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은 목격자가 살인범으로 뒤바뀐 사건을 소재로 벼랑 끝에 몰린 변호사 준영(정우)과 살인 누명을 쓰고 10년을 감옥에서 보낸 현우(강하늘)가 다시 한번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2000년 벌어진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정우가 연기한 준영은 먹고 살길을 고민하던 속물이었으나 우연히 사건을 맡아 재심을 추진하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억울한 이의 누명을 벗겨주는 역할은 자칫 영웅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정우는 그 점을 가장 경계했다. 과욕을 부리지 않는 그의 연기는 어떤 역할을 맡든 자연스레 작품에 녹아든다. 그런 그의 담백한 연기는 `재심`에서 도드라진다. 그를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재심`은 실존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하지만 사회 고발적 성향보다는 두 인물의 관계 변화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보통은 인물이 변하는 포인트가 정확하다. 그런데 저희 영화는 준영이 현우의 아픔을 믿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나 오늘부터 널 믿을게`라고 말한들 진짜로 딱 기점을 나눠 100% 그러한 믿음이 이뤄지지는 않지 않나. 현우와 준영은 그 전에 알던 사이도 아니고 준영은 사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건을 맡게 됐다. 그런데 사건을 살펴보고 현우를 알아가면서 그의 아픔에 동요되고 마음을 열게 된다. 이후 현우와 함께 정보를 주고받으며 조력자의 역할을 하지 않나. 그러면서도 완벽하게 믿진 않는다. 그런 과정들에서 캐릭터의 설득력이 생기더라.
준영이 변하는 과정도 굉장히 자연스럽다. 그의 심리적 변화를 알아채지 못할 만큼.
변곡점이라는 게 어딜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 지점을 곡선으로 그리고 싶었다. 관객이 볼 때 조금 모호하게 느껴질 순 있겠지만 그게 되레 자연스럽지 않나. .
그렇다면 준영이 변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뭐라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어머니가 가장 크겠다. 어머니가 변호사에게 상담하는 모습도 그렇고, 그 전에 택시의 태코미터를 재면서 `뭔가 이 사건이 잘못됐구나` 하면서 하나씩 찾아가잖나. 아무리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준영이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도 사람이기에 상대가 느끼는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후 동네 사람과 어머니를 통해 사람 사는 모습을 느꼈을 때 거기에서 오는 게 있다.
준영이 뱉는 대사 중 명대사가 많은 것 같다.
중간중간 대사를 내뱉을 때 그냥 개인 정우가 나와서 울컥했을 때가 있었다. 사건 피해자인 현우에게 `내가 네 변호사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할 때도 그랬다, `전 재산 받아본 적 있습니까` 할 때도 그랬고. 새로운 공간에서 그 대사를 내뱉으면 또 울컥해진다.
무거운 소재인데 분위기가 의외로 경쾌하다.
원래 시나리오는 초반에 유쾌하지 않았다. 무거운 소재의 영화인데 기왕이면 많은 관객이 보고 따뜻함을 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감독님과 상의를 했다. 영화가 긴장과 스릴이 있는 느와르도 아니고 휴먼드라마라서 두 시간 동안 관객이 무거운 소재를 잘 따라올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무 무겁지 않게 풀어냈으면 했고 감독님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판단했다.
10년 넘게 영화를 해왔는데 `재심`을 통해 변한 게 있나.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난 상업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라 `내가 보기에도 재미있는 얘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이번 촬영을 하면서 단순히 이런 기준으로 작품을 선택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관객에게 조금이라도 의미를 줄 수 있는 영화에도 출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진 오퍼스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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