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정부가 오늘 내놓은 ‘여신심사 선진화 방안’을 한 마디로 표현한 말입니다.
정부는 지난 7월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종합대책의 후속 조치로 ‘여신심사 선진화 방안’을 마련해 수도권은 내년 2월, 다른 지역은 내년 5월부터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방안은 지난번 ‘안심전환대출’에서 보여준 고정금리·분할상환 원칙을 보다 구체화하고 대출자의 상환능력 심사를 더욱 철저히 하도록 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다만 내년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대출심사 기준은 제도 시행 이후에 발생하는 신규 대출에만 적용된다는 점에서 가계부채 총량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기존 변동금리, 거치식 대출을 고정금리, 비거치식 대출로 전환하는 게 아니라 신규 대출에 한해서만 고정금리, 비거치식으로 유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대출구조의 질적 개선 효과는 안심전환대출에 비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또 부동산 시장에 줄 수 있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신규 분양 아파트에 대한 집단대출(중도금, 이주비, 잔액 대출 등)도 적용대상에서 배제했다는 점도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금융위는 집단대출까지 억제할 경우 자칫 신규 분양시장에 찬물을 끼얹어 부동산 경기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어 예외를 두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수도권 일부와 지방에서는 이미 공급 과잉 전망이 나오고 있어, 실제 입주가 시작되는 2~3년 뒤에는 대규모 미분양 사태에 따른 집값 하락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 대책에도 불구하고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초이노믹스’의 부작용이 불과 2~3년 뒤에 현실화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에 대해 경제전문가들은 집 값 하락은 못 막으면서 가계부채만 늘린 셈이라고 비판합니다.
또 거시안정장치인 DTI와 LTV를 경기 부양책으로 썼던 것 자체가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난해 8월 정부의 DTI와 LTV 규제완화를 계기로 급증하기 시작한 가계부채는 올 연말을 전후해 1,200조원을 돌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대출규제 강화는 이 같은 상황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정책수단들을 수시로 바꾼 만큼, 시장의 신뢰도 땅에 떨어진 상태입니다.
앞으로는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각종 규제 완화책을 다시 꺼내들어도 투자심리가 좀처럼 살아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번 대책에는 주택 구입 외에 생활 자금이나 사업 자금 마련을 위한 가계대출 증가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들이 빠져있습니다.
대부분이 주택 구입을 목적으로 하는 대출의 경우에만 적용되고 기타 생활자금 마련 등을 위한 소액 대출은 예전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키로 해 ‘반쪽짜리’ 대책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일부에서는 고령자와 자영업자, 저소득층 등 금리 인상이나 경기 침체에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취약 계층의 부채 상환 부담이 여전히 높고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데도 정부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게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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