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을 개발해도 자사 온라인쇼핑몰 제외하고는 판매할 곳이 없어요. 또한 잘된다 싶은 아이템이나 틈새시장은 곧바로 대기업 브랜드가 치고 들어오면 답이 없습니다" -중소 화장품 브랜드 관계자-
한류와 더불어 글로벌 시장에 내놔도 손색 없는 제품력으로 국내 화장품 산업이 호황을 맞고 있지만, 정작 중소 화장품 기업들은 제품을 유통할 곳을 찾지 못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대한화장품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생산실적을 보고한 제조판매업자 수는 2424개사다. 생산실적 1000억원 이상인 기업은 8개사로, 전체 제조판매업자의 0.3%에 불과하지만, 이들 업체의 생산실적은 전체의 74.1%를 차지한다. 특히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상위 2개사가 전체 생산실적에 약 60%에 달한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화장품 시장은 불균형이 매우 심각하다.
#대기업이 과점한 유통구조
이같은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국내 화장품 유통의 구조적인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영문 이름 그대로 자사 브랜드 한곳의 제품만 판매하는 원브랜드숍의 등장의 여파가 컸다. 2000년대 초 처음 등장한 원브랜드숍은 지난해 매출 규모 2조원대를 기록하며 과거 다양한 브랜들의 제품을 판매하던 화장품전문점의 몰락을 가져왔다. 물론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판매하는 아리따움, 보떼 등과 같은 멀티브랜드숍이 있지만, 각각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그룹사 내의 제품들만 판매하는 형태다. 결국 원브랜드숍과 멀티브랜드숍이 전체 화장품 로드숍의 80~90%에 육박하는 현 시점에서 중소 화장품 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통채널은 올리브영이나 왓슨 등의 H&B숍, 면세점, 온라인(오픈마켓,소셜커머스, 브랜드몰, 자사몰) 등으로 국한된다.
#남겨진 유통채널의 수수료 차별
하지만 남겨진 이 유통채널들 조차도 중소기업들에게 진입 장벽은 높기만 하다. 높은 수수료 때문이다. 더욱이 인지도 낮은 중소기업 화장품 제품에는 대기업 브랜드와 비교해 차별적인 수수료가 매겨진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 의 설명이다.
본지가 국내 화장품 브랜드 10개 업체를 대상으로 홈쇼핑 진행시 지불하는 수수료율을 조사한 결과 브랜드 밸류가 있는 브랜드들은 평균 41%대, 그외 중소 기타 브랜드들은 45%대의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었다. 화장품기업들은 높은 수수료와 더불어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에도 부담을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대부분의 홈쇼핑사에서 요구하고 있는 정액제가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피할 수 없는 수수료 방식이다. 협력사들이 정액제를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는 제품의 판매가 부진할 경우 재고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재고 소진이 안되면 유통기한 문제와 창고보관료 문제로 제품을 전량 폐기할 수 밖에 없다. 중소기업으로서는 홈쇼핑 한번 잘못하면 문닫아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협력사들은 홈쇼핑사들이 요구하는 과도한 프로모션이나 판촉에도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H&B숍도 통상 30%이상의 수수료가 책정되는데, 중소기업의 경우 최대 50% 이상까지 치솟는 경우가 많다. 설사 유통채널에에 입점했다고 하더라도 소위 이들의 `갑질`에 울분을 터트리는 경우가 많다. 최근 평균 매출 50억원대 미만의 중소기업은 대기업 H&B숍의 입점해 있는데, 이미 합의한 프로모션 계획도 MD들이 멋대로 철회하거나 독점 아니라는 이유로 걸핏하면 철수를 요구하고 있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갑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있다.
면세점 또한 면세점측이 제시하는 평균 수수료와 중소업체들이 말하는 평균 수수료에는 평균적으로 약 5%의 차이가 있다. 중소기업 브랜드에는 통상 55%의 수수료가 책정된다는 것이 화장품 업계의 반응이다.
그나마 수수료율이 낮다고 하는 오픈마켓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오픈마켓측은 통상 10% 초반에서 수수료가 책정된다고 하지만, 다수의 중소 화장품 관계자들은 실제 평균 수수료에 대해 30~35%에 이른다고 주장한다.10% 초반의 수수료의 적용을 받는 것은 주요 브랜드에 국한되는 경우라는 것이다.
#잘 된다 하면 자본과 유통력 장악한 대기업 진입
주력 분야 구분 없이 잘 된다 하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대형 화장품 브랜드의 시장 진입에 중소 기업들은 또 다시 갈길을 잃는다.
중소 화장품 기업 K사는 색조 및 네일케어 제품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고 작지만 나름의 수익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 네일케어제품 시장이 커지면서 원브랜드숍과 멀티브랜드숍들이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1+1 이벤트`, `가격할인`, `대규모 홍보 마케팅` 등과 함께 시장에 뛰어들면서 매출이 30% 이상 감소했다. 사업 유지에 대해서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이 기업이 틈새시장이라고 보고 주력하려고 했던 또 다른 아이템에도 대기업 브랜드가 대규모 프로모션을 기획하고 있어 또 다시 긴장하고 있다.
모 회사 관계자는 "현재 국내 화장품 유통 구조에서, 막대한 자금력과 유통채널을 장악한 대기업 브랜드와 경쟁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며 "특별한 소재의 좋은 제품을 개발해봐야 유통이 막힌 현재 국내 시장에서 무의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