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무역마찰이 2년이 다가오면서 우리 경제의 ‘유커 윔블던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유커 윔블던이란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자국 선수인 영국인보다 외국 선수가 우승하는 횟수가 더 많은 것에 빗대어 국내 금융시장에서 주인인 한국보다 중국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 미·중 마찰 이후 `유커 윔블던` 심화
올해 여름철 이후 코스피 지수와 상해종합지수 간 상관계수를 최소자승법, 벡터자귀회귀 등으로 구해보면 0.8로 다우지수산업평균지수와의 상관계수보다 2.5배 이상 높게 나온다. 같은 기간 중 위안화와 원화 간 상관계수는 무려 0.9에 달한다. 주식시장보다 외환시장에서 유커 윔블던 현상이 더 심하다는 의미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중 간 마찰이 본격화된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원화와 위안화 간 상관계수가 더 높아지고 있는 점이다. 2014년 12월 원화와 위안화 직거래 시장이 개설된 토대 위에 대중국 수출비중이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 미국 중앙은행(Fed)가 금리인상을 계기로 대발산(Great Divergence)’이 재현되는 것도 원인이다.
1990년대 중반 대발산 현상이 처음 발생했을 당시 상황을 보면 독일 분데스방크는 금리를 5%에서 4.5%로 내렸다. 같은 시점에 Fed는 3.75%에서 4.25%로 인상한 이후 1년도 못되는 짧은 기간 안에 6%까지 올렸다. 1995년 4월에는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한 ‘역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 강세를 용인하는 ‘루빈 독트린’ 시대도 전개됐다.
Fed의 금리인상과 달러 강세로 미국 경제는 ‘외자 유입→자산가격 상승→부(富)의 효과→추가 성장’ 간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신경제’와 ‘슈퍼 달러’ 시대를 맞았다. 반면 신흥국은 자금이탈에 시달리면서 1994년 중남미 외채위기, 1997년 아시아 통화위기, 1998년 러시아 국가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이어지는 ‘그린스펀-루빈 쇼크’로 어려움을 겪었다.
미중 간 무역마찰은 쉽게 타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경제 주도권 싸움인데다 경제발전단계 차이가 워낙 커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가 쉽게 줄어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스트롱 맨인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 주석 입장에서도 밀리면 정치 생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 또한 부담이다.
미중 간 무역마찰로 가장 우려되는 부작용은 세계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이 약화되고 있는 점이다. GVC란 ‘기업 간 무역(Inter Firm Trade)’와 ‘기업 내 무역(Intra Firm Trade)’을 말한다. GVC가 약화되면 세계교역량이 위축돼 중국, 한국과 같은 수출지향적인 국가일수록 타격을 받는다.
중국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통상 요구에 적극적으로 맞대응하면서 대내적으로는 지급준비율 인하, 위안화 약세 유도 등으로 완충 장치(airbag)를 마련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올해 초 달러당 6.2위안대까지 강세를 보였던 위안화 가치가 최근에는 7위안대 진입이 초읽기에 몰릴 정도로 급락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흥국 입장에서 우려되는 것은 ‘제2 루빈 독트린’이라 불리는 ‘커들러 독트린’ 시대가 전개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달러 가치는 ‘머큐리(Mercury)’로 표현되는 펀더멘털 요인과 ‘마스(Mars)’로 지칭되는 정책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미국 경제는 당분간 성장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출범 초 약달러 정책은 무역적자 축소에 도움돼지 못함에 따라 강달러 정책으로 바뀌었다.
◇ 모건스탠리 "한국, 중국발 충격 큰 대표 국가"
한동안 수면 아래로 잠복됐던 위안화발 금융위기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에서 금융위기가 일어난다면 ‘위기 확산형’으로 악화될 것인가 아니면 ‘위기 축소형’으로 수렴될 것인가는 두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는 레버리지 비율이 얼마나 높으냐와, 다른 하나는 투자 분포도가 얼마나 넓으냐는 글로벌 정도에 좌우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악화된 것은 위기 주범이었던 미국 금융사의 이 두 지표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중국은 두 지표 모두 낮은 편이다. 최근 우려대로 위안화발 금융위기가 발생된다 하더라도 미국식 글로벌 금융위기로 악화될 소지는 적다.
그 대신 위기 비용을 중국이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JP 모건이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충격이 큰 국가를 ‘취약 5개국’, 모건 스탠리가 중국 문제로 충격이 큰 국가를 ‘투자불안 10개국’으로 구분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 ‘T10’의 대표국가다. 한국 정부의 정책대응과 투자자의 전략은 이 점에 초점을 맞춰 추진해야 한다.
