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성훈 판정의 아쉬움
40대의 노장 추성훈은 놀라운 몸 상태를 가지고 계체량 행사에 나타났습니다. 얼마나 관리가 철저했을지, 여러 가지 욕구와 어떤 사투를 벌였을지 상상이 가는 모습이었고 팬들 사이에서도 존경스럽다는 반응이 폭발적으로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경기력이란 몸 관리가 아무리 좋아도 나이에 따라 줄어드는 여러 능력의 영향을 받게 돼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시력과 반사능력의 저하로 상대의 타격시도에 대한 방어와 목표물을 추적해 타격을 성공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집니다.
추성훈의 상대였던 알베르토 미나는 11연승 중인 무패 신예였죠. 모든 경기를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 지었으며 그중 9경기는 1라운드에 끝을 봤습니다. 어마어마한 공격력을 가진 파이터였던거죠. 추성훈은 1라운드를 상대에게 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주지는 않았고 강력한 레그킥을 잊을 만 하면 하나씩 적중시켜 미나의 왼쪽 다리에 승리의 씨앗을 파종했습니다. 2라운드 들어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상대의 왼쪽 허벅지에 피멍이 비치면서 스텝이 둔해졌습니다. 그리고 미나는 눈에 띄게 추성훈의 레그킥을 의식하게 됐습니다. 추성훈이 다리에 정신이 팔린 미나를 다른 테크닉으로 공략할 기회가 온 겁니다.
그러나 추성훈의 페이스가 올라가고 승부의 추가 추성훈 쪽으로 기울어 가나 싶었던 2라운드 후반, 미나의 펀치가 추성훈의 턱을 흔들었고 피 냄새를 맡은 미나가 파상공세를 퍼부어 추성훈은 빈사상태에 몰렸습니다. 11승 무패, 100% 피니쉬율을 가진 젊은 선수 앞에서 치명상을 입고 난타당하는 41세의 노장 사랑이 아빠. 그의 팬들이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던 그 순간, 다행히 라운드가 종료되었습니다.
당시 상황은 미나의 사형 집행이 잠시 연기된 것일 뿐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3라운드가 시작됐을 때, `고생 더 하지 말고 적당히 항복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노후에 고생을 많이 하는 파이터들은 투지가 강한 스타일이고 추성훈이딱 그렇기 때문입니다. 20대에 맞는 한대와 40대에 맞는 한대는 상처의 깊이가 다르죠. 하지만 2라운드 말, 추성훈을 보내기 위해 맹공을 쏟아붓던 미나의 체력은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고 추성훈은 야생동물과 같은 회복력을 과시했습니다. 그리고 추성훈이 공세의 끈을 잡아챘습니다.
미나는 추성훈의 펀치와 킥을 연이어 허용하면서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3라운드의 중반부터 미나는 일부러 넘어지고 드러누워 그라운드 플레이를 시도했습니다. 추성훈은 그것을 받아줄 마음이 없고 일어나라는 사인을 보냈습니다. 이 경우, 즉 한 선수는 누워있고, 다른 선수는 서 있으며 일어나라는 사인을 보내면 심판은 누운 선수에게 스탠드업을 명령합니다. 체력이 고갈되고 맷집의 한계 근처까지 도달해 조금만 더 공격을 받으면 전투 불능이 될 미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주심이 일으켜 세우면 잠시 후 또 어떤 식으로든 계속 넘어져서 KO 아니면 이기기 힘들었던 추성훈의 마음을 급하게 했습니다.<i></i>방송의 캐스터가 `이건 침대 격투인가요?` 라는 맨트를 꺼냈을 만큼 지저분하고 비겁한 운영이었습니다.
UFC 룰북의 15장, 파울의 A. xxvi(26)항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겁을 먹고 접촉을 피하거나 고의로 마우스피스를 뱉거나, 부상을 가장하는 행위는 반칙이다` 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미나의 행동은 이 규칙의 위반으로 해석될 수 있는 형태였습니다. 만약 거기서 파울에 의한 감점이 주어졌다면 어땠을지. 레프리의 운영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A 26항이 경기에 적용되는 케이스는 거의 없습니다. 만약 그게 갑자기 나와서 추성훈이 이겼다면 또 편파니, 어쩌니 하면서 괜히 추성훈에게 비난이 쏟아졌을 수도 있습니다.
수치스러운 승리보다는 당당한 패배가 더 멋집니다. 경기에는 졌지만, 싸움에서는 추성훈이 이겼습니다. 그건 경기를 본 사람들이 다 아는 얘기죠. 최근 추성훈은 UFC와의 계약을 연장했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한동안 노장의 투혼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글 / 격투 전문 칼럼니스트 이용수
편집 / 한국경제TV MAXIM 오원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