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환위험 관리 실패 사례로 꼽는 ‘키코(KIKO)’ 사태가 아직까지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락(달러 약세)할 것으로 예상한 수출업체를 중심으로 환 헤지를 했다. 하지만 ‘마진 콜(자본 부족)’을 당한 미국 금융사의 디레버리지(투자자산 회수) 과정에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환차손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9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키코 사태의 정반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역(逆)키코 사태’다. 2015년 12월 이후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인상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달러 강세)할 것으로 우려한 수입업체(글로벌 투자 금융사)가 이번에는 반대로 환 헤지를 걸어놓았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락을 반복하는 속에 추세적인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작년말대비 무려 85원이나 급락했다. 이럼에 따라 이들 기업은 이미 상당 규모의 환차손을 입고 있다. 추경 편성 등으로 올해 성장률을 3%로 끌어올리려는 현 정부로서도 예상치 못했던 ‘원화 강세’로 첫 시련을 맞고 있다. 2분기 성장률이 수출 부진 등으로 0%대로 떨어진 상태다.
올들어 원·달러 환율을 추세적으로 하락시킨 주요인인 ‘트럼프 의지(Trump’s volition)’다.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약세’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교역국의 인위적인 평가절하에 따른 피해의식이 높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 출범 직전까지 달러인덱스는 ‘100’대에서 움직였다. 호드릭-프레스콧 필터로 구한 장기 추세에서 3% 이상 고평가된 수준이다.
대외적으로 최우선순위를 두고 추진하고 있는 보호주의 정책의 주목적은 무역적자를 줄이는데 있다. 달러가 강세가 된다면 무역적자가 확대돼 보호주의와 정면으로 충돌된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6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달러인덱스는 ‘93’대로 급락했다. 허니 문 기간에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대목이다.
트럼프는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다. 모든 기업인은 높은 세율과 자국통화 강세, 행정규제를 가장 싫어한다. 집권기간 중 성장률 목표 4%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부가가치 창출의 주역인 기업인의 3대 고충을 덜어주는 길이 지름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계량모델인 ‘퍼버스(Ferbus=FRB+US)’에 따르면 달러가 10% 하락하면 2년 후 미국 경제 성장률이 0.75% 포인트가 제고되는 것으로 나온다. 그 어느 부양수단보다 성장률 제고효과가 크다.
미국 경제는 ‘쌍둥이 적자’라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달러 강세로 보호주의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해 무역적자가 커지면 재정적자까지 확대된다. 트럼프의 최악의 시나리오인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미국의 재건’을 목표로 계획하고 있는 또 하나의 야심작인 ‘뉴딜’과 ‘감세 정책’도 추진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게 된다.
이번에 트럼프의 달러 약세 발언은 저금리를 선호한다는 입장까지 뒷받침돼 그 어느 때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달 안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공석중인 Fed 이사 3명을 임명해야 한다. 올해는 순번제인 지역 Fed 총재 중 금리결정권한을 갖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멤버가 비불기파로 채워진 상태다.
FOMC 멤버의 성향을 알 수 있는 블룸버그의 정책지수를 보면 지난해 ‘-0.4’에서 올해는 ‘-0.6’으로 비둘기파 성향이 강해졌다. 이 지수의 밴드 폭은 ‘-2’∼‘+2’로 높을수록 매파성향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트럼프가 자신의 저금리 선호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비둘기파로 임명한다면 금리인상 겨냥한 달러 강세 기대는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경제가 기대보다 좋지 않는 ‘성장 쇼크(growth shock)’도 한 몫하고 있다. 미국 경제는 다른 국가에 비해 빨리 단행한 금리인상으로 좋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일종의 ‘에클스 실수(Eccle’s failure?성급한 경기회복 판단을 근거로 추진한 출구전략으로 경기를 망치는 행위)’를 낳게 한 착시현상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작년 미국 경제 성장률은 1.6%로, 유로랜드 1.7%보다 뒤졌다. 올해 1분기에는 미국 1.4%, 유로랜드 1.7%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이달 25일에 발표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정 전망치를 보면 내년에도 2.1%로 크게 하향(4월 발표 2.5%) 조정돼 올해 전망치 2.1%(4월 발표 2.3%)에 머무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선진국 통화정책에 있어서 격차가 줄어드는 대수렴(great convergence)’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2014년 10월 양적완화를 종료한 이후 2015년 12월부터 네 차례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Fed보다 2년 이상 늦게 유럽중앙은행(ECB), 캐나다 중앙은행(BOC) 등이 출구전략을 추진할 방침이다.
