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루저된 한국 下] '생색·금지·푸대접'이 부른 禍

임동진 기자

입력 2017-04-14 17:42  



    <앵커>

    정부 주도의 IT 정책과 규제가 가장 큰 장애물이지만

    보여주기식 R&D 지원, 금지된 대기업과 벤처기업간 M&A, 소프트웨어를 등한시하는 풍토 등에서도 우리가 4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진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원천기술 육성에 실패한 정부 R&D 정책의 실태를 짚어봅니다.

    <기자>

    27년간 식물 유전자 연구에 몰두해 온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의 이일하 교수.

    이 교수는 그는 작년 말 동료 과학자들과 함께 초 국회에 '정부가 정해주는 과제만 해야 하는 현재의 R&D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내용의 공개 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정부 주도의 현 R&D 투자 정책은 창의성과 다양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족한 기초연구 투자에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인터뷰> 이일하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국가 성장의 원동력이 기초과학의 새로운 발견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씨앗들이 여기저기서 만들어 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연구자 주도의 연구 시스템이 아닐까...”

    2015년 기준 우리나라 1년 R&D 예산은 19조원.

    연구비 비중으로는 GDP대비 세계 1위 수준입니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세계 1위라는 통계수치는 착시현상에 불과합니다.

    기초연구비로 쓰이는 돈은 5조원.

    그나마도 80% 자금이 녹색성장, 창조경제라는 이름이 붙은 생색내기용 정부 주도 기획사업 등에 배정돼 있습니다.

    결국 연구자들이 자율적으로 기초 연구를 위해 사용하는 금액은 1조원 남짓밖에 안됩니다.

    전체 정부연구비의 47%를 기초과학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연구가 연구자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미국과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정부 R&D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만일 정부의 자금을 받아 수행한 과제에서 실패할 경우, 향후 3년간 다른 프로젝트를 과제 수주를 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뻔한 주제만 연구과제로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연구기관 관계자들은 정부 출연연구원의 연구 성공률이 99.5% 달한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정부 출연연구원 관계자

    “차기 과제 문제도 있고 하니까 결과를 왜곡시키거나 일부러 실패를 안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높은 R&D 성공률의 이면에는 이처럼 복지부동의 함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출연연구원들의 주요 사업들이 대부분 3년 이하의 단기적 과제에 집중돼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단기간에 성과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실패를 감수하는 깊이있는 연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성실하게 진행한 연구라면, 실패해도 패널티를 주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양태용 카이스트 교수

    “우리나라 같이 리소스가 작은 나라는 아무래도 관련기관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니까 많은 안전장치를 해놓습니다. 그런 안전장치가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덫이 될 수 있는 것인데 그런 것들이 굉장히 과다하지 않은가...”

    부족한 기초연구 투자, 단기적 성과에 급급한 연구 행태는 원천기술 부족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힙니다.

    4차 산업 분야 전 세계가 무한경쟁에 돌입한 상황에서 핵심기술의 부재는 뼈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한 예로 자율주행차에는 주변의 지형지물을 감지하고 이를 수집분석하기 위한 카메라와 레이더, 라이다 등이 필수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 주요부품들 가운데 국산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카메라는 이스라엘의 모빌아이, 레이더는 미국의 델파이, 라이다는 프랑스의 발레오사가 만든 것입니다.

    완성된 자율주행차는 세계와 기술격차가 1~2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원천기술 격차는 거의 무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물인터넷 시장의 급성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시스템반도체 역시 우리가 취약한 분야입니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절대 강자이지만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는 점유율이 5%에 채 못 미칩니다.

    이 같은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돼 왔습니다.

    삼성전자가 애니콜 브랜드로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하며 IT강국이라고 불리던 2000년대 삼성전자는 해마다 미국 퀄컴 등 해외기업에 기술사용료로 평균 1조원 이상을 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4차 산업 혁명에 과거의 IT강국은 그 민낯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TV 임동진입니다.

