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조명 아래서 오래 생활하면 안되는 이유

입력 2018-03-11 09:12   수정 2018-03-11 09:13


조명이 희미한 곳에서 오래 생활하면 뇌 구조에 변화가 생겨 기억력과 학습능력 등 뇌 기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나왔다.

빛이 인간의 인지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은 여러 개 있다. 교실과 사무실, 병동 등의 조명을 밝게 했더니 학생과 건강한 성인, 치매 초기 환자들의 인지기능 검사 성적이 나아졌다는 것 등이다. 이는 비교 관찰 연구결과들이다.

그러나 실제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인간의 뇌를 함부로 직접 실험 대상으로 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 미시간대학 안토니오 누녜스 교수팀은 동물을 이용해 빛이 뇌에 비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실험에 사용된 동물은 일명 `아프리카(또는 나일) 풀밭 쥐`라는 설치류다. 야행성인 일반 쥐와 달리 이 설치류는 인간처럼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잔다. 연구팀은 이 쥐들을 가둔 채 매일 12시간씩 조명을 켜고 꺼 낮과 밤에 같은 환경을 만들어 4주 동안 살게 했다. 동시에 이 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낮 동안의 조명을 한쪽엔 환하게 해줬고(1천룩스), 다른 쪽은 희미하게(50룩스) 조도를 낮췄다.

연구팀은 환한 쪽은 맑은 날과 유사한 조도, 흐린 쪽은 미국 중서부 지역 겨울철 구름이 많이 낀 날 또는 이럴 때 통상적인 실내 조도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실험 시작 때와 4주 후에 각각 인지기능검사를 한 결과 희미한 조명에서 생활한 쥐들의 경우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해마의 능력이 30% 떨어졌다.

또 수중미로실험으로 측정한 공간기억 성적도 현저하게 낮아졌다. 이는 사람들이 쇼핑몰이나 영화관 등에 몇 시간 머물다 붐비는 주차장에 왔을 때 주차장소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과 유사하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뇌 속의 변화를 살펴본 결과 흐린 불빛에 노출된 쥐들은 해마 속에서 분비되는 `뇌 유도 신경영양인자`(BDNF)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특히 CA1이라는 지점에서 크게 감소했다. 아울러 수상돌기척추밀도와 첨단수상돌기 등도 줄었다.

연구팀은 이는 뇌 신경세포 간의 연결, 즉 신경세포 간의 `대화와 소통`이 줄어들었음을 뜻하며 이로 인해 해마의 학습 및 기억능력이 떨어지게 된 것이라면서 "희미한 불빛이 뇌를 멍청하게 만드는 셈"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흐린 불빛에 살던 쥐들을 밝은 조명 아래서 4주 동안 살게 하자 인지기능 성적 등이 원래대로 회복됐다.

흥미로운 건 빛이 직접 해마에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빛이 눈을 통과한 뒤 뇌의 다른 부위들에 먼저 작용한 다음 연쇄 영향이 일어난다는 걸 시사한다.

연구팀은 이 부위 가운데 오렉신이라는 펩타이드(아미노신 결합체)를 생산하는 해마 속의 신경세포 다발에 주목하고 후속 연구에 착수했다. 이 펩타이드는 뇌의 여러 기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연구팀은 흐린 조명에 오래 노출된 쥐에게 오렉신을 투여하면 밝은 빛에 노출되지 않고서도 인지기능이 회복될 수 있는지에도 관심이 있다.

이런 일련의 연구는 녹내장이나 망막퇴화 등 안구질환으로 눈을 통해 빛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인과 환자들의 인지기능 개선이나 악화 방지 등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자금 지원을 받은 이 연구결과는 학술지 `해마`(Hippocampus) 최신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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