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재에 따른 경제 타격 우려에 러시아와 터키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특히 터키는 구제금융설이 나올 만큼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와중에 미국과 갈등 조정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며 외환시장이 한때 `패닉` 증세를 보였다.
10일(이스탄불 현지시간) 장 초반 터키리라화는 한때 1미달러에 6.3005리라에 거래되며 전날 마감 때와 비교해 13.5% 폭락했다.
투매가 진정되며 이날 오후 2시 현재 리라달러환율은 5.9리라 선에서 거래 중이다.
이날 리라화 폭락은 미국·터키 관계 경색 탓이 크다.
미국인 목사 구금을 이유로 제재를 받는 터키는 악화된 대미 관계를 풀기 위해 7일 외교차관이 이끄는 정부 대표단을 워싱턴에 파견했지만, 대표단은 9일 사실상 `빈손`으로 귀국했다.
올해 들어 전날까지 리라 가치는 46.6% 폭락해 블룸버그가 집계하는 24개 신흥국 통화 중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아르헨티나의 페소(약 50.9%)를 제외하면 낙폭이 가장 크다. 러시아 루블은 15.4%로 그다음으로 많이 떨어졌다.
터키 국채 5년물 금리는 9일 21.2%로 전날보다 0.47%포인트 치솟았다. 채권 금리 상승은 가치 하락을 뜻한다.
이스탄불 증시의 보르사 이스탄불(BIST) 전국 100지수는 전날보다 0.22% 올랐으나 올해 들어서는 15% 넘게 하락했다.
터키 경제는 앞서 수년간 덕을 본 미국과 유럽의 통화완화 정책이 끝나고 터키 기업들의 부채 증가에 대한 지적이 제기된 데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의 통화정책에 대한 우려도 커지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통화 가치 급락과 금리 급등은 부채가 2천200억달러(약 247조원)에 달하는 터키 기업들에 큰 충격이 될 수 있다.
네덜란드 은행인 ABN암로는 9일 낸 보고서에서 투자자들이 터키의 금융자금 조달 능력을 우려하고 있다면서 "외환 거래에 대한 자본통제와 IMF 구제금융 가능성을 둘러싼 소문이 외환시장을 더 압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리라화 폭락 저지를 위해 터키 정부가 쓸 수 있는 옵션으로 금리 인상과 IMF 구제금융, 미국과 협상 타결, 자본통제 등을 꼽았다.
하지만 이들 옵션 중 어느 하나도 터키가 쉽게 취할 수 있는 것은 없는 상황이다.
향후 금리 인상은 경제 안정에 하나의 카드가 될 수는 있지만, 지난달 터키 중앙은행이 금리 동결이라는 충격적인 결정을 했던 만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를 용인할지 의문이며 지속성 있는 해결책도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IMF 구제금융 신청의 경우 시장에서 관측은 이어지고 있으나 터키 정부가 긴축적인 통화·재정정책을 감수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으므로 역시 현실성이 낮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자본 유출을 막는 통제는 중국처럼 국가의 금융부문 장악력이 높아야 가능하다.
FT는 터키의 경제 성장률과 재정적자가 아직은 버틸 만한 수준이라는 전문가 분석을 근거로, 터키가 `그냥 기다리는`(wait it out) 전략으로 버티기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날 밤 흑해 도시 리제에서 열린 행사에서 최근 외환시장 동향을 "터키를 공격하려는 작전"이라고 규정하면서, 핵심 지지층인 보수 무슬림을 향해 단결을 호소했다.
그는 "여러 가지 작전이 벌어지고 있으니 거기에 휩쓸리지 말라"면서 "그들에게 달러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국민이, 우리 알라가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영국에서 전직 이중간첩을 신경작용제로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와 관련해 미국 제재를 받게 된 여파로 통화와 채권 가치가 급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루블화 가치는 이틀 연속 하락해 9일 장중 한때 달러당 66.71루블에 달했다. 미국의 제재 방침이 발표되기 전날인 7일 밤과 비교하면 5%가량 급락한 것이다.
한국시간으로 오전 9시 현재도 세계 외환시장에서 루블화는 2016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환율인 달러당 66.60루블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이번 제재는 국방안보 부문에 집중돼 초기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됐지만, 제기된 관측대로 연말까지 외교관계의 변동이나 양국 간 항공편 보류, 러시아산 상품 수입 제한을 포함한 2차 제재가 가해지면 상황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블라디미르 바실리에프 모스크바 미국캐나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러시아 관영 매체에 "우리는 경제전쟁으로 빠져들고 있다"며 "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르고 있다"고 우려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러시아 국채 10년물 금리는 7일 7.890%에서 9일 8.240%로 뛰어올라 지난해 3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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