    <앵커>

    잘못된 R&D 정책을 바로 세우고, 4차 산업혁명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겁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선진국들의 기술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것이 문제입니다.

    전문가들은 M&A를 통해 핵심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하나의 해법이라고 조언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왜 그런지, 조현석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세계 최대 IT 기업 구글이 최근 3년간 인수한 기업은 모두 88곳, 인공지능, 클라우드, 스마트 홈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합니다.

    페이스북도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신기술을 가진 벤처기업 28곳을 인수했습니다.

    <인터뷰>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첨단기술을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승자독식이 일어나기 때문에 내부 역량의 한계를 인식한 글로벌 기업들은 혁신기업을 우선적으로 인수하여

    기술개발의 시간을 줄이고, 융합적 신산업에 진출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반면 우리나라 대표 IT기업인 네이버는 같은 기간 5곳을 인수하는데 그쳤습니다.

    네이버의 M&A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회적 편견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네이버는 2009년 26개 였던 계열사를 4년만에 두배인 52개로 늘리는 등 적극적인 M&A 전략을 통해 성장한 기업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문어발식 확장, 기술 가로채기라는 사회적 비난에 직면하게 됩니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비등한 여론을 등에 업고, '네이버 규제법'을 추진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네이버는 1천억원의 상생자금을 내놓고서야 들끓는 비난 여론에서 겨우 벗어나게 됩니다.

    <인터뷰> 김상헌 네이버 전 대표 (2014년 2월, 중소상공인희망재단 출범식)

    “오늘 출범하는 희망재단은 상생협력을 한층 더 강화하고자 하는 오랜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하겠습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네이버는 이를 기점으로 국내에서 기업을 인수하는 전략을 사실상 포기합니다.

    <녹취> 네이버 전 관계자

    “한창 중국 사업자들이 거대 플랫폼으로 성장할 때인데, 반대로 네이버나 카카오는 거대 공룡이 되어 간다든지, 이런 프레임이 씌여져서 사내에서 되게 조심스러워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인수하면 돈으로 기술을 빼앗았다는 비판에 직면하는 것은 비단 네이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픈서베이 조사결과, 국민 2명 중 1명은 대기업의 기술 벤처 M&A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응답한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 기술이 좋은 회사가 없어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논란에 휘말리기 싫어서, 외국기업으로 눈을 돌린다는 진단을 내놓습니다.

    <인터뷰>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

    "대기업이 해외 벤처기업만 인수하면, 국내 창업생태계 더 나아가 산업생태계가 허물어지는 것이거든요.”

    정부의 정책도 문제입니다.

    대기업 군에 편입돼도 벤처기업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정부의 지원과 혜택은 M&A 도장을 찍는 순간, 곧바로 중단됩니다.

    벤처캐피탈 투자 금지, 연구개발비 세액공제비율 축소, 병역특례요원 채용 불허 등이 대표적입니다.

    대기업의 벤처 중소기업 인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한국의 기술발전 속도를 늦추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국내기업들을 인수한 뒤 이를 통해 융복합 기술을 개발한다면 한국내 기술개발의 토양이 그만큼 풍성해질 수 있지만, 불필요한 규제와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그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적극적인 M&A를 통해 혁신을 시도하는 삼성전자가 해외 기업만 인수하는 것이 국내에 유망 벤처기업이 없어서만은 아니라는 분석은 우리사회가 곱씹어볼 대목입니다.

    그리고 4차산업혁명이 가속화될수록 그 손실은 부메랑이 돼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한국경제TV 조현석입니다.

    <앵커>

    전통적 제조기업 이었던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은 지난 2015년 소프트웨어를 파는 기업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소프트웨어가 4차 산업 혁명의 핵심임을 인지하고 민첩하게 대응한 겁니다 .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요?

    여전히 소프트웨어 기술개발과 인력 투자에 인색한 것은 물론 교육 환경도 낙후돼 있습니다.