선진국 출구전략을 경마 경기에 비유해 보면 Fed는 선두 주자, ECB와 BOC 등은 후발 주자다. 관중의 눈은 앞서가는 선두 주자보다 뒤늦게 추격하는 후발 주자에게 더 몰리게 된다. 글로벌 자금이 미국보다 유럽, 캐나다, 호주 등으로 몰리면서 이들 국가의 통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내적으로는 ‘저평가(cherry picking)’ 요인이 가장 크다. 이론적으로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은 위험은 선호하고 극복해야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경기가 안 좋을 때 위험이 높고 주가가 낮다. 기술적 분석(차트)이나 주가수익비율(PER)와 같은 재무지표로도 주가가 낮을수록 주식을 사라고 신호를 준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 간 자금흐름은 금리차와 환차익을 겨냥한 캐리자금 성격이 짙다. 특히 한국과 같은 신흥국에 투자할 때는 환차익을 중시한다. 작년 8월(S&P가 한국 신용등급을 한 단계 올렸을 때) 이후 체감경기는 외환위기보다 더 어렵다고 할 때 외국인 자금이 많이 들어온 것은 저평가와 함께 환차익 매력도 컸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경기와 외화 유동선 간 ‘불일치(mismatch)’도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문재인 출범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성장률은 2%대로 떨어졌지만 경상수지흑자는 컸다. 국내 금융시장에 유입된 외국인 자금과 함께 달러공급곡선을 우측으로 이동시켜 균형점(원·달러 환율)이 하락하게 된다.
수출채산성 모델, 환율구조모형 등으로 추정된 원·달러 환율의 적정수준은 달러당 1150원 내외다. 환차익 소지가 줄어들어 이달 중순 이후 외국인이 매도세로 돌변한 가장 큰 요인이다. 수출방어 차원에서 국내 외환당국의 시장개입도 예상된다. 하지만 대외요인은 원·달러 환율의 하락 압력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원·달러 환율은 대외적으로 하락요인과 대내적으로 상승요인 중 어느 것이 더 부각되느냐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것은 올해 상반기보다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대내상승요인보다 대외하락요인이 더 커 보인다는 점이다. 뒤늦긴 했지만 달러투자자는 지금이라도 균형을 찾고 기업은 그 어느 때보다 환위험 관리에 신경을 서야 한다.
하지만 지난달 말 달러 예금은 540억 달러가 넘는다. 눈에 띠는 것은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때마다 달러 예금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Fed의 추가 금리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 기대가 남아 있거나, 북핵 사태로 고조되는 지정학적 위험을 겨냥해 이기적으로 달러를 사들인 결과로 풀이된다.
곤혹스러운 것은 우리 외환당국이다. 역키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리면 트럼프 정부로부터 환율 조작국에 지정될 확률이 높아진다. 반대로 시장에 그대로 방치해 놓으면 트럼프의 달러 약세 발언으로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경우 키코 사태 이상으로 환차손이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달러 투자는 수익률이 의외로 작다. 다른 가격변수와 달리 환율은 통화 간 교환비율로 근린궁핍적인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오르고 내릴 수 없다. 수수료도 비싸다. 중심국이 미국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쌓인다. 북핵 문제로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지는 틈을 타 달러 사재기에 나서는 움직임이 있으나 자제력과 균형감이 요구되는 때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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