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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中 환율조작국 지정…글로벌 환율전쟁으로 이어지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19-08-19 10:25   수정 2019-08-19 10:28



중국 위안화 가치는 미·중 무역마찰의 바로미터다. 마찰이 심화되면 ‘절하’, 진정되면 ‘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가장 우려해 왔던 무역에서 시작된 마찰이 본격적으로 금융과 연계될 움직임이다. 미중 간 마찰이 세계 경제에 이어 국제금융시장에서도 커다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발단은 지난달 말에 열렸던 양국 간 고위급 회담에서 보였던 중국의 태도다. 지난 2년 동안 ‘수세적’ 입장을 보였던 중국이 미국의 기대와는 달리 ‘공세적’으로 변했다. 당황한 미국은 9월 1일부터 잔여분 3,000억 달러 정도의 중국 수출 상품에 대해 10%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더 이상 보복관세 부과로 맞대응 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던 중국으로서는 ‘1달러=7위안’, 즉 포치(破七)선 진입을 허용했다. 11년 만의 일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포치선 진입은 안 될 것으로 봤다. 금융위기 이후 다섯 차례 붕괴될 위험을 맞을 때도 중국 인민은행은 적극적으로 방어해 왔다.
충격이 컸던 것은 미국이었다. 중국이 위안화 절하로 맞설 경우 지난 2년 동안 주력해온 보복관세 효과가 무력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했다. 1995년 역(逆)플라자 합의(달러 강세 유도 협정) 이후 사라졌던 ‘환율 조작의 악몽’이 되살아나 중국 이외 다른 교역국에게도 충격을 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두 가지 점에서 미국의 전통을 지키지 않은 파격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하나는 예정된 ‘시기’를 지키지 않은 점과, 다른 하나는 정해진 ‘규칙’를 어겼다는 점이다. 정치적 욕망에서 보복성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조치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에 주요 교역국을 상대로 환율 보고서를 발표한다. 올해 상반기 환율 보고서는 당초 예정일보다 한 달 이상 늦어진 5월 말에 발표했던 것도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인가를 놓고 마지막까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는 이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고 볼 수 있다.
‘2015 무역 촉진법’에 따라 새롭게 적용된 BHC(베넷-해치-카퍼) 요건으로 환율 조작국에 해당하는 환율심층 대상국으로 지정되려면 세 가지 요건, 즉 △대(對)미국 무역흑자 200억 달러 이상 △국내총생산(GDP)대비 경상흑자 3% 이상 △외환시장 개입이 지속적이며 그 비용이 GDP의 2% 넘는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세 가지 요건 중 중국은 첫 번째 항목에만 걸려있다. 오히려 이번에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되기 이전의 중국의 지위인 ‘환율관찰 대상국’에서도 빠졌어야 한다. BHC 요건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약인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지정 요건을 완화하는 작업을 검토해왔다.
이번에 적용된 것은 ‘1988년 종합무역법’이다. △대규모 경상수지흑자 △유의미한 대미국 무역흑자 중 한 가지 요건만 걸려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한 마디로 미국 마음대로 환율 조작국에 지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1990년 전후로 한국, 중국 등 대미국 흑자국이 집중적으로 환율 조작국에 걸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이 위안화 대폭 절하 등과 같은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슈퍼 301조를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슈퍼 301조란 의회 승인 없이 행정명령으로 100%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조항이다. 대중국 무역적자와 함께 재정적자를 관세수입으로 메울 수 있어 매력적인 카드다. 하지만 ‘극단적 이기주의’라는 국제적인 비난은 피할 수 없다.


앞으로 중국이 어떤 식으로 나올 것인가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은 커다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절하하고, 미국도 달러 약세로 맞대응할 경우 글로벌 환율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세계 경제도 1930년대에 겪었던 대공황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무역과 환율과의 비연계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기 대응적 요소 등을 감안한 현행 환율제도에서는 전일 경제지표가 부진하면 ‘절하’. 개선되면 ‘절상’해 고시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중국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어 그 자체가 마찰과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다.
미국의 공분을 더 불러일으키는 것은 중국이 위안화 절하로 불리한 점이 많은데도 이를 행동에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 절하는 경상거래 면에서 수출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자본거래 면에서는 자본 유출을 초래해 금융위기 우려를 높인다. 위안화 국제화 등을 통해 중국의 대외 위상을 높이는 계획에도 차질이 빚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위안화 절하’에 가장 명료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달러 약세’다. 하지만 초기에 나타나는 ‘J커브` 효과 때문에 2020년 대통령 선거가 치르기 이전까지 중국과의 무역적자를 확대시키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 쉽게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다. 글로벌 시뇨리지(Seigniorage: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해 얻는 이익)가 줄어들고 달러 자산의 자본손실도 커지는 부담도 있다.
현재 국제 통화제도에서는 미·중 간 환율전쟁이 발생할 경우 가격기능에 의해 자율적으로 조정할 장치가 없다. 1976년 킹스턴 회담 이후 국제통화제도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힘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서 국가 간의 조약이나 국제협약이 뒷받침되지 않는 ‘없는 시스템(non-system)’이기 때문이다.
국제간 불균형이 심화될 때마다 최대 적자국인 미국이 시정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경상수지 흑자국은 이를 조정할 유인이 별로 없어 글로벌 환율전쟁이 수시로 발생했다. 이 때문에 국제통화제도 개혁을 주장하는 학자는 최소한 불균형 조정을 강제할 수 있는 ‘국가 간 조약’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4년 전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올린 직후 위안화 가치가 대폭 절하되자 ‘상하이 밀약설(달러 약세-위안 절상을 유도하는 묵시적 합의)’이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 후 Fed가 금리를 올릴 때마다 ‘제2 플라자 밀약설’이 단골메뉴처럼 거론돼 왔다. 밀약설이 합의될 때는 ‘협정’으로 변한다(제2 플라자 밀약→제2 플라자 협정).
‘제2 플라자 협정’은 시진핑과 트럼프 정부가 모두 필요한 만큼 언제든지 논의할 수 있는 문제다. 2014년 12월 원화와 위안화 직거래 시장이 개설된 이후 두 통화 간 상관계수가 ‘0.8’에 달할 정도로 높아진 점을 감안하면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이 논의가 될 때마다 원·달러 환율은 하락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분위기와는 사뭇 다를 수 있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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