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걸작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을 후세에 남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인류 역사의 천재 중 천재로 꼽힌다.
회화와 조각은 말할 것도 없고 건축, 철학, 물리학, 수학, 해부학 등에 두루 정통했으며, 육상과 악기 연주도 능했다. 동시대인들은 꿈조차 꾸지 못했을 비행기와 잠수함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졌는데 그가 남긴 비행기 설계도는 동력만 갖추면 그대로 공중에 뜰 만큼 우수했다고 한다.
가히 `호모 우니베르살리스(만능 인간)`라 할 만한 다빈치가, 요즘 어린이한테 많이 생기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환자였을 수 있다는 흥미로운 가설이 제기됐다.
주인공은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의 마르코 카타니 정신의학·심리학 교수다.
자폐증과 ADHD 치료 전문가인 그는 이런 내용의 연구보고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역설(The paradox of Leonardo da Vinci)`을 신경과학 저널 `브레인(BRAIN)`에 발표했다.
23일(현지시간)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보고서 개요에 따르면 카타니 교수는 당시 다빈치의 작업 방식과 행동 양식에 관한 역사적 기록, 동시대인의 증언 등을 샅샅이 뒤지고 검증해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카타니 교수는 "500년 전 인물을 사후 진단하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하지만 그가 어떤 일을 마무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이유를 가장 설득력 있고 과학적 개연성도 높게 설명하는 가설은 ADHD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역사기록을 보면 그는 계획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들인 데 반해 인내심은 부족했다"면서 "그의 이런 성격과 변덕스러운 천재성은 ADHD로 봐야 설명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아직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성을 지목하는 학설이 우세하다.
지속적인 주의력 부족과 산만함, 과다활동, 충동성 등으로 어떤 일을 끝까지 해내는 능력이 떨어진다. 아동기에 많이 발병하는 것으로 인식돼 있지만, 요즘엔 어른도 늘어나는 추세이며, 그중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나 대학생 등 고학력층도 포함된다.
실제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쪽잠으로 버티며 하루 20시간을 일에 매달렸지만, 마음이 가는 대로 이것저것 손대는 습관이 있어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한다. 이런 행태는 ADHD 환자의 전형적인 증상이라는 게 카타니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다 빈치의 정신 상태에서 가장 독특하고 혼란스러웠던 부분으로 왕성한 호기심을 지목한다. 이런 호기심은 천재적인 창의성의 원천이었지만 궤도 밖으로 밀어내는 추동력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다 빈치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ADHD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카타니 교수는 말한다.
예컨대 마음이 흔들리는 증상은 창의성과 독창성을 자극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 이로움을 주던 창의성도 나중에 마음이 변해 다른 일에 관심을 갖게 되면 오히려 저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카타니 교수는 "ADHD가 지능이 낮고 행실도 좋지 않은 어린이의 전형적인 증상이고, ADHD에 걸리면 인생을 망친다는 편견이 널리 퍼져 있다"면서 "내가 진료한 성인 중에는 어릴 땐 총명하고 직관력도 있었지만,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 실패해 불안증과 우울증이 생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 빈치가 자신을 인생의 실패자로 인식했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라면서 "다 빈치의 사례는, ADHD가 낮은 지능이나 창의력 결핍과 무관하며, 다만 타고난 재능을 계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임을 보여준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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