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집단의 공익법인이 주식을 보유한 계열사 중 절반 가까이가 총수 2세 지분이 있는 계열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공익법인 자산 중 주식 비중은 일반 공익법인의 4배에 달했지만 정작 주식의 수입 기여도는 극히 낮아 사업재원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일 이 같은 내용의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운영실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은 지난해 9월 1일 지정된 자산 5조원 이상 57개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소속 비영리법인 중 증여세 등 감면 혜택을 받은 상속·증여세법상 공익법인은 51개 집단 총 165개다.
2016년 말 기준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의 자산 중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21.8%로 전체 공익법인(5.5%)의 4배에 달했다. 이 중 74.1%는 계열사 주식이었다.
대기업집단 공익법인 165개 중 66개(40%)가 총 119개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 공익법인 중 59개는 총수 있는 집단 소속이다.
이들이 주식을 보유한 119개 계열사 중 57개사(47.9%)는 총수 2세도 지분을 함께 보유한 `총수 2세 회사`인 것으로 분석됐다.
공익법인이 총수 2세의 우호지분으로서 경영권 승계에 동원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대기업 총수들이 공익법인에 재산을 출연해 자선·교육 등의 분야에서 벌이는 사회 공헌 활동은 적극 장려할만하다.
공익법인에 주식을 증여할 때 최대 5% 지분까지 상속·증여세를 면제해주는 이른바 `5% 룰`을 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5% 룰`이 여전히 일부 공익법인에는 다른 계열사의 지분을 멋대로 사고팔면서 총수지배력을 넓힐 수 있도록 하는 `규제 구멍`이 되기도 한다.
공익법인이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거나 내부거래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공익재단은 2016년 2월 삼성물산 주식 200만 주를 사들였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불거진 신규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결국, 재단이 삼성물산 주식을 매입하면서 삼성그룹에 대한 이 부회장의 실질적인 지분율은 16.5%에서 17.2%로 상승하게 됐다.
대기업이 공익법인을 통한 지분 우회 확보로 총수의 지배력을 강화했다는 의혹을 받는 대표적인 사례다.
공익법인은 다른 계열사를 지원하는 `우회 통로`로도 자주 이용된다.
한진그룹의 총수인 조양호 회장이 이사장인 정석인하학원은 지난해 3월 대한항공이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해 진행한 4천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정석인하학원의 출자 규모는 52억원이었다.
정석인하학원은 이중 45억원을 한진의 다른 계열사로부터 현금으로 받아 충당했지만, 증여세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정석인하학원이 증여세가 면제되는 공익법인이기 때문이다.
정석인하학원이 출자한 대한항공은 직전 5년간 배당 내역이 없었다. 공익법인의 고유목적 사업과 무관한, 순수한 대한항공 지원을 위한 출자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회장이 이사장인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금호산업[002990] 주식을 시가보다 비싸게 사들여 총수의 경영권 분쟁을 측면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이후 금호산업 주식을 매각한 돈으로 워크아웃이 진행 중인 금호타이어 지분을 사들여 부실 계열사 지원에 동원됐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일감 몰아주기 등 규제를 피하기 위해 지분을 조정할 때 공익법인은 총수 입장에서 `훌륭한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위는 공익법인과 관련된 제도 개선안을 논의 중이며 외부 의견수렴을 거쳐 개선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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