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스페이드` 핸드백 브랜드로 유명한 동명의 패션 디자이너 케이트 스페이드(56)가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연예매체 TMZ를 비롯한 미 언론이 보도했다.
미국 뉴욕 경찰은 이날 오전 스페이드가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침실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현재로서는 스페이드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미 방송 CNN에 따르면 현장에서는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엔 13살 딸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담겼고, 남편 앤디 스페이드도 언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1962년 미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난 스페이드의 본명은 캐서린 노엘 브로스너헌이다.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으며, 대학 재학 시절 훗날 남편이 된 앤디를 만났다.
1985년 대학 졸업 후 뉴욕의 잡지 마드모아젤에서 패션 부문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한 그는 5년 후 액세서리 부문 에디터로 자리를 옮긴다. 당시 그는 핸드백들이 너무 화려하고 부속품이 많다고 불만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1993년 남편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핸드백, 액세서리 브랜드인 케이트 스페이드를 세웠다.
같은 해 그는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원했던 것은 `정교하면서도 스타일을 갖춘 기능적인 가방`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케이트 스페이드는 특유의 밝은색과 프린트를 선보였다. 세련된 도시 커리어 우먼의 인기를 끌었고 점차 어린 소녀들까지 포용해나갔다. 명품 브랜드인 펜디와 샤넬보다는 소비층이 넓고 쉽게 사들일 수 있는, 귀엽고 발랄한 핸드백으로 사랑받았다.
뉴욕에서 시작한 케이트 스페이드는 미국내 140곳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175개 매장을 가진 정상급 브랜드로 변모했다.
미국에서 케이스 스페이드의 핸드백을 갖는다는 것은 전문직의 성취 같은 이미지를 주는 한편, 어린 여성에게는 어른이 됐다는 징표 같은 것으로 통한다. 스페이드는 그 자신이 브랜드의 얼굴이 된 동시에, 토리 버치나 제이크루의 제나 라이언스 같은 여성 디자이너를 위한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그는 사업과 조금씩 거리를 뒀고, 디자이너 브랜드였던 케이트 스페이드는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1999년 스페이드 부부는 케이트 스페이드의 지분 56%를 미 백화점 체인 니먼 마커스에 넘겼고, 2007년 리즈 클레이번사가 회사를 인수하게 된다. 지난해 5월에는 패션 브랜드 코치가 24억 달러에 케이트 스페이드를 인수해 화제가 됐다.
스페이드 부부는 최근 딸의 이름을 따 프랜시스 밸런타인이란 액세서리 브랜드를 내놓기도 했다.
스페이드의 사망 소식 이후 추모의 글이 잇따랐다.
케이트 스페이드 회사는 성명을 통해 "케이트는 10년 이상 브랜드 소속이 아니었지만, 케이트와 남편 앤디는 우리가 사랑하는 브랜드의 창립자였다"며 "케이트가 몹시 그리울 것이다. 우리는 앤디, 전체 스페이드 가족과 함께 애도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미 패션디자이너협회(CFDA)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케이트는 미국 패션과 액세서리를 보는 세계의 시각에 엄청난 영향을 준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며 조의를 표했다.
배우 민디 캘링은 트위터에 "나는 그녀의 옷을 여러 번 입었다. 그것은 화려하고, 대담하고, 쾌활했고 사람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줬다"고 추모했고,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딸 첼시는 트위터에 "대학에 있을 때 할머니가 첫 케이트 스페이드 가방을 주셨고 여전히 갖고 있다"고 애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도 스페이드의 "스페이드의 비극적인 죽음은 우리가 다른 이의 고통이나 그들의 짐을 결코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며 "당신이 우울증과 자살 생각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면, 부디 도움을 청하세요"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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