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일부는 ETF를 예금항목에 합산해 재산을 신고하면서 평가액변동을 확인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금융 고위직들이 ETF를 투자해 얼마를 벌었는지 또는 잃었는지 국민들은 알 길이 없다는 얘기다.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가 어려운 게 이들이 누구인가. 우리나라 금융정책을 만들고, 금융기관을 관장하는 인사들이다.
# 금융위·금감원 투자비책 `ETF`
지난해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 고위직 공무원들의 재산이 대부분 늘어났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 26일 공개한 2019년도 고위공직자 재산변동사항에 따르면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전년보다 3억9천만원 늘어난 32억원을 신고했다. 손병두 부위원장은 1억원 늘어난 20억6천만원을 신고했다.
이에 반해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8천만원 줄어든 31억1천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유광열 수석부원장은 1억4천만원 증가한 23억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오른데다 급여 역시 올라 재산이 늘어난 거다.
특히 금융 고위직 다수는 ETF, 즉 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직무 연관성이 있는 만큼 개별주식에 직접 투자하기 보다 펀드 상품에 간접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례로 윤석헌 금감원장은 `KINDEX 중국본토CSI300` 1390주와 `KODEX 200` 1250주를 보유 중이다. 두 ETF는 지난해 수익율이 각각 40%, 12%를 기록했다. ETF 평가이익 1천3백만원을 얻은 윤 원장은 유가증권 항목 재산을 7천만원으로 신고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유가증권 항목에 장남의 ETF 평가액변동을 신고했다.
<사진(왼쪽부터): 김태현 사무처장, 민병진 부원장보, 최성일 부원장보>
# ETF, 예금으로 둔갑…재산신고 `꼼수`
금융 고위직들이 ETF 투자로 쏠쏠한 재미를 보면서 주요 재산증식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재산신고 내역을 봐도 ETF 평가액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앞서 윤석헌 금감원장 처럼 ETF를 유가증권 항목에 신고하면 평가액이 드러나지만 예금 항목에 합산 신고할 경우 확인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금융 고위직들이 ETF를 투자해 얼마를 벌었는지 또는 잃었는지 국민들은 알 길이 없다는 얘기다.
ETF는 펀드와 달리 주식 처럼 투자자가 직접 펀드 가격과 수량을 정해 매수, 매도 주문을 내는 금융상품이다. 사실상 직접투자상품에 가깝다. 간접투자상품이라 예금항목에 포함해 재산신고했다면 금융업계 종사자들이 웃을 일이다. 금융정책을 만들고, 금융기관을 관장하는 금융당국 고위직들의 이중적 태도인 셈이다. 특히 금융지식이 상당한 이들이 실수했다고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투자이익을 가리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금융 고위직 가운데 일부의 문제다.
먼저, 김태현 금융위 사무처장은 `TIGER 부동산인프라` 10주 등 고배당 위주의 ETF 21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김 처장은 "한국투자증권 ISA계좌와 함께 유가증권이 이중 계상되어 잔액을 0으로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ETF를 예금항목에 넣었다는 거다. 김 사무처장은 지난해 1억3천만원 늘어난 13억3천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전체 ETF 투자액은 미미하지만 예금항목에 포함시킨 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최성일 금감원 부원장보의 경우 본인이 `KODEX 200` 4,070주 등 ETF 약 6,500주를, 배우자와 자녀들도 ETF 수천주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유가증권 평가액은 모두 `0`으로 처리됐다. 이에 대해 "예금에 합산했다"고 설명했다.
민병진 금감원 부원장보는 ETF 투자 규모가 상당하지만, 수익률을 확인할 수 없다. 유가증권 평가액이 모두 `0`으로 처리됐다. 본인이 `TIGER 부동산인프라` 17,210주 등 ETF 약 34,000주 투자. 배우자와 아들도 ETF 수천주 투자했다고 신고했다. 그러면서 "간접투자상품은 예금에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 "일부 몰지각 행동" Vs "제재해야"
금융당국 내부에서 `ETF 부정 신고` 의혹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 몰지각 행동"이란 옹호 의견이 대다수인 가운데 일부 "시정 조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상품 재산신고도 제대로 못하는 금융당국 고위직을 피감기관이나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볼 지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공직자윤리위는 이번에 공개한 모든 공직자의 재산변동 사항에 대해 오는 6월 말까지 심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등록재산을 거짓 기재했거나 중대한 과실로 재산을 누락한 경우,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재산상의 이득을 취한 경우에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경고 및 시정조치, 과태료 부과, 해임·징계의결 요청 등의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소득 대비 재산이 과다하게 증가하거나 감소한 경우에 대해서는 재산 취득 경위와 자금 출처, 사용 용도 등에 대한 심사를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직무 관련 부정한 재산증식 혐의가 있거나 다른 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는지 등도 점검하고, 위법 사실이 발견되면 법무부 등 관계기관에 통보하기로 했다.
금융위 1급 가운데 승진이 가장 빠른 김태현 사무처장은 금융위원장, 부위원장 다음 `넘버3`로 핵심 간부다. 그리고 금감원 최성일 부원장보와 민병진 부원장보는 한국은행 출신으로 최성일 부원장보는 이달 초 임원인사에서 자리에서 물러났고, 민병진 부원장보는 일찌감치 지난달 24일 사표를 내고, 신협중앙회 검사감독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사진(왼쪽부터): 은성수 금융위원장,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한편 이번 관보(재산공개)를 보면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여전히 2주택자, 윤석헌 금감원장은 여전히 삼성생명 가입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은 위원장은 지난해 12.16 부동산대책 직후 현직 장관들 가운데 처음으로 아파트 한채를 팔기로 선언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윤 원장은 금감원장 취임 이전 삼성생명 즉시연금 가입자인데 취임 이후인 2018년 삼성생명에게 즉시연금 미지급금 전액을 지급하라고 통보하면서 이해상충 논란이 일었다. 삼성생명 즉시연금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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