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지난 17일 영동고속도로 5중 추돌사고로 숨진 딸(21)의 빈소를 지키던 아버지는 “경찰서에서 본 사고 영상이 떠올라 힘들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는 중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중 방학을 맞아 한국에 돌아와 강원도 강릉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한 친구의 할머니 초대로 친구들과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가 귀갓길에 사고를 당했다.
차량 정체로 서행 중이던 이씨가 탄 K5 승용차를 뒤따르던 관광버스가 달리던 속도 그대로 들이받았다. 운행기록계에 기록된 당시 버스 속도는 시속 105㎞였다.
불과 30분 전까지 가족들에게 카카오톡으로 유머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 밝은 목소리로 양떼목장이라던 딸이 그렇게 떠났다.
"항상 웃고 남을 배려해서 친구가 많았어요. 어제는 학교·교회 친구 50여 명이 중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라던 아버지는 "딸 때문에 우리 가족이 웃고 살았고 아직 해주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라며 눈물을 삼켰다.
이 장례식장에는 이씨 말고도 함께 승용차에 타고 있다가 변을 당한 친구 3명의 빈소가 차려졌다.
다른 이모(21·여)씨는 아들만 셋인 집안의 유일한 딸이었다. 대학 시절 과대표를 맡고 봉사활동에 열심이던 이씨는 졸업 후 어머니의 일을 돕던 중 휴가를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이씨 아버지는 "사고를 낸 버스 운전사는 코를 조금 다쳤다는 이유로 아직 조사를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빨리 진상이 밝혀져서 잘못한 만큼 처벌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의 오빠는 "토요일에 여행 잘 다녀오고 물조심하라고 카톡하고 일요일에는 일 때문에 통화를 못했는데 그게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장모(21·여)씨 가족은 사실상 가장을 잃었다. 장씨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없이 어머니, 동생과 살며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 가계를 이끌었다.
그런 딸을 먼저 보낸 어머니는 "엄마가 혼자라는 이유로 뭘 하든 항상 제게 도움이 되려고 했어요. 이번에도 알바비를 아껴 강릉까지 갔는데, 왜 1박만 하고 오냐고 했더니 2박 하면 돈이 많이 든다고…"라고 간신히 입을 연 뒤 이내 오열했다.
장씨 외삼촌은 "조카는 길이 막혀서 서 있었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사고가 날 수 있습니까"라며 "믿기지 않고 볼 엄두가 안 나서 아직 사고 영상을 못 봤어요. 볼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고개를 떨궜다.
유족들은 견디기 힘든 슬픔 속에서도 이러한 허망한 죽음이 더 이상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한 유족은 "버스나 트럭 같은 대형차량 운전자들이 보다 경각심을 갖고 운전해서 이런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며 "대형차량을 위한 전용도로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족은 "대형차량에는 운전석을 찍는 블랙박스를 의무로 설치하도록 해 운전자로 하여금 더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사고 발생 시 원인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7일 오후 5시 54분께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영동고속도로 봉평 터널 입구에서 난 5중 추돌사고로 이씨 등 여성 4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쳤다.
경찰은 당시 사고로 코뼈 등을 다쳐 입원 치료 중인 관광버스 운전자 방모(57)씨를 방문 조사한 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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