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소녀상 '철거명령'…일본 강력반발에

입력 2020-10-08 23:29  


독일 수도 베를린 도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 시민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한 지 10일도 안 돼 철거 위기에 몰렸다.
지난달 말 미테구(區) 거리에 설치된 소녀상은 많은 시민의 관심을 받았다. 지하철역 인근으로 지나다니는 시민이 꽤 많은 장소에 자리잡았다.
현지 시민들은 꽃, 화분, 그림 등을 놓고 갔다. 심지어 일본 정부 관련 사무실에 근무한다는 시민이 찾아와 꽃을 두고 가기도 했다.
베를린 소녀상은 독일에서 처음으로 공공장소에 설치됐다.
그만큼, 승인 절차가 까다로웠다. 동상을 세우기 위해서는 작품의 예술성이 확보돼야 한다. 사회적 의미도 담아야 한다. 지역주민의 의사도 반영된다. 지역주민이 반대하면 불가능하기도 하다.
현지 한국 관련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가 지난해부터 설립을 추진한 끝에 지난 7월 관청에서 승인을 받았다.
코리아협의회는 소녀상 설립 추진 과정에서 계획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보안에 신경썼다.
자칫 주독 일본대사관의 정보망에 진행 사실이 걸려들 경우 방해 공작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일본대사관은 독일 내 소녀상 전시 및 설치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해당 관청 및 시설 측을 상대로 압박을 해왔다.
실제 여러 전시가 무산됐고, 사유지 공원에 세워진 독일 내 첫 소녀상의 경우는 비문을 떼는 조건으로 겨우 유지됐다.
코리아협의회는 소녀상이 제막하면 일본 측이 반발하더라도 이미 설치가 된 것이라 이겨내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일본 측의 반발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보통 일본 정부는 해외의 소녀상 전시 및 설치 과정에서 방해하거나 철거 압박을 할 때 현지 대사관 및 영사관을 동원해왔다.
이번엔 달랐다. 관방장관에 이어 외무상까지 나서 독일 정부에 철거 요구를 했다. 일본대사관이 베를린 당국에 철거 요구를 한 것은 물론이다.

이에 미테구청은 제막식 9일만인 지난 7일 코리아협의회에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내용의 행정명령 공문을 보냈다.
미테구청은 오는 14일까지 철거하지 않을 경우 강제 집행에 들어가고, 이에 대한 비용을 코리아협의회에 물리겠다고 했다.
소녀상의 비문이 일본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로 철거 명분을 들었다.
코리아협의회는 물론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가처분신청 등 법적 대응 여부도 모색할 계획이다. 기자회견과 집회 등도 고려하고 있다.
코리아협의회의 직원은 몇 명 되지 않고 자금력도 약한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막강한 로비력에 맞서 독일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상당히 어려운 싸움이 예상된다.
코리아협의회는 현지 시민단체와 주민들, 교민들과 함께 대응방법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코리아협의회는 오랫동안 현지 여성단체, 소수민족 단체 등과 연대해왔다. 이들 단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그동안 베를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반일감정, 민족주의에 갇히지 않아 왔다.
전 세계적인 여성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내세워 현지 시민의 호응을 얻어온 만큼, 현지 시민단체 및 시민들의 지지도 높을 것으로 현지 활동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독일에서의 소녀상 문제에 대해 개입하지 않아 왔다. 베를린 당국의 `평화의 소녀상` 철거 명령에 대한 공식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코리아협의회가 한국 정부 측에 철거 명령 공문을 받은 사실을 알린 이후인 시점인 8일 외교부는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정부의 소녀상 철거 요청에 대해 "소녀상 설치는 민간의 자발적 움직임"이라며 "민간의 자발적 움직임에 정부가 외교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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