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브라운관 정식 데뷔 후 연기에 대한 시각이 좀 달라진 것 같아요. 평소 남들한테는 굉장히 관대한 스타일인데 스스로한테는 그러지 못했어요. 자아성찰까지는 아니지만 스스로를 인지하려고 노력했죠. 지금은 스스로에게 관대해졌어요.”
배우 천우희가 드라마 첫 주연작 ‘아르곤’을 완벽하게 마쳤다.
지난달 26일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은 가짜뉴스를 타파하고 진짜 뉴스를 전하며 진실을 추구하는 탐사보도팀의 이야기를 담아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그 주역은 역시 천우희다.
“잘 끝난 것 같아 뿌듯해요. 짧지만 정말 행복한 촬영이었어요. ‘앞으로 이런 역할을 또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움도 있어요. ‘아르곤’은 영화 촬영과 일정이 잘 맞아 떨어졌죠. 시기와 대본이 좋았어요.”
그간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아온 천우희다. 데뷔 13년 만에 처음으로 드라마 주연을 맡은 ‘아르곤’에서 천우희는 첫 주연작이라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완벽하게 응답하며 진가를 발휘했다. 시청자들은 천우희가 있었기에 ‘아르곤’이 웰 메이드 드라마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첫 드라마가 환경이 너무 좋았어요. 앞으로 어떤 걸 만날지 모르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질감을 없앴다는 것도 다행이에요.”
배우 천우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범상치 않음이다. 2004년 ‘신부수업’ 단역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그녀는 ‘마더’(2009), ‘써니’(2011), ‘카트’(2014), ‘한공주’(2014)`, ‘해어화’(2016), ‘곡성’(2016) 등을 통해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줬다. 천우희는 계약직 기자 이연화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멸시를 받다 팀원들에게 인정받고 진정한 기자로 거듭하는 이연화의 성장과 심리를 완벽하게 소화했으며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실감나는 연기로 주목을 받았다.
“연화는 주눅이 든 것 같지만 자기 안에 있는 소신을 밝히는 다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우물쭈물하면서도 할 말은 다하는 캐릭터잖아요. 첫 대사부터도 혼잣말을 하는 와중에도 할 말은 다해요. 그게 이 친구를 보여주는 성격인 거 같아요. 그런 것들이 잘 표현되길 바랐어요. 8부가 워낙 짧아서 잘 비춰졌을 진 모르겠는데 1부부터 성장하는 느낌이 들기 원했어요. 사람이 그렇잖아요. 책임감이 주어졌을 때 부쩍 성장하는.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만나면서 성장하게 된 게 아닌 가해요.”
똑똑하고 민첩하고 배려를 알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모습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수긍이 가도록 그려졌다.
“제가 연화와 일치하는 점은 꿋꿋한 거랑 개의치 않아하는 거예요. 힘들어하지만 지치지 않는 게 닮았어요. 그래서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어요.”
천우희의 연기는 마지막까지 명품이었다. 자신이 동경하는 김백진(김주혁)이 오보를 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내적 감정과 기자로서 추구해야 하는 것들 사이에서 잠시 갈등하는 모습이 짧아도 완벽하게 전달됐다. 또 HBC의 정직원으로 채용된 장면에서 씨익 웃는 연화에게 앞으로의 기대를 엿볼 수 있었다. 설렘과 그 동안의 고생에 대한 회한까지 느껴지는 표정연기에서 천우희가 왜 ‘천의 얼굴’ 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극중 역할을 위해 기자를 몇 명 만났어요. 인터뷰 할 때만 만났으니까 되게 편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했죠. 다 알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의 고충이 있는지 알게 됐어요. 보니까 이분들이 고뇌하고 신념을 갖고 있는 부분이 느껴졌죠. 기사를 볼 때 너무 많은 정보가 올라오잖아요. 그런 정보들을 너무도 쉽게 접했었는데 앞으로는 그냥 스쳐가듯 보진 못할 것 같아요. 만약 제가 기자가 된다면 연화 같을 것 같아요. 나도 어떤 힘이나 관계보다는 정말 지켜야 할 것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윤리나 가치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연화랑 똑같은 기자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극중 ‘팀장님 등에 칼 꽂을 수 있냐’는 대사가 있어요. 그것보다 더 큰 대의가 있기 때문에 나라도 연화와 같은 결정을 했을 것 같아요.”
‘아르곤’은 4년 만에 안방에 컴백하는 김주혁과 드라마 첫 주연을 맡은 천우희의 만남으로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은 모두의 기대처럼 시너지를 만들어내며 김주혁이 앞에서 끌고 천우희가 뒤에 밀며 ‘아르곤’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케미는 보는 이들을 참 즐겁게 했다.
“김주혁 선배님께서 김백진 캐릭터를 너무 잘 표현을 해주셔서 이질감을 못 느꼈어요. 선배님이 배려를 해주시는 스타일이세요. 따라가면서 어려움 없이 연기했어요. 워낙 유쾌하셔서 조금만 진지하려고 하면 분위기를 띄워 주셨어요. 여유롭고, 마인드도 좋으신 분이에요.”
천우희에게는 드라마는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두려움을 극복하게 만들었고, 천우희는 ‘아르곤’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더 빛냈다.
“가족들이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또 주변 친구들은 다 일반 직장인인데 ‘네가 직장생활 했으면 저런 모습이겠다’라면서 좋아했어요. 항상 모이는 친구들이 있는데 피곤할 법도 한데 본방사수하면서 실시간 토크를 같이 했어요. 주변에서도 영화를 같이 했던 분들한테도 연락이 오니까 되게 힘이 되더라고요.”
‘아르곤’은 시청자로부터 강력한 시즌2 요구를 받고 있다. 김백진은 3년 전 자신이 낸 오보를 밝히며 “틀렸다는 걸 말하겠다”는 쉽고도 어려운 결심을 했다. 결론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유의미한 선택을 실천한 김백진의 모습이 커다란 울림을 안겼다. 시청자들은 HBC를 떠난 김백진, HBC 기자가 된 이연화의 인생 2막을 시즌2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르곤’ 현장에서 정말 즐거웠어요. 스태프, 배우 가릴 것 없이 다들 재밌어서 애정이 많았죠.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배우란 직업은 정말 행복한 것 같아요. 연기가 안 될 땐 자괴감에 들긴 하지만 너무나 행복해요.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과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천의 얼굴’이라는 수식어도 정말 만족스러워요. 대체 불가한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시즌2를 많이 기대를 하고 계시는데, 그 때 가봐야 알 것 같아요. 대본도 보고, 스케줄도 맞아야 하는 거니까요.”
천우희는 당분간 휴식을 취한 후 ‘한공주’ 이수진 감독의 신작 영화 ‘우상’ 촬영에 돌입할 예정이다.
“예전에 인터뷰를 통해 ‘한석규 선배님과 연기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드디어 이뤄졌어요. 조만간 선배님과 작품에 들어가요. 앞으로 인터뷰에서 자주 말하고 다녀야겠어요. 배우로써 목표를 세우지는 않아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연기를 잘 한다는 것은 두 가지 부류가 있어요. 감탄을 자아내거나, 울림을 주는 연기요. 두 가지를 다 잘하려고 노력해요. 예전에는 스스로 답을 찾으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요즘은 주변 분들에게 물어봐요. 연기 잘하는 배우이자 좋은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사진제공 = 나무엑터스)
한국경제TV 디지털이슈팀 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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