올해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사태가 발생한지 10년이 됐다. 지난 10년 동안 세계 부동산 가격은 지금 이 시간에도 높아지고 있는 마천루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각국의 수도처럼 상징성이 높은 도시일수록, 용도별로는 상업용과 주거용 가릴 것없이 금융위기 이전 수분보다 더 올랐다.
일등공신은 각국 중앙은행이 위기 극복 차원에서 추진했던 유동성 공급과 초저금리 정책 때문이다. 국가별로는 막대한 무역흑자와 외환보유를 바탕으로 한 차이나 머니와,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호텔과 오피스텔을 집중 매입해 산업용 부동산 시장에 큰 손으로 부각된 코리아 머니가 세계 부동산 가격을 끌어 올렸다.
오르면 더 올라갈 것이라는 유포리아 심리까지 겹쳐 끝이 없을 것처럼 보였던 세계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작년 4분기부터 멈추기 시작했다. 그 후 변동성이 심한 장세를 보이다가 지난 2분기부터는 상업용 부동산, 3분기부터는 주거용 부동산 가격이 순차적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강남 집값도 14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프라임 글로벌 도시지수(PGCI)를 발표하는 영국 부동산 정보업체 나이트 프랭크에 따르면 세계 주요 도시 집값은 지난 3분기에 평균 0.5%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소득순위 5%가 넘는 고소득층이 거주하는 고급 주택일수록, 중국인이 많이 투자한 도시일수록 집값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한마디로 차이나 머니가 발을 빼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 세계 부동산가격 급락시 `아파트 공화국` 한국 충격 더 커
지난 2년 전부터 성장률 계획경로에서 이탈될 기미를 보이는 중국 경제가 앞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질병인 3대 코뿔소를 해결해야 한다. 3대 코뿔소란 알면서도 당하는 투자 용어로 중국의 경우 그림자 금융, 과다 부채, 부동산 거품을 말한다. 모두 발생한 원인을 따져보면 부동산 투기와 직결돼 있다.
중국 정부는 3대 코뿔소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해외 부동산 투자 정책부터 ‘네거티브(원칙 자유)’에서 ‘포지티브’로 방향이 전환됐다. 제한이 없었던 개인의 해외자금 유출도 규제하기 시작했다. 증시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지급준비율 인하 등 금융완화를 추진하는 솟에서도 3대 코뿔소를 해결하기 위한 규제정책은 유지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중국의 국가채무비율은 국내총생산(GDP)대비해 260%로 일본의 250%보다 높다. 세계 최고수준이다. 중국 정부는 앞으로 3년 동안 10년 전 수준인 160%를 목표로 과감하게 줄여나간다는 계획이다. 올 들어 중국 기업의 디폴트 규모가 작년의 5배에 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의 부채가 골칫거리다. 세계 3대 평가사인 미국의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사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의 부채는 3,550억 달러에 달한다. 우리 외환보유액과 맞먹는 규모다. 이중 10%가 넘는 360억 달러의 부채가 내년 1분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점을 세계 부동산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채무 불이행 사태를 막기 위해 해외 부동산을 매각해온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의 자금회수가 만기가 다가올수록 빨라지면서 세계 부동산 가격이 의외로 빨리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마진 콜(증거금 부족)이 발생한 부동산 개발업체의 경우 보유 주식을 내다파는 디레버리지 과정에서 주가도 떨어지고 있다.
세계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경우 가장 우려되는 점은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역(逆)자산 효과’다. 역자산 효과란 특정가계가 소비를 전 생애에 걸쳐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미래 기대 소득뿐만 아니라 보유자산 가치를 감안해 결정해애 한다는 ‘항상소득가설(밀턴 프리드만)’과 ‘생애주기가설(프랑코 모딜리아니)’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미국의 사례(앨런 그린스펀, 2000년)는 주식자산이 1달러 감소하며 소비가 3∼4센트 감소하는 반면, 주택가격 하락의 소비감소 효과는 1달러당 10∼15센트로 주식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의 경우(이항용, 2004년) 환금성이 높은 아파트 가격변화에 따른 소비지출변화의 탄력성은 0.23으로 더 높게 나온다. 한국이 충격이 높다는 의미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주택가격을 연착륙시키지 못할 경우 세계 경제에 복합불황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통화정책 수단이 제 궤도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주택가격이 급락하면 역자산 효과로 경기가 재 침체되고 정책대응마저 쉽지 않아 1990년대 일본 경제처럼 ‘잃어버린 10년’ 우려가 곧바로 나올 수 있다. 한국이 대표국가로 지목된다.
한상춘/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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