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부 이야기⑨] 30년 엘리베이터맨, 1000개 일자리를 지키다 - 박양춘 티센크루프 사장

이성경 부장 (부국장)

입력 2017-08-04 09:23   수정 2017-08-31 16:08

    엘리베이터 업계 만년 3등에 누적 적자 1000억원, 참다 못한 독일 본사는 출구전략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 노조는 파업에 들어갈 태세다.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인 2012년 봄, 박양춘 대표는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로 첫 출근 했다.

    ◇ "한국 투자는 완전히 실패 했다"

    독일회사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는 2012년4월, 한국법인 새 수장으로 오티스엘리베이터의 박양춘 중국지사 사장을 기용했다. 원대한 포부를 안고 출근한 박 대표는 독일 본사로부터 충격적인 첫 지시를 받는다.

    "본사는 새로 온 CEO에게 더 이상 확장하지 말고 현상유지만 하라고 했어요. 2만여 평의 천안공장은 팔아 현금화 하고 지금의 공장은 서울 인근에 임대 받아 이전 하라는 거에요."

    박 대표는 그제서야, 독일 본사가 한국법인을 완전히 실패한 투자 사례로 낙인 찍고, 출구전략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상황을 들여다 보니 심각했다.

    2003년 동양엘리베이터를 인수해 국내 진출한 티센크루프는 현대엘리베이터와 오티스에 밀려 시장점유율 10%대의 만년 3등에 머물렀다. 적자는 계속 불어나 10년 누적 적자가 1,000억원에 달했다. 동양 시절부터 불신이 쌓이고 쌓인 노조는 강성화 됐다. 더욱이 직원들은 경쟁사에서 온 신임 사장을 믿지 않았다.

    "제가 경쟁사인 오티스에서 왔기 때문에 색안경을 쓰고 봤어요. 저를 자기 배만 불릴 사람, 곧 떠날 사람으로 생각하더라고요. 특히 외국회사, 더욱이 미국계 회사에서 온 만큼 인력 구조조정 가능성에 직원들이 불안해 했어요."

    마침 통상임금 이슈까지 터지며 노조는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은 장기화돼 한달 이상 계속됐다. 박 대표는 역발상 전략으로 응수했다.

    "독일 본사는 현상유지만 하라고 했지만 저는 천안 공장에 대규모 투자를 해 버렸어요. 또한, 직원들에게 우리 회사의 최우선 원칙은 고용보장이라고 선언했어요. 다른 외국계 회사들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구조조정을 쉽게 선택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고용보장이 최우선 이라고 강조했어요. 이 원칙은 지금도 여전해요."

    ◇ "공장이 아닌 공간..강남 스타일로"

    외국인도, 교포도 아닌 토종 한국 사람, 1987년부터 평생을 엘리베이터 현장을 누빈 우직한 돌쇠형 CEO에게 직원들은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한편으로는 경영전략을 재설계했다. 중소형 건물을 타깃으로 디자인을 강화한 고급화 전략에 나섰다. 예상은 적중했다.

    "요즘에는 2층, 3층 저층에도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요.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분양도, 임대도 되지 않아요. 실버 세대가 늘어나고 소득 수준이 올라갔기 때문이지요."

    조직이 안정을 찾고, 외형과 수익이 성장괘도에 오르자 박 대표는 평소 꿈 꿔 왔던 일을 결행했다. 엘리베이터 공장을 글로벌 IT 회사 '구글' 처럼 개조하는 것.

    "처음에는 굉장히 시골스러운 기획안이 나왔어요. 그런데 여기가 시골인데 시골스럽게 만들면 되겠어요? 정반대로 아주 모던하게 가자고 제안했어요. 아주 강남 같은 스타일로요."

    천안공장 현관을 통과하면 전 직원이 둘러 앉아 토론할 수 있는 계단식 광장이 눈에 띈다. 화려한 쇼룸, 당구대와 다트게임 보드를 구비한 도회적 카페도 보인다. 두툼한 작업화와 안전모를 쓴 공장 직원들이 강남 스타일의 고급 카페를 누빈다. 이 둘이 대비되면서 묘하게도 정말 구글 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계속 투자해서 바꿔 나갈 겁니다. 2~3년 뒤에는 어느 누가 와도 가장 멋진 공장, 아니 공장 이라기 보다는 멋진 공간으로 만들 거에요."

    ◇ 60만대의 엘리베이터...일자리는 넘쳐난다

    전국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는 약 60만대. 건물이 올라가면 엘리베이터도 세워진다. 해마다 3만~4만대씩 늘어난다. 설치만 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평생 유지보수와 안전관리를 해야 한다.

    "새로 설치되는 엘리베이터의 수가 많은데다 일단 설치되면 유지보수를 담당해야 할 기술자도 필요해요. 그래서 일자리가 굉장히 많아요."

    2014년 회사 내에 '설치 아카데미'를 개설했다. 2년 과정의 엘리베이터 설치 과정을 이수하면 티센크루프가 직접 채용하거나 협력사에 소개한다. 그 동안 80여명이 수료했다. 북한이탈 주민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전문기술을 열심히 익히면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다.

    "북한 이탈주민의 경우 여성들은 식당 등 일자리 잡기가 수월한데 남자들은 쉽지 않아요. 엘리베이터 기술을 배우면 딱 좋을 것 같아요. 일은 힘들지만 최소 월 300만~400만원은 벌 수 있어요. 숙련도가 높아지면 700만~800만원도 가능하죠."

    박 대표가 북한이탈 주민을 생각해 낸 것은 박 대표 부모님들이 이북 출신이기 때문이다. 분단의 경험을 갖고 있는 독일 본사도 탈북 주민 직업교육을 지지하고 있다.

    "저는 북한이탈 주민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나중에 통일 되면 여러분 고향에 가서 엘리베이터 전문기술자로 성장해라. 그것이 여러분 들의 꿈이 아니겠나 라고요."

    만성적자 넘버 3 회사, 잦은 노사갈등에 일터 보다는 전쟁터 같았던 티센크루프는 5년 만에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변신했다.

    시장점유율을 13%에서 26%로 끌어올리며 업계 2위로 뛰어 올랐고, 5년 전에는 매출 3,000억원도 힘겨웠지만 이제 매출 6,554억원, 영업이익 592억원(2016년 기준)의 탄탄한 기업으로 거듭났다.

    발 뺄 준비를 하던 본사는 더 이상 공장 매각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분단의 아픔을 공유하며 탈북민 정착을 지원한다.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 코리아의 직원 1,050명은 모두 한국 사람이다. 딱 한 사람 빼고.

    "직원 100%가 한국 사람이에요. 딱 한 사람 독일사람이 있는데 그 친구는 아내가 한국 사람이니까 그냥 봐주는 걸로. 우리 회사는 이름만 무늬만 독일 회사이지 내용은 100% 토종 한국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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