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배고픈데 너무 좋다"
영화 `히말라야` 속 정우의 대사다. 배우 정우는 영하 40도 안팎의 혹한에도 산행을 멈출 수 없는 산악인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정우 역시 그랬으니까.
정우는 영화 `7인의 새벽(2001)`에서 단역으로 데뷔했다. 단역과 조연을 번갈아 하며 연기력을쌓았고 2008년에는 영화 `스페어`에서 주연을 맡았다. 이후 영화 `바람(2009)`에서 그만의 특색있는 연기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며 마니아층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정우가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은 시기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2013)`에 출연하고부터다.10년 넘게 무명생활을 했던 정우는 그냥 연기가 좋단다. 그런 그에게 "춥고 배고픈데 너무 좋다"는 대사는 무척이나 와 닿았을 터. 그 이유를 알기에 `히말라야`를 촬영하면서도 `산악인들이 왜산에 오를까`라고 묻지 않았다.
`히말라야`는 2005년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동료 박무택(정우)의 시신을 찾기 위해 엄홍길 대장(황정민)이 꾸린 휴먼원정대가 히말라야로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휴먼드라마다. 정우는영화에서 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안고 살아가는 박무택 역을 맡았다. 그는 극 중에서 자신의꿈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된 열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박무택과 어딘가 닮아 있는 정우를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잘 봤다. 관객들이 얼마나 봤는지 궁금하지 않나.
그 부분에선 덤덤하다. 기왕이면 많은 분이 봐주셨으면 좋겠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손익분기점만 넘었으면 좋겠다.
덤덤하다는 반응이 의외인 것 같다. 주연이고 제작비가 100억이 넘게 들어간 영화라 부담될 줄알았는데.
촬영할 때도 그랬었고 이후에 홍보활동 할 때도 마음가짐은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이다.이 영화를 어떻게 봐주실지 모르지만, 그래도 좋게 봐주시길 바랄 뿐이다.
VIP 시사회 때 반응을 보면 대충 알지 않나.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지만, 고생했다고 좋게 말해주시는 걸 알기에 주변 반응을 신뢰하지 않는편이다.
직접 네팔과 몽블랑에 가서 촬영했다고 들었는데 찍기 전에 준비한 게 있나.
준비는 했었다. 촬영 당시에 우리나라가 생각보다 따뜻해서 설산을 찍어야 하는 장면이 필요해서원래 계획에 없던 몽블랑에 가서 촬영했다. 나름대로 준비를 했는데 거의 막바지 촬영 때 네팔과몽블랑에 가게 돼서 이미 체력이 소진된 상태였다.
예정에 없던 몽블랑 촬영이 우리나라 날씨가 따뜻해서 눈이 다 녹아서라고 하던데.
맞다. 그런데 막상 몽블랑에 가니까 눈보라가 하나도 안 치고 날씨가 너무 좋아서 걱정했다. 다행이 마지막 날 화이트아웃이 한 번 와서 무리 없이 촬영했다.
CG가 7, 실사촬영이 3이라던데 맞나.
제가 체감하기에는 실사가 7, CG가 3인 것 같다. (웃음) 촬영할 때 뿐만 아니라 영화를 봤을 때도 어떤 장면이 CG이고 어떤 부분이 실사인지 잘 모르겠더라.
영화 `에베레스트`가 지난 추석에 개봉했을 때 `히말라야 어떡하냐` 이런 말이 많았었다. 제작비도 어마어마하게 차이 나니까 관객들은 단순비교할 수도 있지 않나.
그 영화도 재미있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저희 영화는 산보다는 사람에 포커스가 맞춰져있다. 그래서 보는 관점 자체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박무택을 연기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뭔가.
좀 더 긍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려고 했다. 관객분들이 박무택이라는 캐릭터를 너무 무겁게만 생각하지 않게 하려고 초중반까지 조금은 오글거리는 재밌고 유쾌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아무래도 뒷부분에서 좀 더 안타까운 감정이 배가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가 나오고 나서 박무택 씨 가족분들도 보셨나.
잘 모르겠는데 이제 곧 보실 것 같다. 그 부분도 상당히 궁금하다. 유가족분들에게 왠지 모를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다. 아무리 제가 최선을 다해서 연기했다고 해도 행여나 한 장면 대사 한 마디라도 유가족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박무택 대원의 유가족과 만난 적이 있나.
촬영장에서 다들 촬영하고 있을 때 한 번 방문하셨다고 했는데, 그때 촬영 중이어서 뵙지 못했다.
보통은 산에서 동료가 죽으면 그 시신을 놓고 온다고 들었다.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러 간 것은세계 산악사에서도 유례가 없다고 하는데 실제라면 동료를 위해서 갈 수 있나.
동료라는 두 글자로는 쉽지 않을 거 같다. 사랑하는 사람, 그게 동료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있고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갈 수도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내가족이 거기 있다고 생각을 하면 생각하는 기준이 달라질 거 같다.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다르다.
히말라야에서 있으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촬영이 아니고 관광의 목적으로 갔더라면 내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좀 여유 있게 트레킹을 했을거다. 촬영 때문에 간 거라 제작비라든가 시간 등 외적인 것들도 신경을 써야 했다. 거기서 오는부담감이나 압박감이 있었다. 히말라야에서 고산병을 앓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려가서 쉬었다가다시 올라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예산과 시간 때문에 원래 계획했던 것들이 흐트러질 수있어서 힘들어도 무조건 촬영을 해야 했다.