    반기웅 기자가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요즘 청소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래희망은 바로 공무원입니다.

    청소년 4명 중 1명은 공무원이 되길 원하고 있다는 조사도 있었지요.

    반면에 벤처기업을 선호하는 청소년은 3.7%에 불과했습니다.

    이미 직장을 갖고 있는 성인들은 어떨까요.

    직장인의 39.4%가 공무원 시험 응시를 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고, 대학생을 포함한 성인 남녀의 경우 44.1%가 공무원 시험을 치를 뜻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공무원을 꿈꾸는 사회

    이런 사회 풍토 속에서 4차산업 혁명을 이끌 인재가 쏟아져 나오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 수 있겠지요.

    어쩌다가 이렇게 된걸까요. 지금부터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IT 개발자와 엔지니어를 찾는 기업들의 채용공고입니다.

    IT에 특화된 인재를 찾고 있지만, 좀처럼 숙련된 엔지니어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IT 강국으로 불렸던 대한민국에서 소프트웨어 인재를 찾아 보기 힘들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답은 낙후된 인재 육성 환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2006년, 일선 학교의 79%가 해왔던 컴퓨터 교육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23%까지 비중이 떨어졌습니다.

    전국 중학교 정보 컴퓨터 정교사 자격증이 있는 교사 가운데 관련 과목을 담당하는 교사는 절반에도 못미칩니다.

    장비도 노후화 됐습니다.

    1인당 학생용 PC수는 평균 0.24대. 그나마 구입시기가 6년이 넘은 구형이 21%가 넘습니다.

    내년부터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소프트 웨어 교육을 의무화 한다지만, 교육 환경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이렇다보니 소프트웨어 교육의 핵심인 코딩 과목을 중심으로 과외와 학원 등 사교육 시장이 일찌감치 들썩이고 있습니다.

    소프트 웨어 의무교육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교육 시장이 교육의 취지를 흐리는 겁니다.

    대학도 상황은 마찬가지.

    전국 18개 대학에 있었던 컴퓨터교육학과는 올해 기준 8개 대학으로 줄었습니다.

    학생도 300명에 불과합니다.

    중국이 2000년대 초반부터 40여개의 대학에 소프트웨어 스쿨을 설립해, 일 년에 500명씩, 2만명 소프트웨어 인재를 배출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큽니다.

    15년에 걸쳐 중국이 배출한 소프트 웨어 인재는 30만여 만 명.

    중국이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을 만들어 세계 IT 시장을 이끌어 가는 이유입니다.

    <인터뷰> 김진형 지능정보기술연구원장

    소프트웨어나 컴퓨터 들어가는 연구소 들어본 적 있어요? 없었어요. 하나도 없어요. 단지 그 이유야.

    기껏 소프트웨어 전공을 살려도 전망은 밝지 않습니다.

    기술에 대한 값어치를 제대로 쳐주지 않는 환경 속에서 기업을 운영하기도 인력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술개발에 들인 시간과 비용은 고려하지 않고 인력을 품값으로 계산하다보니 소프트웨어는 기피 업종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인터뷰> 서형준 토이스미스 대표

    "기술에 대해서는 코스트를 안쳐주고 투입 인력으로만 계산해버리고, 원청에서 하청 또 하청으로 내려가면 인건비가 어마어마하게 싸집니다. 기술에 대해서는 어떤 비용도 쳐주지 않고 인건비만 주면 끝나겠지라는..."

    당장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에서 매긴 노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헐값의 대기업 하청을 받아 회사를 꾸리다보니 저임금 고노동의 악순환에 갇힐 수 밖에 없습니다.

    뒤늦은 인재 양성으로 인한 부실한 소프트 파워와 열악한 사업 환경.

    4차산업혁명의 길목을 가로막는 또 다른 걸림돌입니다.

    한국경제TV 반기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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