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신불수(半身不隨)’
얼굴의 반쪽과 같은 쪽 팔과 다리에 운동마비가 일어난 상태를 의미하는 의학용어입니다.
금융감독원 직원들은 요즘 이 말을 자신들의 처지를 빗대어 자주 쓰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검사와 제재에 대한 권한이 축소되면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워 졌다는 푸념입니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행정지도 등 일상적인 감독 업무도 상급기구인 금융위원회에 일일이 보고해야 하는 만큼,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일부에서는 ‘금융개혁’이라는 아젠다를 금융위가 독점하다보니 금감원은 개혁의 파트너가 아니라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옵니다.
두 기관의 이 같은 갈등은 금융위가 오늘 발표한 ‘금융규제 운영규정’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운영규정에 따르면 앞으로 금융당국은 행정지도를 할 때 구체적이고 명확한 내용으로 해야 하고 금융회사가 행정지도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줘서도 안됩니다.
또 원칙적으로 구두지도는 금지되고 법령 등에 규정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융회사의 인사나 가격(금리, 보험료 등), 배당 등 내부 경영사항에 개입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울러 금융당국이 규제를 신설할 때는 국제 수준과의 정합성을 파악해 과도한 규제라고 판단될 경우에는 규제를 신설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 다 좋은 내용이고 상당부분 이미 두 기관이 합의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행정지도의 절차를 규정하면서 금융위와 금감원의 사전협의를 의무화했다는 데 있습니다.
대부분의 행정지도를 금융위가 아니라 금감원이 하고 있고 두 기관이 대등한 위치도 아니라는 점에서 사실상 ‘사전보고’를 의무화 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와 제재는 물론 행정지도 등을 통한 일상적인 감독업무도 금융위가 모두 장악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일부에선 이렇게 까지 하면서 금융위와 금감원을 독립기관으로 분리해 운영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말도 나옵니다.
금감원 고유 업무에 금융위가 일일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거면 차라리 과거 금융감독위원회 체제처럼 두 기관을 통합하자는 이야기입니다.
금감원의 독립성과 전문성에 대해 권한을 부여해 준 정부조차 믿지 않는데 금융회사나 금융소비자가 금감원을 얼마나 신뢰하겠느냐는 불만도 나옵니다.
이처럼 검사와 제제, 감독 등 대부분의 업무에서 손발이 묶인 상황에서 대형 금융사고라도 터지면 일은 누가 하고 책임은 누가 지냐는 말도 나옵니다.
쉽게 말해 ‘반신불수’ 상태에서 ‘도둑’이라도 들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는 이야기입니다.
금감원 신세가 이렇게까지 된 데는 물론 금감원 스스로 책임이 있습니다.
그동안 금융회사 인사 등 내부 경영에 간섭해 왔던 것도 사실이고, 불필요한 검사나 제재, 행정지도 등을 남발해 ‘권한남용’에 대한 시비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는 금감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지 상급기구가 권한을 다 빼앗아 가거나 권한 행사에 앞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일일이 보고하도록 해서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금감원의 독립성 훼손과 이에 따른 권한 약화는 감독과 검사, 제재 등을 받는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겠지만 이들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할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규제완화도 좋지만 규제완화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각종 소비자 피해 문제는 결국 금감원이 책임지고 처리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부에서는 금감원의 독립성 훼손을 막기 위해서는 원장과 수석부원장을 금융위 출신 공무원들이 독점하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쉽게 말해 검사 출신을 경찰청장으로 임명하는 셈인데 이렇게 해서 기관의 독립성이 유지되겠냐는 것입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맡겨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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