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의원님들, 공사가 다망하신건 알지만…

전효성 기자

입력 2019-07-04 11:21   수정 2019-07-04 16:04

▼ "후속 일정으로 자리를 이석함을…"
2일 오후 2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국회 소회의실에 들어왔다. 당 내 국토교통위원들이 주최한 `층간소음 토론회`장이었다. 국토위 소속의원 10여명에 당 대표까지 참여하는 제법 큰 규모의 토론회였다. 황 대표는 토론회 시작에 앞서 "층간소음은 다양한 제도개선이 필요한 문제"라며 "올바른 정책마련을 위한 좋은 의견들을 내달라"고 말했다. 좋은 의견은 적극 수렴하겠다는 언급도 함께였다.
대표의 축사가 끝난 직후 진행자가 안내멘트를 던졌다. "황교안 대표께서는 후속일정으로 자리를 이석함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층간소음 도대체! 언제까지?`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앞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신 분들께서는 앞쪽에 자리가 있으니…"
토론회 시작 전, 앞선 순서는 사진촬영이었다. 사진촬영 직후 사회자는 토론회 앞자리를 채워달라고 주문했다. 조금 전까지 그 자리에는 토론회를 주최한 의원들이 착석했었다. 첫 발제자가 단상으로 올라오기도 전, 상당수 의원들이 당 대표를 따라 토론회장을 빠져나간 것이다. "좋은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는 말은 빈 자리 앞에 무색하다.
박덕흠 의원을 중심으로 자유한국당 국토교통위원 10여명이 함께 주최한 행사였던만큼 토론회 참석자 면면은 화려했다. 주택정책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박선호 1차관)부터 주택정책의 핵심파트너 LH(유대진 부사장), 유관분야 연구원, 주택시공업체, 교수, 시민단체까지 민-관을 포함하는 행사다. 층간소음에 관련된 유관분야 관계자가 대거 나선 셈이다.
김명준 서울시립대 교수를 좌장으로 세명의 발제자가 발제를 시작하려 했지만 이미 이때는 한국당 국토위 의원 중 절반정도는 빠져나간 상태였다. 발제와 토론사이의 휴식시간에는 그나마 나머지 의원도 대부분 자리를 빠져나갔다.
▲토론회장 앞쪽에 10여석의 빈자리가 보인다. 토론회를 주최한 의원들이 앉았던 자리다.
▼ 학술 토론회가 아니라 `정책 토론회`인데…
토론회에서 다뤄진 내용은 심층적이었고 참여자들의 관심도 높았다. `윗집의 발걸음 소리` 정도로만 생각했던 층간소음을 제도·기술·사회적 요인으로 분석했다. 소음기준과 방음시공, 주택건축방식 등 건축기술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다룰 때에는 내용을 받아적는 것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발제내용의 깊이만큼 토론회를 통해 좋은 정책이 나올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자리가 끝날 무렵, "수천 편의 논문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한 질문자가 일침했다. "층간소음과 관련한 학술적 논의는 층간소음의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며 국토부 관계자에게 제도적 대안마련을 촉구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행 층간소음 저감제도의 한계점을 일부 인정하기도 했다. 이 질문자 말고도 많은 참가자들이 질문을 위해 손을 들었다. 질의응답시간이 길어지며 토론회 시간이 10여분 정도 길어졌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질의한 국회의원은 과거 건설교통부 차관을 지낸 강길부 의원 하나였다. 강 의원은 무소속이다. 국토위 소속의원도 아니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당이 모두 빠져나간 자리에 그나마 무소속 의원이 입법부의 체면을 지켜준 셈이다.
이번 토론회는 학술대회가 아닌 정책토론회다. 국회가 주최했고 국회에서 열렸다. 그러나 정작 주최자의 정책 질의가 전무했다. 정책질문 없는 정책토론회를 보면서 떠오른 것은 `속 없는 찐빵`이었다.
▲황교안 대표와 국토위 한국당의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발제까지는…"
토론회를 마친 뒤 나오는 의회관계자에게 물었다. "오늘 의원님들께서 특별한 일정이 있으셔서 중간에 대거 자리를 떠나신 것이냐"고. 이 물음에 돌아온 대답이 기록할 만 하다.
"발제까지는 의원님들 절반쯤 남아계셨어요. 생각보다 많이 남아계셔서 저도 놀랬어요."
국회에 올 때마다 길을 헤맬 정도로 의원회관 안에는 많은 회의실과 세미나장이 있다. 층간소음 토론회가 열린 이날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여러 세미나와 토론회가 열렸다. 국회 토론회·세미나 포스터를 볼 때 `어떤 의원실에서 행사를 열었나`를 주의깊게 보게 된다. 그리고 세미나를 주최한 국회의원의 인사말, 개회사를 부지런히 받아적는다. 취재 열기가 뜨거운 곳도 있다.
보통 플래시는 인사말에서 터진다. 국회의원의 처음 10분에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멋드러진 인사말이 기사가 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국회 토론회는 대학강의가 아니라 정책 결정과 조정의 장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의원이 유수의 인사를 초청해 기자와 대중에게 강의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학술적 제안과 시민이 느끼는 체감, 정치·제도적으로 그 중간을 이어줘야할 대상이 행사를 주최한 정치인이다. `개회사 한말씀`과 `기념사진 촬영`은 행사 시작을 알리는 이상 이하도 아닌데 어느새 초점이 이 곳에만 집중된 느낌이다.
의원님들께. 공사가 다망하신건 익히 알고 있으나…`멋드러진 한말씀`을 토론회와 질의응답에서도 보여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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