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한항공 승무원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인력 부족으로 인한 회사의 불법적인 노동력 착취를 고발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2월에도 연차휴가를 제대로 주지 않는다는 한 언론보도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 회사 측이 해결책 마련을 공언했지만 사실과 달랐다.
지난 10일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한항공의 불법적인 노동력 착취와 인권침해를 신고합니다`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벌써 2700명을 넘는 사람들이 참여할 정도로 열기는 뜨겁다. 이해관계자가 사실상 대한항공 승무원 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속도다. 대한항공 전체 승무원 7천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단 이틀 만에 참여한 셈이다.
청원을 제기한 승무원은 "스케줄의 불안전성뿐만 아니라 살인적인 비행시간과 노동강도에 몸살을 앓고 있다"며 "부족한 인력으로 어거지 운영을 하니 개개인의 비행시간은 늘어만 가고 많은 비행에서 승무원이 부족한 채로 일하고 있다"고 청원을 제기한 이유를 밝혔다. 이 승무원은 인력이 부족한 상태로 비행을 하면 주어지는 보상휴가(CDO) 역시 인력 부족을 이유로 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TV가 확인한 결과, 실제로 대한항공 승무원들이 이용하는 사내 게시판에는 CDO를 제대로 주지 않는다는 불만을 제기하는 글들이 하루에도 수십건씩 올라오고 있다.
부족한 인력 때문에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면 그 댓가는 철저히 승무원들의 몫이었다. 문제는 승객들이 서비스 불만을 이유로 제기한 컴플레인 내용들이 사내 게시판에 모두 공유된다는 것이다. 청원을 올린 승무원이 `절대권력 댓글요정`이라 칭한 조양호 회장은 평소에도 이 게시판에 자주 들러 댓글을 남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승무원은 "절대권력 댓글요정 `조양호`님이 등장한다"며 "댓글이 달리면 해당 승무원, 지상직원 혹은 사무실 직원 등은 절차와 논리가 없고 전례가 없는 본보기식의 처벌을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조양호 회장이 관심을 갖거나 부정적인 댓글을 달 경우 더 큰 처벌이 주어진다는 얘기다. 대한항공 안팎의 증언에 따르면 `땅콩회항` 사건으로 조현아 전 부사장이 불명예 퇴진한 이후 서비스 불만에 대한 조양호 회장의 관심과 질책이 더욱 거세졌다고 한다.
이 청원에는 이 사안과 관련된 정부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에 대한 구제적인 요구도 담겨있다. 먼저 주무부처인 국토부에는 "왜 인력이 확보되지 않은 운항스케쥴을 허가해 주시는 겁니까?"라며 사태를 방관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이 승무원은 "승무원들이 계속해서 이런 형편없는 근무환경에 노출된다면 아무리 최소탑승인원이 탔더라도 100%의 안전을 보장할수 없다"며 안전한 운항을 위한 국토부의 역할을 주문했다.
고용부에는 대한항공의 인력 착취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말 연차휴가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는 한 언론 보도 이후 부랴부랴 휴가를 주겠다며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한국경제TV 취재 결과, 상·하반기 단 이틀씩만 주어지는 휴가는 개인의 일정이 아닌 팀별로 일괄 실시된다. 한 팀인 경우 모두 같은 날 휴가를 가야하는 것이다. 때문에 현재 이에 대한 승무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회사 측이나, 승무원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노조 역시 아무런 대응을 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승무원들의 불만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까지 등장했지만, 대한항공은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한항공 측은 "현재 인력부족으로 제대로 휴가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올해 승무원 500명을 충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대한항공이 추산하고 있는 승무원 부족분은 1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한항공 승무원은 "500명을 충원하더라도 퇴사 인원이나, 과로로 인한 병가가 늘어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어림도 없다"며 "이 상태로는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