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개봉한 `말모이`(엄유나 감독)는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 까막눈 판수(유해진 분)가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을 만나 사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전국의 우리말을 모으는 과정을 그렸다.
오늘날 당연하게 쓰는 우리말이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일제의 한민족 말살이 극에 달해 우리말 사용이 금지됐던 1940년대, 경성이다. `말모이`란 `사전`의 순우리말로, 국어학자 주시경이 1911년 제작을 시작했으나 죽음으로 인해 미완성이 된 최초의 국어사전 원고를 가리킨다.
당시 우리말 사전을 만들려다 관계자들이 옥고를 치렀던 `조선어학회 사건`을 뼈대로 삼고, 여기에 `말모이` 제작에 뜻을 보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살을 붙인 영화다.
아들의 학비가 부족해 가방을 훔치다 실패한 `판수`(유해진)가 면접을 보러 간 조선어학회의 대표는 하필이면 가방 주인 `정환`(윤계상). 까막눈이라 사전 제작에 도움이 안 되는 판수는 읽고 쓰기를 배우는 조건으로 채용되고, 난생처음 글을 배우며 우리말의 소중함에 눈뜬다.
`보통` 사람들을 데려와 전국의 우리말을 모으는 데 힘까지 보태는 판수를 보며 정환 역시 `우리`의 소중함에 눈뜨며 말모이의 참뜻까지 되새겨간다.
엄유나 감독은 평범했던 사람들이 말모이 제작 과정에서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란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또 역사란 보통 사람들의 작지만 큰, 무수한 선택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글을 모르는 판수와 사전 제작에 모든 것을 건 지식인 정환의 호흡은 `동지`와 `우리`란 말의 따스함과 가슴 벅참을 느끼게 해준다. 앙숙 같은 두 사람이 `말모이`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 또한 관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안겨준다.
그밖에도 학생부터 노인까지, 전과자부터 지식인까지 사전 제작에 힘을 보탠 사람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사람 냄새 풍기는 연기파 배우들이 스크린 곳곳을 종횡무진 누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조차 꾸기 어려워진 요즘, 사람들이 서로 온기를 나누며 험한 세상을 버텨가도록 위로해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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