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했을 당시에는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빌딩이었고, 북미 최대의 유통업체 가운데 하나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시어스 로벅(Sears Roebuck)의 본사였다.
우편으로 시계를 팔던 리처드 시어스는 친구인 로벅과 카달로그 판매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부를 일궜고, 이후 유통업체로 변신해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서 대형 매장을 운영했다.
하지만 대형할인점을 대표하는 월마트의 유통혁신과 뒤이어 IT기술의 발전으로 아마존 같은 온라인 업체의 출현하자 고전을 면치 못하다 주인이 바뀌며 파산 위험까지 내몰리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제는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지난 1993년 국내 최초의 대형할인점으로 출발해 승승장구하던 이마트가 전격적으로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해 임원진 교체를 단행했다.
유통업계의 보수적인 문화를 고려할 때 파격적인 조치였지만 안팎에서는 이미 예견된 일이라는 지적이 많다.
초창기 폭발적인 성장에 성공했던 대형할인점은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반발로 신규 출점이나 주말 영업에서 강력한 규제를 받아왔다. 여기에 온라인, 모바일 쇼핑이 보편화 되고, 당일 배송 같은 유통의 혁신이 뒤따르면서 위기감은 더욱 높아졌다.
반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기에는 운신의 폭은 좁을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줄어드는 매출과 영업실적으로 이어졌다.
유통업계는 아울렛, 모바일쇼핑, 심지어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아 AI(인공지능)과 빅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잡기에 나섰지만 막대한 투자에 비해 그 성과는 더디기만 했다.
들리는 바로는 이마트를 보유한 신세계 뿐만 아니라 대형 유통그룹들도 안팎의 변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수년간 누적된 위기감은 이제 현실이 되었고, 변화를 더 늦춘다면 생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통은 1,2차 산업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산업이다. 여기에 물류까지 포함시키면 경제적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유통산업은 전체 고용의 14.2%를 차지하고, 최근 5년간 일자리 창출 상위 5개 기업 가운데 3개는 유통기업일 정도로 일자리 창출효과가 높다.
국민경제 차원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전략산업인 셈인데 바로 그 유통산업이 생존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만큼 산업으로서 유통을 육성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4차 산업혁명시대에 발맞춰 각종 관행도 선진화 해야할 것이다. 유통기업도 끊임없는 변신에 전력하지 않는다면 국경과 업종의 구분이 없는 경쟁을 이겨내기 힘들 것이다.
100년이 넘는 화려한 영욕과 110층이 넘는 육중한 건물은 남았지만 변신에 대응하지 못했던 시어스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우리 유통산업이 겪는 지금의 시련도 언젠가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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