이 없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확산돼있기 때문이다. 인턴(Intern)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받은 후 임상실습을 받는 전공의를 말한다. 의사면허가 있기 때문에 의사선생님으로 불릴만 하다. 인턴은 의사에게만 사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회사나 기관에서 정식 구성원이 되기 이전에 일정한 과정을 이수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일정한 직종의 범위에서 모두 구성원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었다. 크게 이상이 없는 상황이라면 인턴사원이나 실습생은 정식사원이 됐다. 인턴을 참지 않으면 돌아버린다.
인하지 턴해버리는 것이 인턴이라는 말이 있다. 즉, 그만큼 각고의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 상황을 사전에 인지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지난 1994년에 방영된 드라마 `종합병원`에서 고달픈 인턴의 삶이 비춰졌는데, 이제 그 인턴보다 일반 기업을 담은 `미생`의 인턴이 더 고통스럽게 보일 뿐이다. 영화만 보면 인턴의 나이대가 넓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영화 `인턴`때문이다.
낸시 마이어 감독의 영화 `인턴`은 젊은 인턴이 아니라 70대의 인턴 사원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한국은 전세계 국가 가운데 가장 흥행성적이 좋은 나라가 됐다. 본래는 박스오피스 순위권 밖이었는데 역주행 해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등 뒤늦게 승승 장구를 해 낸시 마이어 감독이 감사의 인사를 전할 정도가 됐다. 영화의 내용은 열정이 강한 30대 여성 CEO(앤 해서웨이)의 보좌역으로 70대의 시니어 인턴(로버트 드 니로)이 배치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드라마 `오자룡이 간다`에서 젊은 청년 주인공이 회장님의 눈에 들어 인정을 받는 장면과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의 여주인공이 인정을 받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30대의 현실은 폼나는 직장도 어렵고 기업에 다녀도 갑자기 CEO가 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커버하기 위해서 `인턴`은 온라인쇼핑몰이라는 공간과 여주인공이 패션에 대해서 감각을 타고난 젊은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괴팍스런 편집장(메릴 스트립)의 보좌 인턴으로 연기했던 해서웨이였다. 이번에는 영화 `인턴`에서 기업의 대표가 돼 시니어 인턴을 좌지우지 했다.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에서 여주인공(황정음)이 인턴으로 등장하는 모습은 그래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보다는 인턴의 생활이 양호하다.
어쨌든 헤서웨이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인턴의 현실을 잘 반영했다면, 영화 `인턴`의 핵심은 현실성이 아니라 환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인턴이라는 말 때문에 주목을 받은 것 자체가 일단 그런 배경을 짐작하게 만든다. 인턴의 현실을 다룬 그것도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측면을 비추는 일은 일반적이 됐다. 그러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 또한 일반적인 모습이 됐다. 이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영화 `인턴`에서 등장하는 인물의 관계들이다. 여성 주인공이 하나의 아이디어로 단번에 수백명을 먹여살리는 기업의 대표가 되는 스토리에서 남편이 가정살림을 맡고 70대 부사장 출신의 인턴이 자신을 보좌해 준다는 점은 현실의 반대 지점과 풍경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인턴이며 대표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명령을 수행하기에 나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또한 여성의 경우에는 자기의 일을 갖기보다는 집에서 육아와 가사일을 담당하고 있을 상황이 더 현실적인지 모른다.
3년간 정부는 12만 5000여명의 청년 인턴을 뽑을 예정이다. 대상은 중소에서 중견으로 확대된다. 인턴은 이제 일상이 되는 셈이다. 전에는 대학생이거나 갓 졸업자에게만 인턴이 해당됐지만 이제는 더 좋은 일자리를 위해서 30대에도 인턴을 전전한다. 이른바 인턴 스펙 때문인 것이다. 인턴은 한국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해외 여러나라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돼 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무급인턴이 매우 증가했다. 2000여명의 인턴을 매년 선발하는 골드만삭스의 경우 야간 근무를 금지했다고 한다. 특히, 밤샘근무가 문제였다. 과로로 숨지거나 스트레스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정직원이 되기 위한 분투는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이나 선택으로 치닫게 만들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인턴 세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만큼 고착화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이미 농후하다.
인턴이 계급이나 계층적인 집단을 형성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경험적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이들은 많아지고 있다. 때문에 예전에는 그것을 거부하고 말거나 저항의 모습이 많았다고 하면 인턴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오히려 스펙으로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무급이라는 점이 좌절하게 했지만, 무급도 이제는 둔감해지고 있다.
그런 흐름의 한쪽에서는 그들을 대변할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이는 비단 지금 현재의 인턴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잠재적으로 인턴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들의 현실을 반영하거나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행위들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조치나 방안이 모색돼야 함을 말한다. 기업에서는 인턴직에 대한 직무분류나 규정이 새로워져야 한다.
인턴문화가 당연시되는 상황에서 인턴제도는 다른 문화적 심리기제를 형성할 수도 있다. 철저하게 계층화되는 단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생존의 비법이나 처세 그리고 전략에 대한 관심이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단과 목표가 바뀌고 목적을 위해서 수단의 강구를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이되면 시간이 흐르는 과정에서 그 모순도 깊어지고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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