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 역사관
`시원유명(視遠惟明)`
멀리 내다보고 치열하게 고민하라는 의미의 이 사자성어는 올해 초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제시한 2018년 경영 키워드입니다. 2014년 취임한 뒤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 매출 60조원대에 복귀하는데 성공한 CEO의 미래 고민이 담긴 일성이었습니다.
사실 시원유명의 자세가 포스코에게 새로운 일은 아닙니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포스코 스스로도 홍보하듯, 포스코는 그 출발부터 미래의 `먹거리 고민`으로 인해 탄생한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산업구조를 볼 때 제철소 건설은 시기상조"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국내 산업은 1차 산업 위주였습니다. 아무런 기반도 없이 `철강산업으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다`며 일관제철소를 지어야 했습니다.
서울역에서 KTX로 2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포항엔 포스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원유명들이 켜켜이 쌓여있었습니다. 과거 포스코 설립자들의 고민이 담긴 포항제철소와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슈인 4차 산업혁명, 또 미래 먹거리로 불리는 바이오 산업을 한 데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포스코 열연공장
홍보관 직원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포항제철소 1열연공장은 철강회사 포스코의 본모습을 보는듯했습니다. 공장에 들어가자마자 매캐한 쇠 냄새와 수증기가 코에 훅 들어왔습니다. 동시에 거대한 가열로에서 막 나온 철강 중간단계인 `슬라브`의 뜨거운 열기도 얼굴에 느껴졌습니다. 직원은 "슬라브의 온도가 1,200℃에서 1,300℃ 가량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열로에서 가열된 슬라브는 각 단계의 롤을 통과하며 고객사가 원하는 두께로 얇게 펴집니다. 얇게 펴진 슬라브는 런아웃테이블에서 물로 냉각한 뒤 두루마리 휴지 모양의 코일로 말려 공장의 끝에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열연공장은 철강 생산 과정인 제선-제강-압연 중 끝에 해당하는 압연을 담당합니다. 포스코 관계자는 "1열연공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열연공장이고, 1980년 포항 2열연공장이 준공되기 전까지 포항제철소의 모든 철강은 이곳을 통과해 수출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준공된 지 40년을 훌쩍 넘긴 이 곳은 1972년 가동을 시작한 이래 누계 1억 톤, 연간 350만 톤의 열연코일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 1976년 5월 31일 포항제철 제2고로에 불을 붙이는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사장
다음으로 도착한 제2고로(용광로)에서는 현재 가장 뜨거운 화제인 4차 산업혁명을 위한 대비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2고로는 박정희 대통령이 화입식을 진행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이곳은 포스코가 2016년 7월부터 시작한 스마트 팩토리 사업의 대표 실험실이 되었습니다. 엄청난 양의 벌건 쇳물과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지만, 정작 인상 깊었던 것은 CCTV로 고로와 연소 상태를 확인하고 모니터를 통해 AI와 빅데이터로 분석된 자료를 보고 있는 중앙운전실 근로자의 모습이었습니다.
▲ `새로운 50년을 향한, smart POSCO의 도전` 발표 모습
제2고로는 한 마디로 `공장이 AI를 만난 곳`이었습니다. 제2고로에서는 쇳물이 나오는 출선구의 온도를 사람이 아닌 센서가 온도를 재고,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온도를 조절합니다. 또 철광석과 코크스의 품질검사도 사람이 직접 눈으로 체크해야 했지만 이젠 AI가 대신해 불량품을 점검합니다. 연소 상태 역시 각각의 발화 상태를 찍은 수천, 수만 장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현재의 발화 수준을 판단해 자동으로 조절됩니다. 포스코 관계자는 "지난해 제2고로 철 생산량은 약 5% 늘었고 비용도 5% 가량 감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3세대 방사광가속기 모형
미래를 위한 포스코의 대비는 포스텍(포항공대)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3세대와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있습니다. 방사광가속기란 방사광을 통해 미세입자의 구조와 현상을 관찰하는 장치입니다. 특히 지난 2016년 9월 세계에서 3번째로 가동된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그 길이가 약 1.1km에 달하는 국내 최장 직선 건물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김도윤 포스텍 총장은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3세대보다 1억 배 밝은 빛을 사용해 물질을 1000조분의 1초 단위로 분석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한 번에 한 팀만, 최대 6일 쓸 수 있어 1년에 예약이 다 차있다"고 귀띔했습니다.
▲ 4세대 방사광가속기
방사광가속기가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는 바이오산업입니다. 김 총장은 "자물쇠 구조를 알면 열쇠를 만들 수 있듯, 방사광가속기를 통해 단백질 구조를 파악하면 그에 맞는 약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권오준 회장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한민국에서 바이오에 대한 능력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곳이 포항공대"라고 말하며 "그동안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에 교수님들이 만들어내는 특허를 활용해서 비즈니스로 활용해보자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바이오 분야에 대한 포부를 밝혔습니다. 포스코의 미래를 위한 고민엔 `철강회사 포스코`만이 들어있진 않았습니다.
▲ 포항제철소 전경
포항제철소는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여느 제철소들과는 다르게 U자 모양으로 생겼습니다. 홍보관 관계자는 그 이유를 "제 1고로가 만들어진 이후 철강 생산 설비들이 그때마다 주변에 확장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반세기 동안 포항제철소와 포스코가 겪어온 시간이 물리적인 형태로 남겨진 듯 했습니다.
포스코가 오늘(1일) 발표한 `POSCO 100 비전`에 따르면, 철강 관련 사업이 약 80%를 차지하는 현재 포스코의 수익구조는 향후 50년간 철강 뿐 아니라 인프라, 신소재 사업 등으로 다각화 됩니다. 다가올 50년도 녹록친 않습니다. 대외여건 악화에 이어 신소재 사업의 경우는 일부 언론에 의해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50년 전 포스코가 설립될 때부터 시작된 포스코의 고민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되어 포항 곳곳에 스며있었습니다. 권오준 회장도 "이 회사는 공기업이었기 때문에 구성원 모두가 국가에 기여하는 회사로 남아 성장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며 포스코 특유의 사명감을 설명했습니다. 포스코의 미래를 향한 고민은 포항과 포항제철 곳곳에서 더 깊은 굴곡의 U자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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