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계부와 친모가 의붓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사건을 두고 경찰의 늑장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경찰이 아동 성범죄 사건 처리를 위한 원칙과 절차를 지키려다 결과적으로 수사를 지연시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전남지방경찰청과 광주지방경찰청 등에 따르면 중학생 A(12)양과 친부는 지난 9일 전남 목포경찰서에 계부인 김모(31) 씨를 성추행 혐의로 신고했다.
김씨가 A 양의 휴대전화로 음란 동영상을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A 양이 수사에 나선 경찰을 다시 찾아온 건 나흘이 지난 12일이었다.
A 양은 담당 수사관을 다시 찾아와 김씨가 자신을 강간하려 했다는 사실을 추가로 털어놨다.
처음에는 단순 음란 동영상 사건으로 취급하던 경찰은 이때부터 이 사건을 중대한 아동 성범죄 사건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지켜야 했던 원칙과 절차로 정작 실질적인 수사의 진행 속도는 더뎠다.
우선 A 양을 상대로 피해 조사를 하기 위해 관련 절차를 밟으려다 사흘이 흘렀다.
A 양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와 국선변호인, 진술 분석가 등이 참여해야 하는데, 이들과의 일정을 조율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관할지 규칙을 지키기 위해 사건을 광주청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도 수사는 일주일가량 더 미뤄졌다.
강간미수 범행 장소가 광주인 데다가 피의자로 지목된 계부 김 씨의 주거지도 광주라는 이유였다.
전남청 관계자는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주거지와 범죄현장이 있는 광주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게 원칙"이라며 "특히 구속영장은 관할 검찰청에 신청해야 하므로 광주청에서 김 씨를 조사하는 것이 더욱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설명했다.
A 양이 요청했다가 취소한 신변 보호에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아쉬움도 나온다.
목포서 조사 진행 당시 A 양은 담당 경찰관에게 신변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했다가 함께 사는 친부가 필요 없다고 하면서 번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사자가 철회했더라도 신변 보호 요청 배경을 따져보고 경찰이 적극적으로 개입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건을 넘겨받은 광주청 수사팀 역시 수사에 속도를 내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다.
정식 서류를 넘겨받고, 주말 휴일이 지나치느라 사건을 넘겨받고도 즉각 수사에 착수하지 못했다.
김 씨를 조사하기 전 추가 증거를 확보한다며 지난 24일에서야 친부에게 첫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피해자 본인에게 직접 연락을 할 수 없었던 수사팀은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를 통해 A양 측과 연락을 하고 싶다는 입장을 전달했을 뿐이었다.
광주청 관계자는 "피의자로 지목된 김 씨를 섣불리 조사할 경우 보복범죄의 우려가 있었다"며 "피의자를 부르기 전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수사의 원칙이었기에 이를 따른 것"이라고 광주청 관계자는 설명했다.
경찰이 범죄 사실을 인지하고도 안일한 대응을 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전남청은 강간미수 사건이 오래전 발생했고, A양이 친부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보복범죄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던 A양은 최초 신고로부터 18일이 지난 27일 계부 김 씨와 친모에 의해 살해됐다.
경찰은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동조한 혐의로 친모 유모(39)씨를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