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 다수가 대한항공·한진칼 등 한진그룹에 경영참여형 주주권을 행사하는 데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탁자책임위원회 주주권 행사 분과 위원 9명은 23일 오전 서울 모처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고 한진그룹에 대한 주주권 행사 여부와 범위 등을 논의했습니다.
수탁자책임위는 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책임 원칙)를 도입하면서 구성한 의사결정 기구입니다.
수탁자책임위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주주권 행사 방향을 판단하기 곤란해 결정을 요청한 사안뿐 아니라 위원 3인 이상이 요구하면 직접 안건을 상정해 주주권 행사 방향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날 회의에서 위원들은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사내외 이사 해임, 정관변경 요구 등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을 행사할지를 놓고 4시간여에 걸쳐 치열한 토론을 벌였습니다.
일부 위원은 지난해 국민연금이 한진그룹에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요구하는 비공개 서한을 보냈지만 이렇다 할 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과반수 위원들이 현 상황에서 경영참여형 주주권을 행사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한진칼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 여부에 대해 총 위원 9명 중 4명이 찬성했으며, 5명은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대한항공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 여부에 대해서는 총 위원 9명 중 2명이 찬성, 7명이 반대표를 행사했습니다.
상법, 자본시장법 등 관련 제도가 정비돼 있지 않다는 현실적 이유에서 입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마련한 로드맵에서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은 자본시장법 등 관련 제도가 정비된 뒤 행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다만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의결할 경우 행사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뒀습니다.
당시 정부가 정비하겠다고 한 법은 자본시장법상 10%룰과 5%룰입니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분을 11.7% 보유하고 있는데, 10%룰에 따라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투자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바꾸게 될 경우, 신고일 기준으로 6개월 안에 얻은 단기 차익을 회사 측에 반환해야 합니다.
국민연금의 위탁을 받아 자금을 운용하는 민간 운용사들이 대한항공 주가가 많이 올라 차익을 실현하고 싶어도 이 규정에 묶여 주식을 팔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국민연금이 7.34%를 보유한 한진칼은 5%룰의 적용을 받습니다.
경영참여를 목적으로 투자한 5% 이상 주주는 1% 이상 지분 변동이 있으면 실시간으로 공시해야 하는데, 이 경우 국민연금의 투자 전략과 매매 패턴이 시장에 공개돼 추종매매가 생겨나 운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단 지적입니다.
한편, 최종 결정은 기금운용위에서 내려질 예정인데, 기금운용위는 다음달 초 회의를 열고 한진그룹에 대한 주주권 행사 범위를 정할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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