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기소로 `삼성 합병·승계 의혹`을 일단락지은 검찰이 남은 피의자들에 대한 사법처리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비율 산정과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의 회계처리 변경과 관련한 불법행위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회계법인들이 1차 기소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이들에 대한 수사에 관심이 쏠린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1일 이 부회장 등을 기소하면서 딜로이트안진(이하 안진)이 삼성 측의 요구에 따라 합병 비율 검토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했다고 결론지었다. 당시 주가 기준 합병 비율(모직:물산=1:0.35)이 적정하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두고 이에 맞춰 보고서의 내용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위해 안진이 제일모직에 유리한 정보는 과다 계상하고, 삼성물산에 유리한 정보는 고의로 누락시키는 등의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했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제일모직의 신수종 사업을 3조원으로 평가하고, 개발제한 구역이 포함된 제일모직 소유 토지는 추정 실거래가를 적용해 가치를 높게 측정했다는 것이다.
반면 삼성물산이 보유한 1조3천억원 상당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장부에서 제외하고, 재무제표에 약 1조원으로 계상된 광업권은 영업 가치에서 누락시킨 것으로 봤다.
검찰은 안진이 이러한 회계 처리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삼성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향후 용역 수임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요구에 따른 것으로 판단했다. 이는 "회계사는 공정하고 성실하게 직무를 행하여야 하며, 고의로 진실을 감추거나 허위보고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공인회계사법 위반에 해당한다.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는 "삼성물산의 의뢰를 받은 안진의 보고서가 오히려 제일모직에 유리한 쪽으로 작성됐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왜곡된 보고서를 작성해 공인회계사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바이오의 회계 감사를 맡았던 삼정KPMG(이하 삼정)는 `분식회계` 부분과 연관이 있다. 삼성바이오는 2011년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 계약을 통해 에피스를 설립했다. 당시 계약에는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로부터 에피스 지분을 50% - 1주까지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과 52%로 가중된 주주총회 의결요건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삼성바이오는 처음부터 에피스에 대한 지배권을 가진 적이 없었으며, 회계처리 역시 `종속회사`가 아닌 `관계회사`로 돼야 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삼성바이오의 감사인이었던 삼정은 합병 결의 이후인 2015년 9월에야 콜옵션이 그동안 회계처리에서 누락돼왔다는 사실을 삼성에 알린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삼정은 콜옵션을 부채로 판단하고 삼성바이오의 재무제표를 2012년까지 모두 소급해 수정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삼성 측에 전달했다.
보고서에서 삼정은 2012년부터 삼성 측에 주요 계약서 제출을 요구했으나, 콜옵션 관련 계약서를 전달받지 못해 제대로 된 감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며 책임을 삼성에 돌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삼정이 `의견거절` 감사의견을 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견거절은 감사인이 감사의견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합리적인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표명이 불가능한 경우에 낼 수 있다.
감사 실무에 밝은 한 회계사는 "사실상 `갑`인 대기업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면서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미진한 정보로 잘못된 회계 처리를 했다면 외부감사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참여연대, 삼성바이오로직스 검찰 고발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이호규 기자
donnie@wowtv.co.kr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