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다음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가 큰 이탈리아에서 바이러스 확산세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5일(현지시간) 기준으로 이탈리아의 누적 확진자 수는 2만4천747명, 누적 사망자는 1천809명이다. 누적 확진·사망자 모두 세계에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특히 누적 사망자 수는 바이러스 진원지인 중국(3천199명)의 절반을 넘어설 정도로 상승세가 가파르다.
지난달 21일 북부 롬바르디아주에서 첫 지역 감염 사례가 확인된 이래 하루 평균 78명이 숨진 셈이다.
최근들어선 하루 200명 안팎이 숨지는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다. 특히 15일엔 신규 사망자 규모가 처음으로 300명을 훌쩍 넘겨 368명에 이르렀다.
누적 확진자 수 대비 누적 사망자 비율을 나타내는 치명률도 7% 안팎을 오르내린다. 한국(0.9%)의 7배, 세계보건기구(WHO) 평균(3.4%)과 중국(3.9%)의 2배 수준이다.
주요 7개국(G7) 멤버이자 세계 8대 경제 대국, 그리고 의료시스템이 양적·질적으로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 이탈리아에서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의문이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이탈리아의 고령자 인구 비중이다. 작년 기준 이탈리아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은 23%로 세계에서 일본(28.4%)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실제 이탈리아의 코로나19 감염 사망자는 70대 이상 고령층에 집중됐다. 사망자 연령 분포를 보면 80대(80∼89세)가 45%로 가장 비중이 높고 70대(70∼79세)가 32%로 두 번째다. 90세 이상 사망자도 전체 14% 차지한다.
70세 이상 사망자가 전체 91%에 달한다.
이는 감염자의 연령층이 상대적으로 젊은 한국과 대비된다. 한국의 경우 60세 아래 감염자가 전체 5분의 4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고령층은 암이나 당뇨, 심혈관 질환, 고혈압, 만성 호흡기 질환 등 기저질환(지병)을 보유하는 경우가 많아 바이러스 감염 사망률이 특히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WHO도 최근 분석 보고서에서 지병을 가진 고령자들이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탈리아 파두아대의 조르조 팔루 바이러스학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는 생물학적 관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우리가 확실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이탈리아가 세계에서 가장 `늙은 국가`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발병 초기부터 북부 롬바르디아주 등을 중심으로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졌다. 이러한 확산 양태는 지금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역 감염의 거점인 롬바르디아와 베네토, 에밀리아-로마냐 등 북부 3개 주의 누적 확진자와 누적 사망자가 전체 80% 이상을 차지한다.
자연스럽게 이 지역의 의료시스템은 큰 압박에 처했다. 시간이 갈수록 병실은 물론 의료진과 의료 장비 부족이 심화했다.
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고 자택에서 입원 대기하다 숨지는 사례도 나왔다.
대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의료시스템이 빈약한 수천·수만 명의 인구를 가진 중소 도시를 중심으로 바이러스가 전파된 것도 이러한 위기를 증폭시켰다.
북부지역 몇몇 의료기관은 병실 부족으로 복도와 수술실, 회복실 등을 중환자실로 개조해 사용하는 실정이다.
롬바르디아는 중환자를 수용할 공간 부족으로 중환자 일부를 다른 지역으로 이송하기 시작했다.
누적 확진자가 하루 기준 20% 이상씩 증가하는 현 상태가 일주일 이상 지속하면 치명률이 높은 중증 환자 중에서도 상태에 따라 환자를 선별 수용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닥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롬바르디아의 아틸리오 폰타나 주지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와 같은 속도로 바이러스가 확산할 경우 지역 의료시스템이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바이러스 최초 발병지인 중국 우한의 치명률이 5.8%(2월 기준)로 중국 평균의 22배에 육박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이탈리아의 빈약한 공공의료시스템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다.
이탈리아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공공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8.9%로 유럽연합(EU) 평균을 밑돈다. 특히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EU 최고 수준의 공공채무와 재정적자 압박으로 공공 의료에 대한 투자가 많이 축소됐다.
현지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이탈리아에서 최근 5년간 의료기관 758곳이 문을 닫았고, 의사 약 5만6천명, 간호사 약 5만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바이러스 사태를 맞았다고 최근 보도했다.
이탈리아는 위험 지역 사람과 접촉한 경험이 있고 확실한 증세를 보이는 환자를 대상으로 바이러스 검사를 하고 있다.
증상이 없거나 가벼운 감기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배제된다.
이탈리아의 14일 기준 누적 검사자 수는 10만9천170명으로 한국(26만50명)의 42%에 불과하다. 하루 평균 4천700명 수준이다.
물론 이제 막 바이러스가 전파하기 시작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선 압도적인 검사 규모지만 이탈리아의 제한된 검사 정책으로 감염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단언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탈리아가 한국처럼 전방위적인 검사를 할 경우 누적 확진자 수가 크게 불어 치명률이 자연스럽게 WHO가 추산한 세계 평균(3.4%)에 근접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템플대의 크라이스 존슨 교수는 영국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실제 감염자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치명률을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흡연 인구와 연결 짓는 시각도 있다. 이탈리아의 흡연 인구 비중은 21%로 세계적으로 높은 축에 속한다.
코로나19는 기본적으로 폐렴을 유발하는 호흡기 질병이다. 흡연은 폐 기능을 손상하는 것은 물론 호흡기 질환을 악화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흡연으로 치명률이 높아질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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