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루저된 한국⑤] 생색내기 R&D정책 고쳐라

임동진 기자

입력 2017-04-14 17:41  

    <앵커>

    정부 주도의 IT 정책과 규제가 가장 큰 장애물이지만

    보여주기식 R&D 지원, 금지된 대기업과 벤처기업간 M&A, 소프트웨어를 등한시하는 풍토 등에서도 우리가 4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진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원천기술 육성에 실패한 정부 R&D 정책의 실태를 짚어봅니다.

    <기자>

    27년간 식물 유전자 연구에 몰두해 온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의 이일하 교수.

    이 교수는 그는 작년 말 동료 과학자들과 함께 초 국회에 '정부가 정해주는 과제만 해야 하는 현재의 R&D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내용의 공개 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정부 주도의 현 R&D 투자 정책은 창의성과 다양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족한 기초연구 투자에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인터뷰> 이일하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국가 성장의 원동력이 기초과학의 새로운 발견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씨앗들이 여기저기서 만들어 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연구자 주도의 연구 시스템이 아닐까...”

    2015년 기준 우리나라 1년 R&D 예산은 19조원.

    연구비 비중으로는 GDP대비 세계 1위 수준입니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세계 1위라는 통계수치는 착시현상에 불과합니다.

    기초연구비로 쓰이는 돈은 5조원.

    그나마도 80% 자금이 녹색성장, 창조경제라는 이름이 붙은 생색내기용 정부 주도 기획사업 등에 배정돼 있습니다.

    결국 연구자들이 자율적으로 기초 연구를 위해 사용하는 금액은 1조원 남짓밖에 안됩니다.

    전체 정부연구비의 47%를 기초과학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연구가 연구자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미국과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정부 R&D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만일 정부의 자금을 받아 수행한 과제에서 실패할 경우, 향후 3년간 다른 프로젝트를 과제 수주를 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뻔한 주제만 연구과제로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연구기관 관계자들은 정부 출연연구원의 연구 성공률이 99.5% 달한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정부 출연연구원 관계자

    “차기 과제 문제도 있고 하니까 결과를 왜곡시키거나 일부러 실패를 안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높은 R&D 성공률의 이면에는 이처럼 복지부동의 함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출연연구원들의 주요 사업들이 대부분 3년 이하의 단기적 과제에 집중돼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단기간에 성과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실패를 감수하는 깊이있는 연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성실하게 진행한 연구라면, 실패해도 패널티를 주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양태용 카이스트 교수

    “우리나라 같이 리소스가 작은 나라는 아무래도 관련기관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니까 많은 안전장치를 해놓습니다. 그런 안전장치가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덫이 될 수 있는 것인데 그런 것들이 굉장히 과다하지 않은가...”

    부족한 기초연구 투자, 단기적 성과에 급급한 연구 행태는 원천기술 부족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힙니다.

    4차 산업 분야 전 세계가 무한경쟁에 돌입한 상황에서 핵심기술의 부재는 뼈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한 예로 자율주행차에는 주변의 지형지물을 감지하고 이를 수집분석하기 위한 카메라와 레이더, 라이다 등이 필수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 주요부품들 가운데 국산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카메라는 이스라엘의 모빌아이, 레이더는 미국의 델파이, 라이다는 프랑스의 발레오사가 만든 것입니다.

    완성된 자율주행차는 세계와 기술격차가 1~2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원천기술 격차는 거의 무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물인터넷 시장의 급성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시스템반도체 역시 우리가 취약한 분야입니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절대 강자이지만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는 점유율이 5%에 채 못 미칩니다.

    이 같은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돼 왔습니다.

    삼성전자가 애니콜 브랜드로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하며 IT강국이라고 불리던 2000년대 삼성전자는 해마다 미국 퀄컴 등 해외기업에 기술사용료로 평균 1조원 이상을 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4차 산업 혁명에 과거의 IT강국은 그 민낯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TV 임동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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