한국 겨울 추위와는 얼마나 다른가.
아휴 당연하죠. 거기는 추위라는 느낌이 물리적인 느낌보다는 체감하는 기운이라고 해야 하나?산마다 가지고 있는 기운이나 에너지가 있지 않나. 일반적인 기운은 아니었다. 물론 어느 산이든지 야생의 기운은 있기 마련인데 히말라야는 굉장히 거칠고 웅장한 느낌을 받았다.
`히말라야`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
물론 현지에서 적응하는 거라든지 고산병 같은 체력적인 부분도 힘들었지만, 영화에 참고될만한것들이 없어서 힘들었다. 배우가 연기할 때 참고할 게 없으면 굉장히 혼란스럽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영화적으로 보여야 하며 어떤 부분에서 사실적으로 보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많이했다. 또 선배님들보다 경험도 부족하니까 선배님이 좋은 의견을 많이 내주시기도 했지만 내가혼자 판단해서 연기를 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에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다. 특히나마지막에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사실 적인 면을 보여줘야 하는지 그리고내가 추위를 얼만큼 느끼고 있어야 하는지 또 그거보다 더 중요한 감정은 무엇인지. 여기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렇다 보니까 좀 쉽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산악영화라고 하면 비주류에 속하는데 산악영화라고 했을 때 처음에 느낌이 어땠나.
그게 어떻게 보면 고정관념이다. 이 영화는 산을 다루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산이 가지고 있는어떤 감정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산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한다. 물론 영화의 시작은 엄홍길 대장과 박무택 대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지만 두 분도 결국에는 한 인간이라는 거다.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선택할 때 어떤 부분이 중요하게 작용을 한 것인지 궁금하다.
제일 중요했던 게 시나리오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감정선과 에피소드다. 흘러가는 영화적인 메시지가 무엇인지 공감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히말라야뿐만 아니라 제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다. 이런 것들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그 이후에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번에 함께 한 황정민 선배 어땠나.
저한테 굉장히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워낙 체력이 좋으셔서 거기에 내가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이번에 함께한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어떻게 완성할 수 있었을까생각한다. 좀 아쉽고 안타까웠던 것은 배우들이야 나중에 개봉하면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는데스태프분들은 다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고 그분들한테 좀 더 신경을 써 드리고 도움을 드렸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안타깝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나 순간 있나.
배우로서, 사람 정우로써 매우 큰 경험을 한 것 같다. 평소에 궁금해하지 않았던 부분들까지도경험을 했고 주연배우로써 가져야 할 덕목이 연기만 잘해서는 아니라는 걸 많이 느꼈다.
그럼 어떤 덕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영화라는 건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공동으로 협심해서 만드는 작업이다. 누구 한 명 없으면 흔들릴 수 있는 부분에서 생각했을 때 배울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때 알지 못했던 것들을 선배님들하고 작업하면서 많이 배운 것 같다. 쎄시봉 같은 경우는 또래들이랑 촬영해서 마냥 즐기면서 즐겁게 촬영했다. 근데 히말라야는 굉장히 힘든 상황이지 않나. 그럴때 어떻게 하면 나중에는 선배로서 좀 잘 이끌어 갈 수 있을지 많이 배웠다.
개봉 시기와 비슷하게 `꽃보다청춘`이 나오는데 아이슬란드 어땠나.
너무 좋았다. 제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다.
겨울이랑 뭔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웃음) 히말라야 때 했던 고된 경험이 이번 여행할 때 도움이 됐다.
`꽃보다청춘`에 출연한 멤버가 원래 친분이 있다던데.
하늘이도 친하고 정석이도 친하고 상훈이 형도 친하다. 한 열흘 다녀왔는데 재미있었다. 여행이란 게 행복하기 위해서 가는 건데 제대로 힐링하고 왔다. 또래 친구들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주제로 같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각자의 삶이나 일상이 있으니까. 이번 기회를 통해 친구들과 낯선 나라에서 즐겁게 지내다 왔다.
넷 중에 누가 대장역할을 했나.
전 바보 역할이었고. 대장이 있다기보다는 각자의 파트가 있었다. 거의 협심해서 상의하고 서로의견 내고 그랬던 거 같다.
네 명이 다니면서 의견충돌은 없었는지.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거 같다. 어떻게 편집이 될지 모르겠는데 저희는 되게 즐거웠다.
원래 여행을 좋아하나.
원래는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다. 여행하더라도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한다. 그냥 그 공간에서바람 소리 듣고 새소리 듣고 공기, 나무 냄새 맡고. 영감 같아요. (웃음) 하루종일 있으면 심심하니까 한두 군데 정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찾아간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우리나라 음식이 최고다.
홍보 활동 끝나면 여유가 생길텐데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좀 쉬고 빨리 차기작 정해서 드라마든 영화든 할 생각이다. 아마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방송으로는 꽃청춘이 있으니까. 작품활동을 쉬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게 목표다. 좋은 작품이 있고 제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진 영화라면 쉬지 않고 촬영하고 싶다. 그게 노는 거라고 생각한다.
정우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팬분들이 `히말라야` 촬영할 때 정말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어느 세트장, 촬영장이든 어떻게 알고 와주셔서 뷔페부터 여러 음식과 선물들을 보내주셨고 진짜 많은 힘이 됐다. 팬분들과는 정말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진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라며 팬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메시지를 전했다.
사진 한국경제TV MAXIM 윤예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