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평화상이 핵무기 없는 세상을 희구하는 국제 운동단체에 돌아가자 공식 핵보유국 지위를 가졌거나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평가받는 여러 국가의 반응이 다양하게 쏟아졌다.
수상 영예를 안은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의 캠페인 취지가 그들 나라의 핵 외교 현실 및 국제정치관과 배치되거나 모순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례적이라 할만큼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톤의 성명까지 나와 관심을 끌었다.
특히 북한과 핵 갈등을 마다치 않고 이란과의 기존 핵 해결 합의의 파기를 경고하고 나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정부의 미국은 아예 ICAN이 주도한 핵무기금지협약의 무용론을 거론하며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냈다.
7일 AP 통신이 전한 트럼프 정부의 성명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를 가리키는 핵보유국이 핵무기금지협약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짚고 "그 협약은 세계를 더 평화롭게 만들지 못할 뿐 아니라 단 하나의 핵무기도 없애는 결과를 낳지 않을 것이며 어느 나라의 안보도 제고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은 나아가, 핵무기금지협약이 세계적 (핵) 확산과 안보 위협을 해결하는 기존 노력을 약화할 위험이 있다고까지 주장하고 미국은 국제안보 증진과 핵확산 방지, 핵 위험 감축을 위해 여타 국가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노벨위원회가 결정했고 이 결정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며 자세한 논평을 삼갔다.
그는 다만, "러시아는 핵클럽(공식 핵보유국)의 책임있는 참가국이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여러 차례 언급한 핵 균형의 중요성에 관한 러시아의 입장은 잘 알려졌다"면서 "이 같은 러시아의 입장은 국제안보와 안정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러 상원 국제문제위원회 위원장 콘스탄틴 코사체프는 그러나, "ICAN은 `핵 제로, 완전한 핵무기 금지`라는 상당히 유토피아적 목표를 추구하는 낭만주의적 단체"라면서 "ICAN의 과제는 비현실적이며 이 조직은 너무 앞질러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프랑스 정부는 "북한 (핵) 위기라는 맥락에서 핵 비확산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수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프랑스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여건 조성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프랑스는 러시아·미국에 이어 세계 제3위의 핵무기 보유국이다.
중국은 ICAN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선정에 대해 아직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핵 비보유국이지만 미국의 핵우산 아래 놓여 있는 독일 정부는 정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독일은 핵무기가 없는 세계의 구현을 지지하고 노벨위원회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촌평했다.
올해 노벨평화상의 유력 후보였던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ICAN에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이란 핵 합의 역시 모든 당사국에 의해 존중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핵 합의 도출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는 모게리니 대표는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 함께 올해 노벨평화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었다.
중동의 군사 강국이자 `비공식` 핵보유국인 이스라엘은 노벨평화상 발표 직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유력 언론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분석 기사에서 ICAN의 수상을 "갈수록 타당성을 의심받는 노벨평화상의 실태를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라고 혹평했다.
신문은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와 EU 등 역대 수상자들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을 열거한 뒤, 노벨위원회가 각종 논란을 의식해 "별로 주목받지 않았고 효과적이지도 않은 기구를 수상자로 선정해 안전한 길로 갔다"고 분석했다.
하레츠는 "ICAN은 이 분야에서 성과라고 내세울 것이 거의 없고, 주요 성과라고 해봐야 핵무기금지조약 지지활동을 벌인 것"이라면서 "그 조약으로 `핵 없는 세상`에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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