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회장 거취 여부는 총선 이후로"
정부 고위 관계자가 말했다. `DLF 제재가 일사천리로 종결될 것`이란 예상은 빗나간 분위기다.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우리금융 사이에서 복잡 미묘한 기류가 감돌고 있다. 결론적으로 사태 장기화가 우려되지만, 시간의 문제인 만큼 결과가 바뀌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DLF 사태를 계기로 `금융위가 은행, 금감원, 청와대 눈치보지 말고 소비자편에 서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 버티는 손태승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DLF 제재심을 열어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에게 중징계(문책경고)를 내렸다.
3월 주총에서 연임을 앞둔 손 회장에게 `발등의 불`이 떨어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회장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최종 중징계를 통보받는 즉시 법원에 효력정지가처분 신청 및 취소 소송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금융 측이 법적 다툼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거다.
금감원이 이번 징계를 위해 처음으로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을 들고 나왔다. 앞서 모든 은행장 중징계는 `자본시장법`에 근거를 뒀다. 구체적으로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기준을 지켰냐는 게 핵심이다.
금감원은 법에 따라 우리·하나은행이 이를 어긴 만큼 임직원을 제재한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이에 은행들은 DLF 판매 당시 내부통제기준은 이미 마련됐고, 만일 위반하더라도 CEO에게 책임을 묻는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입장이다.
우리금융은 손 회장 연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권광석 우리은행장을 낙점한 것 역시 손 회장 연임 의지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다만 과거 KB사태 등 금감원이 은행장 중징계를 내렸을 경우 대부분 자진사퇴해 손 회장만 예외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 가운데 일부는 소송을 통해 명예는 회복했지만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임기가 연말인 함영주 부회장은 대응방안을 고민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 애타는 윤석헌
지난달 금감원 제재심에서 중징계 결정 이후 윤석헌 금감원장은 기다렸다는듯이 결재했다.
손 회장이 금감원 결정에 순순히 따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상황이 돌변하면서 윤 원장 머릿속이 그 누구보다 복잡할거다.
사실 DLF 사태 책임을 두고 금감원도 피해갈 수 없다. 우리·하나은행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것, 늦게 보고해 사태를 키운 점 등 금감원 행태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국정감사에서도 수차례 지적된 사안이다.
은행장 중징계, 기관 징계 및 과태료 선에서 DLF 사태를 마무리짓고 싶은 게 윤 원장과 금감원 모든 식구들의 바램이다.
그런데 손 회장이 버티면 버틸수록 사태가 장기화되면 여론의 화살이 금감원과 정부를 향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윤 원장의 시나리오는 이랬을거다. 손태승이 중징계를 받아들여 회장 연임을 포기하고 자진사퇴쪽으로 말이다.
최근 금감원은 우리은행 `고객 비밀번호 도용`건을 제재심에 올리기로 했다. 14개월전 검사한 내용을 이제야 언론에 발표한 시점이 석연치 않다.
금감원은 "DLF 제재와 무관하다"고 하지만 손 회장 자진사퇴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또, 라임펀드 사태 관련 우리은행을 곧 제재할 예정인데 강도 높은 징계를 내릴 가능성이 높다.
금감원 관계자는 "윤석헌 원장이 무엇보다 DLF 제재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논란이 될 만한 이슈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했다"고 전했다.
◇ 미루는 은성수
최근 언론에 `금융위 패싱`이 자주 등장한다. DLF 은행 제재를 두고 금융위가 금감원 보다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달 금감원 제재심 결정이 나오자 "최대한 신속히 관련 절차를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손 회장의 연임 등 향후 거취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은행장 징계, 기관 징계 및 과태로 부과 등 DLF 최종 징계 권한은 금융위가 갖고 있다. 그런데 은성수 위원장이 칼을 휘두르까지 몇가지 걸림돌이 있다.
첫번째로 금감원과의 관계다.
불과 2년 전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감원장은 키코 사태, 삼성바이로직스 분식회계, 예산 문제 등 사안마다 충돌했다. 지난해 은성수 위원장 취임으로 윤 원장과의 관계가 회복되는가 싶더니 올 들어 금감원 부원장 인사로 다시 서먹해진 모양이다.
특히 금감원이 DLF 은행을 제재하는 과정에서 `금융위 패싱` 논란이 일면서 금융위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일례로 금융위는 어제(12일) 증선위를 열고 금감원이 지난달 우리·하나은행에 내린 과태료 규모를 대폭 줄였다. 때문에 금융위가 3월초 DLF 최종 제재시 금감원 중징계 결정을 뒤엎을 지도 관건이다.
두번째로 은행과의 관계다.
금융기관을 관리감독하는 금감원과 달리 금융위는 금융정책을 입안하는 부처다. 금감원이 `감사·제재`에 방점이 있다면 금융위는 `금융진흥`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물론 금융위는 금감원의 상위 기관이다.
대표적인 일화가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1월 3일 `2020 범금융 신년인사회`에서 "금융인 여러분 사랑합니다"라며 두 팔로 하트 모양을 그렸다.
세번째로 청와대와의 관계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인 만큼 은 위원장은 청와대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금감원이 은행장 중징계를 확정했고 금융위 발표만 남은 상황이어서 은 위원장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닐거다.
금융위가 손태승 회장 중징계를 통보하면 연임은 물론 3년간 금융기관 취업을 못한다. 은 위원장은 손 회장 거취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4월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손 회장 거취 문제로 관치금융, 낙하산 논란이 일면 정부는 물론 청와대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DLF 사태가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우리금융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에 돌입하면 더욱 그렇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총선 이후에나 손 회장 거취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 지켜보는 소비자
지난해 10월 은성수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DLF 투자자들을 향해 "공짜 점심은 없다"고 말했다. 투자자 책임을 강조한 건데 이후 논란이 확산되자 부랴부랴 사과한 바 있다.
은 위원장이 은행, 금감원, 청와대와의 관계를 살피기 보다 금융소비자 편에 나서 주기를 국민들은 바란다. 과거 사모펀드 규제완화가 이번 DLF 사태를 야기했다는 지적도 있지 않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와 금융당국, 은행 모두 소비자보호를 강화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이행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직개편이 끝이 아니라 DNA가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DLF 제재 공을 넘겨받은 금융위가 관전 모드가 아닌 전면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모든 비판의 화살이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제재수위를 낮추거나 제재시기를 늦출 경우 더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
국민들은 어느 때보다 은성수 위원장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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