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2일 박근혜 대통령은 "막강한 권한을 주겠다"며 김병준 총리 내정자를 지명했다. 같은 날 개각인선에는 임종룡 경제부총리 내정자도 포함됐다.
그렇게 내정된 임종룡 부총리 내정자에 대해 청와대는 채 열흘도 지나지 않은 11월8일 "국회와 상의해 결정해야 할 문제"라며 내정을 취소했다.
나라의 곡간을 책임질 중대한 인사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정치권에 공을 던진 것이다.
그리고 한달여가 지난 이번달 12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유일호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현재의 경제팀들이 책임감을 가져야"한다며 사실상 유일호 장관의 유임을 시사했다.
한달 열흘만에 경제 컨트롤타워에 대한 교통정리를 한 것이지만 이 역시 온전한 갈무리는 아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정치적인 판단을 주문한 내용에 대해 황 권한대행이 의사결정을 한 것을 정치권이 곱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정치권은 황 권한대행의 행보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와 소통하지 않고도 경제부총리 인선을 결정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습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물론 우상호 원내대표는 "유일호, 임종룡 체제에 변동을 주는 게 경제에 잘못된 신호를 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현 상황을 유지하면서 지켜보기로 했다"며 상황을 정리했다.
`제2 야당`인 국민의당은 더불어민주당 보다 반발의 강도와 비난의 수위가 높았다. 김동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의원총회에서 "국회와의 협의가 선결돼야 하는데 국회와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해 국민적 우려를 증폭시켰다"고 유감을 표했고 여기에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책임져야 할 당사자"라며 날을 세웠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도 정치권의 발언은 지적 그 자체에 그쳤고 어떤 대안이나 방안을 담지 못했다.
황 권한대행은 유 부총리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했을 때 발생할 정치권의 강력한 반발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탄핵 이후의 혼란을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앞선 것일 수 있다.
11월8일, 총리와 부총리에 대한 후임 결정을 해달라는 주문을 받고도 한달 넘게 국회는 이것에 대한 논의를 벌이지 못했다. 탄핵이라는 중대한 문제가 총리와 부총리 선임보다 앞설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중이 적은 것은 절대 아니다.
12월12일 황 권한대행의 결단이 없었다면 과연 국회는 후임 인선에 적극적으로 나섰을까.
정국은 탄핵안 가결이라는 하나의 고비를 넘었을 뿐 내년 1분기까지 국정조사와 특검, 헌법재판소 심판 등 해결할 과제가 줄줄이 남아 있다.
그러다보면 시간은 흘러 탄핵안에 대한 헌재의 최종 판단이 내려질 것이고 이후에는 조기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12월12일 황 권한대행이 선을 긋지 않았다면 2월 특검이 끝날 때까지도 국회는 부총리 인선에 대한 명확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을 것이 분명한 상황이다.
황 권한대행 본인에 대한 신분과 역할에 대해서도 논란이 여전하지만 단 하루라도 국정공백이 발생해서는 안된다는 소명 의식을 발휘한 것이고 이에 정치권도 더 이상 딴지를 거는 것은 누구에게도 득 될 게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는 시점이다.
有始無終(유시무종),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다.
시작할 때는 뭔가 있는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더니 끝은 있는 듯 없는 듯 한 상황을 말하는 사자성어다.
이제 경제 컨트롤타워에 정치권의 논란 만큼은 유시무종이 아닌 유시유종의 모습을 보여줄 때다.
한국경제TV 박준식 기자
parkjs@wowtv.co.kr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