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4일, 경기도 시화공단을 찾았다. 한국경제매거진이 교육부, 한국직업능력개발원과 공동주최한 ‘제1기 중소기업 원정대’ 행사의 일환이었다. 특성화고교생들이 직접 산업현장을 두 눈으로 견학해 봄으로써 중소기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보자는 취지다.
이날은 수도권에서 뽑힌 13명과 함께 대모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를 둘러봤다. 학생들은 유한공고 출신인 이원해 회장과의 인터뷰에서 큰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이 회장은 창업 30년만에 브레이크 등 건설중장비(어태치먼트)를 70여 개국에 수출하고, ‘2030년 매출 3000억원’ 목표를 세울 정도로 회사를 크게 키웠다. 특히 유한공고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호랑이 같은 중학교 교장선생님과 아르바이트하던 출판사 사장님을 차례로 찾아갔다는 무용담은 압권이었다.
이 회장은 “돈은 벌어서 다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유일한 박사(유한양행 창업자이자 유한공고 설립자)의 철학을 본받아 정도경영을 추구한 것을 성공가도의 배경으로 꼽았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이 회장은 3년간 수업료를 한 푼도 안 받는 특성화고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며 남다른 애정을 표시했다. 유한공고가 아니라 다른 학교를 갔더라면 전혀 다른 인생길을 걸었을 것이라는 그의 회고담에서 학창시절의 가치관 특히 특성화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 전 대구에서 만난 교육청 관계자는 “학부모들의 생각을 먼저 바꿔야 한다”고 안타까움을 털어놨다. 중학생 나이만 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관련된 공부에 집중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일단은 대학에 가야지”라는 학부모들의 고정관념이 아이들로 하여금 다양한 꿈을 꾸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대학에 들어간들 아이들에게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대학은 어릴 적 꿈과는 전혀 상관없이 공무원, 대기업 시험을 준비하는 또다른 학원이 된지 오래다.
일본의 명문사립인 게이오대학에는 교실 공부와 담을 쌓은 학생들이 많다. “졸업을 할 수 있게 C학점 이상만 받으면 된다”며 결석을 밥 먹듯 하는 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중간, 기말 시험기간 중에도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도서관에 빈자리가 남아도는 이유다.
이렇게 공부에 무관심한 대학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기업에 척척 들어가는 배경이 뭘까. 필자는 성곡언론문화재단 후원으로 1년 동안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게이오의 진면목을 캘 수 있었다. 재계에 빼곡히 포진해있는 게이오 출신 사장들은 후배들을 채용하는데 전혀 인색하지 않다. 그러니 학생들은 학점이나 영어성적 등 스펙에 신경 써야할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100% 취업의 진짜 비밀은 수백개에 달하는 다양한 써클활동에 숨어있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학생들은 교실 대신 써클룸에서 먹고 놀면서 대학시절 내내 춤을 추거나 음악에 미쳐있거나 자동차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써클활동에 올인 하는 동안 협동심과 끈기, 리더십 등 기업이 필요로 하는 모든 역량이 학생들의 몸에 절로 밴다. 인사담당자는 취준생이 어떤 서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느냐만 확인하면 기업에 최적의 인재를 뽑을 수 있게 된다.
청년취업이 국가적 최대 과제다. 대졸백수들로 집집마다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지만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이다. 어릴 적 아이들의 가치관을 올바로 세워주는 것, 못미더워 보이지만 그런 아이들을 믿어 주는 것, 그렇게 부모들의 욕심을 버리는 것, 아이들이 정작 필요한 것을 배우는 곳은 대학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서 단서를 찾아보면 어떨까.
김병일 캠퍼스잡앤조이·1618 편집장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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