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올빼미 공시' 잡겠다더니...당국, 기준도 못 정했다

신인규 기자

입력 2019-05-07 13:32   수정 2019-05-07 21:50

코오롱티슈진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골관절염치료제 인보사의 임상중지 통보를 받았다고 공시한 때는 우리시간 3일 오후 5시 38분, 여지없는 악재는 3일 장이 끝나고 사람들이 연휴로 자리를 떠날 때 즈음에야 알려졌다.
이 악재성 공시가 슬그머니 등장한 때는 FDA가 위치한 미 동부시각으로 3일 오전 4시 38분이다. 미국 관청이 꼭두새벽에 한국 기업에 공문을 보냈을 리가 없으니 코오롱 측에 실제 공문을 받은 시간을 확인했다. 한국 시간으로 3일 새벽, 장 시작 전이라고 했다. 이 경우 당일인 3일이 지나기 전까지만 공시하면 규정 위반이 아니라는 설명도 함께였다.
하루 전인 5월 2일, 금융위원회는 정례회의 이후 이른바 `올빼미 공시`를 근절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불법은 아니지만 시장 질서를 흐트리고 투자자 혼란을 가중시키는 늑장 공시를 잡겠다는 취지다. 주요경영사항 관련 정보를 연휴 직전이나 연말 폐장일에 자주 공시한 기업 명단을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시작은 5월 3일부터 6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어린이날 연휴라고 했다.
코오롱티슈진이 아니어도 3일 장마감 이후 악재성 공시를 내놓은 기업은 많았다. 연휴가 끝난 뒤 거래소 사람에게 이들이 새로운 올빼미 공시 기준에 걸리는 `첫 타자`가 되느냐고 농담처럼 물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보도자료는 발표했지만, 당국이 몇 시부터 올빼미 공시로 볼 것인지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 시 반 장 마감 이후로 할지, 시간외 매매가 모두 끝나고 난 여섯 시 이후를 기준으로 할지가 분명치 않아서라는 것이 이유였다. 연말의 경우는 시점을 정하기 더욱 애매한 점이 있다며 논의가 아직 진행중이라고 했다. 금융위 관계자도 연휴 전 거래일 몇 시부터를 올빼미 공시로 보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당연히 상장사 공시담당 관계자들에게도 강화된 기준에 대한 가이드라인 역시 전달된 적이 없었다.
당국의 혼란은 일견 해프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 맞춰, 또 다가오는 연휴에 앞서 기업들의 경각심을 우선 높이고 각론은 나중에 정하자는 급한 마음의 발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이면 정말 올빼미 공시가 근절될까 하는 의문은 지우기 어렵다. 이번에 내놓은 방안도 1년 동안 2회 이상 늑장 공시를 할 경우 2주 안에 기업의 명단만 공개하는 방식이다. 공시도 늑장인데, 감시와 제재는 더 늦는 셈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늑장 공시의 기준을 연휴 전일 여섯 시로 잡는다면 이번 연휴에 올빼미 공시를 낸 기업은 한 곳도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투자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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