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조직문화를 가진 회사는 정말 좋아요?”
곧 대학 졸업장을 받으러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캠퍼스 잡앤조이 인턴 기자가 물었다. 올해 4월까지 2년 간 수평적 조직문화를 잘 실천한다고 평가받는 회사에 있다가 퇴사했지만,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대개 미디어 조직의 문화가 군대식이라고 이야기 하다 보니, ‘별로’라고 대답하면 괜히 수직적인 구조를 정당화하려는 선배처럼 보일까 내심 대답을 아낀 측면도 있었다. 애써 외면해도 대학생들이 취업을 원하는 기업들의 주요 강점이 ‘수평적 조직문화’라고 거론될 때마다 찜찜한 기분은 더해졌다.
● “내가 동의한 일만 해” 수평과 협업의 줄다리기
대등한 관계에서 유연하고 창의적인 발상이 나온다고 믿는 ‘수평적 조직문화’는 이제 한국에도 제법 뿌리를 내린 것 같다.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업무를 하기 위해 직급을 없애고, 영어이름을 쓰거나 이름 뒤에 OO님, OO씨로 통일해 부르곤 한다. 프로젝트나 팀에서의 리더도 개인의 업무 역량에 따라 신입이 맡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수평적 조직문화의 가장 큰 강점은 위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내려온 일을 묵묵히 수행해야 하는, 톱다운(Top Down) 방식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일에서도 개인의 자율이 어느 정도 존중된다.
거침없이 발제하고, 직급을 내려놓고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일을 만들어갈 수 있는 훌륭한 문화가 멋지긴 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수평’이라는 어감은 종종 ‘균등’으로 오해를 받아 조직을 외려 분열시켰다. 의사를 결정하는 프로젝트 리더가 당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일의 권한이 균할 배분된다고 착각하는 경우였다, 주로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업무를 중단시킨다. 자신이 타인을 설득하지 않고 일이, 팀원이, 리더가 자신을 설득시키길 수동적으로 기다린다.
늘 만장일치로 합의를 볼 것이 아니라면 모든 일에는 반드시 결정권자가 필요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당연히 결정권자가 져야 한다. 애초에 수평적 조직문화는 팀원 중 누군가가 적임자라 생각되면 지위를 막론하고 리더의 역할을 맡기는 것이지, 모두가 어떤 상황에서든 동일한 권한을 가지고 움직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회사에 사장도 대표도 있을 이유가 없다.
● 권한과 책임은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스타트업계의 신화로 자리 잡은 ‘배달의 민족’은 수평적 조직문화는 유지하면서 일에서는 수직적이 될 것을 직원들에게 당부한다. 모두가 동등한 존재인 것은 맞지만 역할과 결정권한까지 동등하게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정한 사람을 중심으로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것을 보태어 부탁하기도 한다.
지난번 회사에서 팀의 결정에 수긍하지 않고 이리저리 일을 회피하던 개발자와 프로젝트 리더이던 기획자는 결국 서로 얼굴을 붉혔다. 프로젝트 마감 시일을 두 달 넘긴 시점이었다. 클라이언트와 상관된 일이 아니어서 딱히 큰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없었지만, 이미 감정이 상할 대로 상했다. 서로를 존중하고 수평적인 존재가 되자며 만든 영어이름을 부르며 싸우는 모습이 진풍경이었는데 정말 코미디는 그 뒤에 벌어졌다. 누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시비를 가려달라며, 두 사람이 상위권한자를 찾아간 것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애초에 두 사람 모두에게 해당 사건을 해결할 권한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글. 남민영 캠퍼스 잡앤조이 기자 moonbl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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