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초대형IB③]자본공급 대신 '단순 투자'…역량·전략 '부재'

입력 2017-04-1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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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조원 들고 '단순 중개업'
    <앵커>

    미국 골드만삭스나 일본 노무라 증권처럼 전세계 기업의 자금조달을 중개하는 금융회사, 바로 투자은행입니다.

    우리나라도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투자은행을 키우기 위해 정부가 규제도 대폭 풀어줬는데, 어찌된 일인지 국내 증권사들은 복지부동입니다.

    증권팀 김종학 기자와 자세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국내 증권사들이 '초대형 IB' 자격을 얻기 위해 자기자본을 수 조 원씩 확보했는데, 딱히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구요?

    <기자>

    올해 '초대형 투자은행' 제도가 시행에 들어가지만 증권사들은 불려놓은 자기자본으로 부동산 쇼핑, 대출 장사에만 집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에서 출발한 '투자은행'은 일반 '상업은행'과 달리 투자 위험이 있는 기업, 자산에 투자할 자금을 모집하고, 상품을 만들어 수익을 내는 기능을 합니다.

    활성화되기만 하면 기업의 투자는 물론, 자본시장의 규모를 키울 기반이 되는건데, 우리나라에선 5년 전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를 도입한 뒤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자본시장법을 바꿔 자기자본을 4조 이상으로 늘린 증권사, 초대형 투자은행에게 자기신용으로 어음도 발행할 수 있게하고, 기업 신용공여는 한도의 2배까지 가능하도록 규제를 풀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자기자본을 8조 원 이상으로 늘리면 CMA와 유사한 종합금융투자계좌 IMA로 자금을 유치하고, 인수합병 등 규모가 큰 투자도 길을 터줬습니다.

    제도만 보면 대규모 자본을 조달해 십 수년 간 구호로 남은 한국판 골든만삭스, '투자은행'의 실현도 가능해 보이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투자은행으로 지정돼 있는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이렇게 5곳, 덩치는 수 조원대에 달하지만 수익성에서는 메리츠종금증권, 키움증권처럼 특화 증권사에 오히려 밀리는 형국입니다.

    헤지펀드 자금을 맡아 중개해주는 프라임브로커리지, 부동산 실물펀드 조성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여전히 주식 중개 비중이 높게 나타나 편중된 수익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투자은행이라는게 기존 시중은행과 달리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 직접 돈을 빌려주거나, 신용이 부족하면 이를 보강해주고 수익을 얻는 금융회사입니다.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를 짚어봐야 할 텐데요.

    은행이 가진 인프라를 같이 활용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지만, 증권사들이 해당 인력이나 시스템을 갖추는데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고요?

    <기자>

    우리나라 자본시장 역사가 짧다보니 제도적으로 뒷받침 되지 못한 측면도 많고, 또 우리나라 경제 규모로는 신용공여에서 큰 수익을 내기 어렵다보니 증권사들이 인력이나 자본을 많이 확보해두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막상 초대형 IB를 키우려고 보니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겠죠.

    일단 핵심인 기업 신용공여, 남는 자기자본을 활용해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건데, 이렇게 하려면 투자할 기업의 정보, 신용도, 자금 구조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증권사들은 이를 검증하고 관리할 인력이 부족한 것은 물론, 투자 위험에 맞는 상품을 설계하고 관리할 시스템도 갖춰져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기업금융이 빈번한 은행이 이미 구축한 정보이지만 증권사가 접근할 수 없게 제도적으로 막혀있는 한계도 지적됩니다.

    이렇다보니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 도입된 직후 기업금융 1조원 정도였는데 작년까지 4조 겨우 넘는 수준으로 활성화되지 못했습니다.

    또 이건 다른 문제로 이어지는데, 투자은행들이 올해 하반기부터 1년 미만의 단기자금, 발행어음을 발행하는데 걸림돌이 생깁니다.

    어음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의 절반은 기업 신용공여로 내놓아야 하는데, 말씀드린 것처럼 투자할 여건이 안되다 보니 발행어음으로 돈은 조달해 놓고 수익은 한정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투자은행은 자본은 늘려왔고 평판, 신용도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쉬운 부동산 투자에 우선 뛰어드는 상태고, 여기에 너도나도 IB를 하겠다 경쟁이 격화되다보니 기업공개, 유상증자, 채권발행에서 수수료 경쟁, 제 살 깎기식의 경쟁이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앵커>

    초대형 투자은행 제도가 있지만 부동산 투자 비중이 크게 늘고, 수수료 경쟁만 매몰된 건 우려스러운 부분입니다.

    금융당국에서도 제도의 취지를 살려야 할텐데, 정부와 업계 어떤 평가가 나오고 있나요?

    <기자>

    증권사가 갈수록 위험한 투자를 꺼리다보니 금융투자업계 내부에서도 '야성이 사라졌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다만 증권사들은 초대형 투자은행 제도 안에서도 건전성 규제를 더 풀어줘야 신용공여 업무를 늘릴 수 있다며 추가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초대형 투자은행 제도가 이제 막 시작 단계인 만큼, 증권사 스스로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고 반박합니다.

    더구나 정부도 은행이 건전성 규제를 받아 참여하지 못한 부동산 투자에 대형 투자은행들이 대거 뛰어든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아직 국회 계류돼 있지만,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2분기부터 대형 증권사들은 IB 업무를 확장시켜야하는 상황입니다.

    미래에셋대우처럼 신기술 기업에 투자하는 1조원대 자금 조성 등 투자은행의 역할에 맞는 투자로 시장 선점에 나선 긍정적 변화도 감지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가 더 늘어야 시장이 활성화 될 수 있겠죠.

    더구나 올해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지배구조 개편이 본격화되는 등 대내외 여건이 변화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초대형 투자은행들이 스스로 기존 은행과 다른 자금 공급 창구로써 인력을 더 확충하고, 새로운 금융상품 개발과 대규모 프로젝트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정체된 자본시장도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

    <앵커>

    증권팀 김종학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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