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통합(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브렉시트(Brexit)란 ‘Britain’과 Exit’의 합성어로 유럽통합(EU)에서 영국의 탈퇴를 의미한다. 일부 우려대로 브렉시트가 확정될 경우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보다 2배 이상 큰 한국을 비롯한 세계경제와 증시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모든 세계경제 활동이 잠시 멎었다. 미국 금리인상, 유럽과 일본의 추가 금융완화 등 중요한 정책결정도 최소한 한 달 이상 연기됐다. 인내심 갖고 브렉시트 여부를 확인한 후에 결정하겠다는 불안감에서 나온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그만큼 EU는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질서 형성과정에서 커다란 획을 그어 왔기 때문이다.
결과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조세(Too Close To Call)’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탈퇴’가 ‘잔류’보다 다소 앞서는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갈수록 커지는 ‘표본오차(표본의 대표성 문제)’와 ‘비표본오차(의도와 달리 응답하는 역선택 등 표본 대표성 이외 문제)로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잔류’가 ‘탈퇴’보다 더 높게 나온다. 일반 국민보다 경제적 득실을 더 따지는 응답 특성상 탈퇴 때 영국이 받는 피해가 클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측력이 가장 높은 정치도박 사이트에서는 ‘잔류’될 가능성에 80% 이상 자신의 소중한 돈을 걸고 있다.
<그림 1> Brexit 여론 조사 결과 추이
주 : 조사기관 YouGov 기준 여론 추이
자료 : 블룸버그, 미래에셋증권
불확실성이 증폭될 때에는 시장은 선제적으로 움직인다. 가장 뚜렷한 것은 투자자 성향이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으로 빠르게 이동되는 움직임이다. 스위스 프랑화, 엔화가 안전통화로 부상되면서 니케이 지수는 16000선이 붕괴됐다. 독일 등 선진국 국채금리도 마이너스 국면으로 떨어졌다(국채값 상승).
유럽통합은 단일 세계경제 현안 중 역사가 가장 길다. 자유사상가에 의해 ‘하나의 유럽구상’이 처음 나온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한다면 110년, 이 구상이 처음 구체화된 1957년 로마 조약을 기준으로 한다면 60년이 넘는다. 한 마디로 유럽 국민의 피와 땀이 맺히면서 어렵게 마련된 것이 바로 유럽통합이다.
두 가지 경로로 추진돼 왔다. 하나는 회원국수를 늘리는 ‘확대’ 단계로 초기 7개국에서 28개국으로 늘어났다. 다른 하나는 영국은 가담하지 않았지만 회원국 간 관계를 끌어올리는 ‘심화’ 단계로 유로화로 상징되는 경제통합(EEU)에 이어 정치통합(EPU), 사회통합(ESU)까지 달성해 간다는 원대한 구상이었다.
하지만 유럽통합헌법에 대한 유로존 회원국의 동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주권 문제로 ‘심화’ 단계가 먼저 난관에 부딪쳤다. 오히려 EEU에 잠복됐던 불안요인인 재정위기가 터지면서 퇴보된 느낌이다. 유럽통합 과정에서 영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감안할 때 브렉시트가 통과된다면 ‘확대’ 단계도 커다란 시련이 예상된다.
다른 회원국 탈퇴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 높다. 모든 회원국은 경기 침체 속에 난민, 테러 등이 겹치면서 유럽통합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특히 유럽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유로존 탈퇴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던 ‘PIGS(포르투칼,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가 동참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림 2> 영국, 유로존 경제성장률 비교 <그림 3> 회원국 별 순분담금 규모
자료 : 블룸버그 주 : 2014년 기준
자료 : 블룸버그 자료 : 유럽연합집행위원회
분리 독립 운동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의 스코틀랜드, 스페인의 카탈루나와 바스크, 북부 이탈리아, 네덜란드의 플랑드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와 근접한 동부 등이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회원국 탈퇴가 잇따르고 분리 독립 운동마저 일어난다면 유럽통합은 붕괴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림 4> 영국 순이주민 수 추이 <그림 5> 총 인구대비 EU회원국 국적자
자료 : CEIC 자료 : Eurostat
영국 재무부는 브렉시트가 결정될 경우 2030년까지 영국 경제가 6% 위축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가구당 연간 4천 300파운드(현재 환율로 702만원)의 손실을 가져다주는 커다란 규모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브렉시트가 발생되면 영국 국내총생산(GDP)는 잔류했을 때와 비교해 2020년에는 3%, 2030년에는 5% 위축될 것으로 추정했다
조셉 바이너(J. Viner) 등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처럼 경제발전단계가 비슷한 국가끼리 결합하면 무역창출효과가 무역전환효과보다 커 역내국과 역외국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통합에 가담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앞으로 유럽통합은 회원국의 현실적인 제약요건을 감안해 새로운 방향이 모색될 것으로 예상된다.
탈퇴와 분리 독립은 쉽지 않은 문제다. 1975년 치러졌던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부결됐다. 1995년 퀘백과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투표도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반대가 더 많이 나왔다. EU 잔류를 주장하는 조 콕스 영국 하원 의원의 사망소식도 선거 막판에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통합 앞날은 ‘현 체제 유지(muddling through)’, ‘붕괴(collapse)’, ‘강화(bonds of solidarity)’, ‘질서회복(resurgence)’ 등 네 가지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유럽재정위기, 브렉시트 등으로 노출된 문제를 회원국이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이익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세계 경제와 증시도 진흙탕 속을 헤맬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영국과 다른 회원국 모두에게 차선책으로 ’B-EU(Britain+EU)’ 방안이 부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B-EU’는 영국을 EU에 잔존시키면서 난민, 테러 등에 대해 자체적인 해결권한을 갖는 방식이다. 이때 영국은 EU의 구속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국 현안을 풀어갈 수 있어 ’브렉시트‘보다 더 현실적인 방안이다.
‘B-EU’가 선택된다면 프랑스, 벨기에 등과 같은 테러 피해로 국수주의 움직임이 거센 회원국이 이 방식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B-EU’에 이어 ‘F-EU(France+EU)’까지 적용될 경우 유로존에 이어 EU 차원에서도 ‘이원적인 운용체계`가 공식적으로 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경제와 증시 흐름에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이원적인 운용체계는 유로화가 도입위기 이전에 운영됐던 ‘유럽조정메커니즘(ERM?European Realignment Mechanism)’과 원리는 동일하다. 독일 등과 경제여건이 좋은 회원국(good apples)은 경제수렴조건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고, 그리스 등과 같은 나쁜 회원국(bad apples)은 느슨하게 운영됐다.
유로존의 기본골격도 보완될 가능성이 높다. EEU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통화통합과 재정통합이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주무부서로 유럽중앙은행(ECB)과 가칭 ‘유럽재정안정기구(EFSM?European Fiscal Stabilization Mechanism)’, 상징물로 유로화와 유로본드 간 ‘이원적 매트릭스` 체제를 갖춰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탈리아 천문학자와 물리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극한 상황에서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고 던진 말 한 마디가 먼 훗날 높게 평가받으면서 `지동설‘이 확고해 졌다. 브렉시트 등으로 유럽통합 앞날이 당장은 어두워 보이지만 그 속에서 움트고 있는 새로운 통합의 싹을 투자자는 읽어야 나중에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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