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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이어 유럽까지 '혼돈'…EU 통합 깨지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19-06-0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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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유럽연합(EU)의 앞날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혼조 국면(Too Close To Call)’으로 치닫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 수정안이 세 차례에 걸쳐 부결되면서 테레사 메이 총리가 사임했다. 올해 7월 말에 선출될 새 총리는 10월 말로 연기된 브렉시트를 마무리해야 한다. 영국이 EU에 잔류하기 위한 국민 재투표 가능성도 높아졌다. 유럽 의회도 유럽통합을 반대하는 정치 포퓰리스트 성향이 강한 극우 세력과 녹색당의 힘이 부쩍 커졌다.
유럽연합은 단일 세계경제 현안 중 역사가 가장 길다. 자유사상가에 의해 ‘하나의 유럽구상’이 처음 나온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한다면 110년, 이 구상이 처음 구체화된 1957년 로마 조약을 기준으로 한다면 60년이 넘는다. 한 마디로 유럽 국민의 피와 땀이 맺히면서 어렵게 마련된 것이 바로 유럽통합이다.
두 가지 경로로 추진돼 왔다. 하나는 회원국수를 늘리는 ‘확대(enlargement)’ 단계로 초기 7개국에서 28개국으로 늘어났다. 다른 하나는 영국은 가담하지 않았지만 회원국 간 관계를 끌어올리는 ‘심화(deepening’ 단계로 유로화로 상징되는 경제통합(EEU)에 이어 정치통합(EPU), 사회통합(ESU)까지 달성해 간다는 원대한 구상이었다.


하지만 유럽연합 헌법에 대한 유로존 회원국의 동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주권 문제로 ‘심화’ 단계가 먼저 난관에 부딪쳤다. 오히려 EEU에 잠복됐던 불안요인인 7년 전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퇴보된 느낌이다. 유럽 통합 과정에서 독일, 프랑스와 함께 핵심 회원국 역할을 해온 영국의 위상을 감안할 때 브렉시트가 확정돼 탈퇴하게 되면 유럽통합 앞날에 커다란 시련이 예상된다.
다른 회원국 탈퇴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 높다. 모든 회원국은 경기 침체 속에 난민, 테러 등이 겹치면서 유럽 통합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특히 유럽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유로존 탈퇴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던 ‘PIGS(포르투칼·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가 동참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분리 독립 운동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의 스코틀랜드, 스페인의 카탈루나와 바스크, 북부 이탈리아, 네덜란드의 플랑드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와 근접한 동부 등이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회원국 탈퇴가 잇따르고 분리 독립 운동마저 일어난다면 유럽연합은 붕괴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셉 바이너(J. Viner) 등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처럼 경제발전단계가 비슷한 국가끼리 결합하면 무역창출효과가 무역전환효과보다 커 역내국과 역외국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반대로 영국 등 어떤 회원국이 탈퇴하면 당사국뿐만 아니라 유럽, 더 나아가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마친다는 의미다. 한국 경제도 타격이 크다.
영국 재무부에 따르면 브렉시트가 결정될 경우 2030년까지 영국 경제가 6% 위축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가구당 연간 4천300파운드(약 702만 원)의 손실을 가져다주는 커다란 규모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영국 국내총생산(GDP)은 EU 잔류와 비교해 2020년에는 3%, 2030년에는 5%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탈퇴와 분리 독립은 쉽지 않은 문제다. 1975년 치러졌던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부결됐다. 1995년 퀘백과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투표도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반대가 더 많이 나왔다. 전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정치적 야망으로 잘못된 길을 걸었던 영국이 테레사 메이 총리의 사임과 유럽 의회 선거에서 집권당인 보수당이 크게 퇴조한 것을 계기로 EU 잔류를 위한 국민 재투표 문제가 부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럽 의회 선거에서도 직전까지 예상됐던 극우 세력의 압승에 제동이 걸리면서 ‘약진’ 수준에 그친 것은 유럽 연합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유럽 유권자의 최후 견제 심리 때문이다. 7년 전 유럽재정 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통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세계 경제 패권을 다투는 미·중 무역마찰이 점입가경 국면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유럽의 위상이 얼마나 무력한지 유럽 유권자는 뼈 속까지 체험하고 있다.
유럽의회 선거로 EU의 행정 수반인 집행위원회 위원장, 대외부문 대표인 EU정상회의 의장, 입법기관 대표인 유럽의회 의장에 변수가 생겼다. 올해 9월에 임기가 끝나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연임에도 복병이 생긴 만큼 ECB 통화정책과 유로존 경기, 그리고 유로화 가치에도 많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통합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영국 메이 총리 사임과 유럽 의회 선거 이후 ‘현 체제 유지(muddling through)’, ‘붕괴(collapse)’, ‘강화(bonds of solidarity)’, ‘질서 회복(resurgence)’ 등 네 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7년 전 유럽재정위기와 브렉시트, 그리고 투표율이 이례적으로 높았던 유럽 의회 선거를 차르는 과정에서 노출된 문제를 회원국이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이익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도 진흙탕 속을 헤맬 가능성이 높다.
영국과 다른 회원국 모두에게 차선책으로 ’B-EU(Britain+EU)’ 방안이 부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B-EU’는 영국을 EU에 잔존시키면서 난민, 테러 등에 대해 자체적인 해결권한을 갖는 방식이다. 이때 영국은 EU의 구속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국 현안을 풀어갈 수 있어 ’브렉시트‘보다 더 현실적인 방안이다.
‘B-EU’가 선택된다면 프랑스 등과 같은 테러 피해로 국수주의 움직임이 거센 회원국이나 이탈리아 등과 같은 난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원국이 이 방식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B-EU’에 이어 ‘F-EU(France+EU)’, ‘I-EU(Italy+EU)I까지 적용될 경우 EU 에 이어 유로존에서도 ‘이원적인 운용체계`가 공식적으로 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존 앞날과 유로화 움직임에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이원적인 운용체계는 유로화가 도입위기 이전에 운영됐던 ‘유럽조정메커니즘(ERM·european realignment mechanism)’과 원리는 동일하다. 독일 등과 경제여건이 좋은 회원국은 경제수렴조건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고, 그리스 등과 같은 나쁜 회원국은 느슨하게 운영됐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탈리아 천문학자와 물리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극한 상황에서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고 던진 말 한 마디가 먼 훗날 높게 평가받으면서 `지동설‘이 확고해 졌다. 브렉시트, 유럽 의회 선거에서 극우 세력의 약진 등으로 유럽통합 앞날이 당장은 어두워 보이지만 그 속에서 움트고 있는 새로운 통합의 싹을 잘 읽어야 나중에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특히 우리 정책당국자가 해야 한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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